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호머의 <오디세이>와 연결해서

우리가 배우는 로마서의 환대(hospitality)에 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디세이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낯선 손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크세니아 Xenia>라고 했습니다.

 

<크세니아>는 오디세이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제우스의 법으로 여겨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환대 방식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듯이,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 신이 낯선 사람으로

변장해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일에 나눈 로마서 12장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의

“손님 대접”에는 “필록세니아(philoxenia)”라는 헬라어가 쓰였다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크세니아>가 사회적인 규범이라면,

로마서의 <필록세니아>는

낯선 나그네를 친구처럼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기꺼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실천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언제나 세상의 기준보다 높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서 가능성을 보십니다.

 

2.

설교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찬송을 마치고 기도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낯선 손님을 짧게 언급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스스로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융은

우리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내면의 모습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겹겹이 쌓여 있는

억압된 분노, 질투, 절망, 미움 등등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낯선 나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환대해야 합니다. 그것도 나의 한 모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한 부분이기에 일단 받아들인 후에

그것을 긍정적으로, 창의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의 그림자, 나의 연약함, 나의 상처받은 자아,

그리고 감추고 싶은 모습들까지

내 안에 있는 낯선 손님(그림자 자아)을

내가 먼저 받아주고 환대하지 않으면,

밖에 있는 낯선 손님들도 진심으로 환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추고 싶은 모습까지도 아시고 품어 주십니다.

그림자 자아, 낯선 모습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통째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 안에 숨겨진 낯선 자아까지도 품길 원합니다.

 

가슴에 두 손을 포개고

“아무개야, 사랑해.”라고 진심으로 말해봅시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하나님,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8. 2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