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돌보는 교회>라는 올해 교회 표어에 맞춰서
다시 한번 돌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1월에는 “우리의 돌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이번 달에는 “하나님의 돌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돌봄을 실천하면 자칫 지치기 쉽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돌봄을 경험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돌봄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바탕으로
용서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2.
지난 1월 목요 서신에서 나눴던
헨리 나우웬의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돌봄의 영성>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다.
이 정체성을 주장할수록 점점 더 깨닫는 사실이 있다.
사랑의 창조주가 인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조건 없이 귀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시하려는 관점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눅6:36)
나는 긍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굳게 믿는다.
이것은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다. 경청, 심방, 독서, 글쓰기 등을 통해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을 섬긴 끝에 나온 결론이다.
그동안 나는 숱한 경험에 동참해야 했고, 그 중에는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다.
돌보는 사역을 그만두고 더 쉬운 일을 해볼까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유혹에 부딪힐 때마다 깨달은 게 있다.
쉬운 일을 욕망할 때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한
내 헌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었다. (돌봄의 영성, 46-47쪽)
돌봄이 쉽지 않아서 때로는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 헨리 나우웬은 신앙이 식었다는 표시라고 일러줍니다.
3.
7월 한 달 동안
하나님의 돌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 긍휼(compassion), 돌보심을
아주 깊이 경험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세심하고, 무조건적이고 때로는 예상을 뒤엎는지
몸소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따로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고 작은 돌보심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 힘과 은혜로 돌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의 돌봄을 말씀드리면서 외로워 보이거나, 힘들어 보이시는
참빛 식구들을 챙기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서로 세심하게 챙기고 실제로 돌보는 참빛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 (눅6:36)
Be merciful, even as your Father is merciful. (Psalms 6:36)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돌봄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7.1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