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돌봄 (7)

다윗의 동굴 기도

 

<돌보는 교회>라는 우리 교회 표어에 맞춰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돌봄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돌봄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듯이, 우리의 돌봄도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 가운데 세상으로 펼쳐집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돌봄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42편에는 다윗이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지은 기도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은 사울의 시기와 질투 속에 10년 이상을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의 목숨을 노렸고 다윗은 동굴에 숨는 것은 물론 미친 척도 하고, 때로는 이웃 나라에 몸을 숨기면서 살아남았습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의 돌봄을 더 크게 느낍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매우 가까이서 느낍니다. 또한 고난은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다른 것을 돌아볼 틈도 없이 하나님을 찾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른 이에게 기도를 부탁할 겨를도 없습니다. 4절에 있듯이 다윗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다윗을 돌볼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와서 단독자로 기도할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원통함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자기 앞에 닥친 어려움도 하나님 앞에서 차근차근 진술합니다. 육체와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도 지쳤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찾는 것도 힘겹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어려울 때 피할 곳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피난처는 마지막 순간에 찾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깜깜한 동굴에 피해 있으니 다윗에게 하나님만이 빛이 되십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분깃(몫)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돌봄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견딜 수 없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돌봄을 구하면서 살아야 할 인생입니다. 피난처되시고 분깃되시는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돌보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河-

해방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미국 시간으로

조국의 해방을 기억하는 광복절입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광복절 노래의 첫 소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살던 땅이지만

해방되고 다시 만져보는 흙은 우리 땅이었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바닷물도

해방되고 나니 덩달아 춤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태평양 너머에서 펼쳐지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두 나라는 운동경기만 해도

승부욕이 치솟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앞서는데

예전에 풀지 못한 숙제까지 겹쳐서 나타나니

분위기가 더욱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매듭은 풀고

앞으로 나갈 일들은 화해를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길 바랄 뿐입니다.

 

2.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을 읽고 그 뜻을 풀어 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4:18-19)

 

여기서 “자유”가 곧 해방입니다.

예수님은 포로되고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에 포로가 되고

그릇된 습관과 악한 유혹에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실제로

억울하게 포로가 되었거나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임하길 바라십니다.

 

우리나라가 36년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것도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과 맞물립니다.

 

3.

광복절을 맞으면서

아직도 풀지 못한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억눌리고 포로가 된 분들의 마음과 삶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은혜의 해(희년,jubilee)가 선포되길 바랍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보상하며

문제를 푸는 것이 도리요 상식이니

생떼 쓰지 말고 당사자가 나서서 풀기 바랍니다.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미국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여전히 이런저런 일들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꼭 외부의 세력이 아니어도

육체의 질병, 나쁜 습관, 우울, 세상 염려, 미래의 불안 등에

억눌리고 포로가 된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께도 자유케하는 예수님의 복음이 임하길 바랍니다.

 

행여나 참빛 식구들을 괴롭히고 억누르고

포로로 삼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복음의 능력이 그 위에 임하고 자유케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4:18-19)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oclaim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recovering of sight to the blind, to set at liberty those who are oppressed (Luke 4:18-19)

 

하나님 아버지

은헤의 해,

자유케하는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8.15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돌봄 (6)

요나와 니느웨

 

구약성경 요나서는 특별합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당시의 제국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왕에게 들리니 왕은 조서를 내려서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물도 마시지 말고 회개의 자리로 나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폭력과 악한 길에서 떠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은 줄을 누가 알겠느냐”(9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니느웨의 회개는 백성으로 시작해서 왕까지 올라간 독특한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니느웨의 회개를 보시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취소하셨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회개입니다. 개인적인 회개도 중요하지만, 국가 또는 공동체에 닥치는 재앙을 놓고 온 백성이 함께 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니느웨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려던 심판을 취소하신 것 자체가 특별한 일입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분노해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간신히 살아난 요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어도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방 나라 니느웨는 하나님 구원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제국 앗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화를 냈습니다. 니느웨가 살아나면 자신은 죽는 편이 낫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보겠다며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습니다. 햇볕이 따가웠습니다. 그때 박넝쿨이 나와서 그늘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합니다. 이번에는 벌레가 나와서 박넝쿨을 갉아 먹었습니다. 요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박넝쿨 하나에도 미련을 갖는데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있는 12만 명의 사람들과 가축을 돌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매우 파격적인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지난주 사르밧 과부에 이어서 하나님의 돌봄이 우리가 생각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돌봄을 독점하려던 요나와 진정으로 회개한 니느웨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이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돌보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을 넘어서 돌봄을 실천하기 원합니다.-河-

