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 (5)

큰 아들 I

 

탕자의 비유는 공관복음서 중에서도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유대인이 아닌 헬라(그리스) 사람이었듯이 누가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 점에서 잃은 양, 잃은 은전, 잃은 아들의 비유는 누가복음의 정신에 잘 맞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잃은 양 한 마리, 잃은 은전 하나, 둘째 아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말씀을 듣고 식사를 함께하던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도 찾으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한 명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기뻐하시며 잔치를 벌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세리나 죄인들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탕자의 비유 속 첫째 아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가리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모두 없애고 돌아온 동생을 맞아주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둘째 아들을 종으로 취급하던지 문전박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둘째를 위해서 잔치를 벌인다는 말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그렇다 쳐도 그를 향한 아버지의 대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옵니다. 아버지에게는 집에 돌아온 둘째나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화를 내는 첫째나 모두 중요합니다.

 

비유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세리들은 둘째 아들에 대한 말씀에서 비유가 끝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첫째 아들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첫째 아들이 자신들을 가리킨다고 금세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고 신앙 가운데 살려고 애썼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세리들이나 죄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화가 나고 수군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첫째 아들과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자신과 다르거나 신분이나 신앙적으로 약간 부족한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마음입니다.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 중심이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인공에서 밀려나는 순간 섭섭함이 밀려오고 급기야 분노할 수 있습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 숨겨 있을 첫째의 모습을 생각하고 꺼내서 그것도 하나님께 드리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