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 (7)

아버지 하나님

 

탕자의 비유에 대한 마지막 시간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여러 가지 색깔을 띠듯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각 특징이 있었고, 그들의 말과 행동도 특별했습니다.

 

읽는 관점에 따라서 둘째 아들뿐 아니라 첫째도 탕자이기에 “탕자인 두 아들의 비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에 나온 잃은 양과 잃은 은전의 비유에 맞춰서 “잃은 두 아들의 비유”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만 탕자가 아니라, 집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큰아들도 탕자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에게 큰아들의 모습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서 집을 떠나고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쓴 둘째 아들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실제로 망가지지 않지만, 큰 아들이 갖고 있던 시기, 질투, 미움, 불만과 원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동생을 향한 경쟁의식과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과 자기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처사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큰아들처럼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섬겼는데 자기에게 돌아온 몫이 적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보다 망나니 동생을 위해서 잔치를 벌여 주시고 더 잘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오는 섭섭함입니다. 큰아들처럼 집밖에서 화를 내지는 않아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신앙의 회의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둘째 아들과 큰아들을 모두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없애고 집에 돌아온 둘째를  뛰어나가서 맞아 주었습니다. 종이 아니라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만을 갖고 집밖에서 화를 내는 큰 아들에게도 찾아와서 “아들아”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와 항상 함께한 것을 알려하셨고, 아버지의 것이 모두 큰아들의 것이라고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자상하고 세심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탕자의 비유는 “사랑 많은 아버지의 비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아주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화를 내는 큰아들에게 찾아와서 곁에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고 오늘 예배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감히 아버지를 닮기 원합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를 온전히 닮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맞아 주는 넓은 마음,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끝까지 믿어주는 진정한 사랑, 먼저 다가가서 위로하고 화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기 원합니다. 탕자의 비유 설교가 오늘로 마무리되지만, 함께 나눴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계속 메아리치길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