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구약성경의 욥기는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이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처음에는 재산과 자식,
건강까지 잃은 욥의 신실한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동방의 의인답습니다.
마지막에는 긴 고난을 지나온 욥에게
하나님께서 충분히 보상해 주십니다.
재산을 되찾고 자녀들도 새로 얻습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입니다.
3장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바뀝니다.
1-2장의 의연했던 욥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 만큼 무너집니다.
게다가 세 친구는
욥에게 거친 말을 쏟아냅니다.
욥이 잘못했기에
고난을 겪는 것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욥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자신을 변호하고 친구들에게 맞서고,
하나님을 향해 탄식합니다.
2.
이처럼 욥기의
첫 두 장과 마지막 장은 쉽습니다.
내용이 명쾌합니다.
그런 욥을 닮고 싶다는 기도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부분입니다.
친구들의 말은 그럴듯하고 논리도 반듯합니다.
반면, 욥의 말은 오락가락합니다.
처음에 만났던 동방의 의인 욥과도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욥기를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음과 끝의 잘 정돈된 이야기보다
시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부분에 자꾸 눈이 갑니다.
친구들과 다투고, 자신을 변호하고,
하나님께 따지고,
그러다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욥,
– 그에게서 우리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3.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명쾌한 답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삶이 원래 얼기설기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풀리지 않는 일은 남아 있고,
기대했던 일이 어긋나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도 생깁니다.
“왜 저입니까? Why me?”
“왜 이런 일이 저에게 닥쳤습니까?”
“제가 하나님 잘 믿으려고 했는데요?”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사는 질문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 모든 것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얼기설기 펼쳐진 우리 삶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서 눈을 하나님께 고정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꼭 붙들고
꿋꿋하게 삶의 파도를 헤쳐 나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하나님,
흔들림 없이 주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9. 17 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