탄식할 용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봄에는

시편의 탄식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70%가 탄식시라는 사실은

시편을 기록하고 전해준 하나님 백성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보여줍니다.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배웠지만,

우리의 현실이 늘 기쁘고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슬픔과 탄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시편의 대부분이 탄식시라는 사실에

도리어 위로를 받습니다.

 

2.

시편 탄식시의 특징은

하나님을 부르고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탄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사연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탄식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확신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시편의 탄식시는

‘자기연민’이 아니라

탄식을 넘어서 믿음과 확신으로 나가는 여정입니다.

 

무엇보다, 탄식의 과정을 충분히 갖습니다.

눈물로 이불이 젖을 정도로

자기 죄를 놓고 참회하며 탄식합니다.

뼈가 마를 정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탄식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이를 부러뜨려달라고 탄식합니다.

하나도 숨김없이 모두 내놓고 탄식합니다.

 

탄식의 과정을 온전히 지나면,

드디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3.

어렸을 때는

울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말고

대장부답게 견뎌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혹시라도 눈물을 보이면

약하고 소심하고 쩨쩨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슬픔을 꾹꾹 참는 것을 강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탄식을 올바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울어야 합니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탄식은 솔직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도리어 정직하고 진실한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10여 년 시간이 흘렀어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시고

눈물을 씻겨 주시길 기도합니다.

 

슬픔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 겁니다.

탄식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탄식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와 힘

그리고 소망을 구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 5:4)

 

 

하나님,

여전히 슬퍼하며 탄식하는 이웃들을 위로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4. 1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