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믿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말씀에서
루스드라에 간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는 장면을 나눴습니다.

 

예배 후에 교회 집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할 경우는 의학상 쉽지 않고
태어나는 과정 또는 어렸을 때 사고나 질병으로 걷지 못한 것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걷는 것도 현대 의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이 이 사람에게 임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처럼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자세한 내용을
현대 과학이나 오늘날 상식에 맞춰서 꼼꼼히 살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석이 필요한 “하나님 말씀”이고
올바르고 건전한 그리고 우리에게 타당한 해석이 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될 당시와 우리 시대 사이의 간격(gaps)을 잘 메워야 합니다.

 

대충 읽으면 별일이 없지만
세심하게 읽다 보면 성경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데
그래도 그 길을 가야 성경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설교 후에
집사님들과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함께 배워가는 과정이요,
그런 대화 속에서 일하실 성령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보고 그를 걷게 했습니다.

 

구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속에는
구원받다와 더불어 회복되다는 뜻도 있으니
“걸을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걷는 것을 구원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말할 때도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마커스 보그라는 신학자가 그의 책에서
리처드 니이버가 소개한 세 가지 유형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확신(assurance)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식, 교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머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신실함(fidelity)입니다.
앞에서 말한 자신감이 지적인 동의라면
신실함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삶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신뢰(trust)입니다.
니이버는 신뢰를 믿음의 가장 깊은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넘어서 우리 삶을, 관계를,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연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니이버는 신뢰로 대표되는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doubt), 회의(skepticism), 불신(unbelief)이 아니라
불안(anxiety), 염려(worry), 두려움(fear)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불안, 염려,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신뢰로 표현되는 믿음이 부족한 표시입니다.

 

3.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삶이
니이버가 제시한 세 가지 믿음에 근접하길 바랍니다.

 

불안, 염려,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정말 멋진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여, 믿음을 주옵소서.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행14:9)

 

하나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 2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