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보물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에 소천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몬태나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정육점을 하셨습니다.

피터슨 목사님은 어려서부터 정육점에 나가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목사님은 종종 그의 저서에서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신앙과 연결시킵니다.

 

정육점에서 입었던 앞치마를 보면서

성경의 인물인 사무엘이 입었던 에봇(제사장 복장)을 떠올렸습니다.

성소에서 자랐던 어린 사무엘은 키가 자라면서 에봇을 교체해야 했는데

자신도 자라면서 정육점의 앞치마가 점점 커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육점을 사무엘이 자랐던 성소와 비교한 것도 특별했습니다.

 

“칼은 자기 나름의 의지가 있어” –

정육점 직원이 피터슨 목사님께 해준 말입니다.

실수해서 손을 베면,  “네가 칼을 몰랐다”며 주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칼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용도에 따라서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렇게나 고기를 자르거나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의 종류와 부위에 맞게 다뤄야 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의 아버지는 고기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다루는 직원을 “해커”라고 불렀답니다.

칼은 물론 고기까지 존중하는 것이 정육점의 관습이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가 아버지의 고객입니다.

아버지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손님을 존중하셨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맞이하셨기에

정육점에 들어오는 모든 고객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정육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몸을 파는 여성들이 거주하는 곳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여성들이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들어오면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부자 고객과 똑같이 맞이하셨답니다.

 

고기를 구입한다는 면에서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차별이 없었고

아버지 역시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또는 누구를 대하든지

우리 고집 또는 생각대로 하지 말고

상대에 맞게 또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데

그것을 피터슨 목사님은 “겸손”이라고 불렀습니다.

 

2.

늘 그렇듯이

피터슨 목사님의 글쓰기는 창의적이고

자잘한 부분까지 공감을 일으킵니다.

 

어릴 적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신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목회자의 덕목으로

발전시키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에 비하면

우리는 일상의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대충대충 넘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속에 보석을 숨겨놓으셨건만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리 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보석을 숨겨놓으신 하나님께서 꽤- 섭섭하시겠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합니다.

우리의 숨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모든 장소, 우리가 사는 모든 시간도

은혜요 그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있습니다.

 

올해가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삶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찾아 세어봅시다.

특히, 가족과 이웃 속에 숨겨진 보물들에 주목합시다.

감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119:37)

Turn my eyes from looking at worthless things; and give me life in your ways (Ps 119:37)

 

하나님 아버지

일상 속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세심한 안목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20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