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성경 속 예배자>는

창세기 속 예배자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야곱의 마지막 예배와

요셉이 드린 삶의 예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집트 제국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은

겉으로 보이게 하나님을 예배할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함께 간 친구가 있었지만,

요셉은 그 커다란 제국 이집트에 혼자였습니다.

신분도 노예였으니, 조금만 삐끗해도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삶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다 보면,

형들에게 은 20세겔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바로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을 맡은 총무,

감옥에 갇혀서는 죄수들의 일을 관할하는 총무,

그리고 이집트 제국을 책임지는 총리로

점점 확장되면서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주일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의 맥락을 기초로 요셉의 삶을 유추하면,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매 순간 닥쳤고,

요셉이 하나님을 부르고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일들도 다반사였을 것입니다.

수없이 삐끗하고, 좌절하고, 힘겹게 견뎠을 것입니다.

 

그런 날들이 모여서

창세기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한 삶”이 된 것입니다.

 

2.

우리 역시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살아갑니다.

매우 중요하고 다급한 기도부터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소소한 기도까지

쉬지않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도 자주 삐끗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기도했는데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일은 기대만큼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 여러 가지 신앙의 고민이 생깁니다.

 

요셉의 일상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도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깜깜한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조급한 마음에 불평하고 한탄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임한 최고의 은혜는 “함께하심”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삐끗함을 수없이 경험하고,

스스로 시험에 들 때도 많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너무 쉽게 결론에 이르기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우여곡절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체험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삐끗할 수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기도로, 삶의 예배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하나님,

우리가 삐끗할 우리 손을 잡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4 3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