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무술년(戊戌年) 2018년이 지나갑니다. 올해의 최고 뉴스는 2월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 조성일 것입니다. 올림픽 전까지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로켓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북한도 물러설 것 같지 않았는데,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남북 관계는 물론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화해 무드로 급격히 전환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연이어 만나고,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극적인 순간도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70년 넘게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던 역사가 단숨에 뒤바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낭만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올 한해 한반도에서 시작된 희망을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크게 두 가지 역사서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신명기 역사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해서 사사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까지 통일왕국을 이루다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무너지는 것을 기술한 역사입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일찍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왕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북이스라엘은 그렇다 쳐도 남쪽의 다윗 왕조까지 무너진 것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신명기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릴 수 있을지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마음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장려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왜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신명기를 기준으로 약속의 땅에 정착한 순간부터 마지막 예루살렘의 멸망까지 과거의 역사를 꼼꼼하게 회고했습니다. 나라와 성전의 무너짐을 경험하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절한 자기반성입니다.

 

신명기 역사서가 과거를 돌아보았다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쓰인 또 다른 역사서인 역대기는 미래를 향합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물론 창세기의 아담까지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해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생략하고 남유다 중심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남유다를 중심으로 다윗 왕조를 다시 세우려는 기대와 희망입니다.

 

신명기 역사서와 달리 이스라엘의 흑역사를 대부분 생략한 채 밝은 면만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면,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명기 역사서인 열왕기하에서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왕이 므낫세인데, 역대기에는 므낫세가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소개합니다. 신명기가 왕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대기는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과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의 계절에 지나온 한 해를 돌아봅니다. 연말이 되면서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평화의 소식에 뿌연 안개가 드리우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안개가 걷히고 민족의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해를 돌아보니 아쉽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여기저기 흑역사가 숨겨 있어서 구약성경의 신명기 역사가처럼 우리 자신을 낱낱이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주인이시고 우리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전인미답의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담대히 맞닥뜨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새해를 맞이합시다.(2018년 12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