돈 키호테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요즘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아직도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조소 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하나님 믿는 것 아니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고 과연 실익이 있는지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과 악,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구분없이

뒤죽박죽 섞여서 복과 화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임하는 복과

반대의 경우 임한다는 저주가 작동하지 않으니

우리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기 마련입니다.

 

2.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시끄럽습니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소행으로 확인된

총격 사건이 수일이 멀지 않게 발생합니다.

숭고한 희생자들의 숫자가 점점 쌓여가는데

정치권은 손을 놓고, 투표에서 이길 궁리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제각각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상대방을 향해서 “가짜(Fake)”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지구 온난화, 핵무기를 비롯한 전쟁의 위협,

여전히 계속되는 빈곤과 식량, 차별 등

힘을 합쳐도 풀기 힘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서로의 잇속을 챙기고 있으니 우리 같은 민초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입니다.

 

지난주 목요 서신에 이어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곱씹으며 묵상합니다.

 

3.

미국에 올 때 아이들이 갖고 온  <돈 키호테>를 읽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긴 소설을 어린이용으로 아주 짧게 요약한 책인데

그래도 흥미롭습니다.

 

돈 키호테는 <양반/Sir 키호테>라는 뜻입니다.

스페인 시골에 기사 소설을 워낙 많이 읽고

스스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정의의 기사로 나선

돈 키호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로시난테라는 말,

정의와 평화의 세상이 오면 한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선 시골 농부 산초판사,

그리고 돈 키호테가 맞이하는 부조리한 세상.

 

풍차와 싸우고, 목동들에게 얻어맞아 이빨이 부러지고,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임할 자유와 평등, 정의의 세상을 꿈꾸는

돈 키호테의 행적이 때로는 불쌍해 보이고, 위대해 보이고,

지나칠 만큼 엉뚱해 보입니다.

 

돈 키호테가 인기를 끌던 스페인에서는

길가에 앉아서 울고 웃으며 돈 키호테를 읽었다고 했듯이

왠지 모를 시원함과 작은 희망도 발견합니다.

 

4.

때로는 돈 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일 정도의 신앙을 갖고 싶습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피를 흘리며 매를 맞고 내쳐지면서도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 돈 키호테>말입니다.

 

복잡하고, 잇속에 빠르고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말하는 요즘,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무모할 정도의 용기!

 

2천 년 전,

예수님도 그 길을 가셨기에 우리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이 신앙의 길,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9-10)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t 5:9-10)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려는 참빛식구들과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8.8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돌봄 (5)

사르밧 과부

 

“돌보는 교회”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7월부터 하나님의 돌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은 우리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돌봄으로 나타납니다. 8월에도 계속해서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를 위한 하나님의 돌봄, 다윗을 찾으셔서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 십계명을 다섯 가지나 어긴 다윗을 변함없이 사랑하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은혜 속에서 우리의 삶이 깊어지고 높아지고 모든 사람을 품을 만큼 넓어집니다.

 

오늘은 엘리야 시대 사르밧에 살고 있던 과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아합이라는 못된 왕이 통치했습니다. 아합은 시돈 사람 이세벨을 왕비로 맞았는데 바알 종교를 무차별 수입했습니다. 왕부터 하나님을 떠나니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최악입니다. 하나님께서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시면서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가뭄을 통해서 하나님이 바알보다 우월하심을 입증하신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강 그릿 시냇가로 피하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서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냇물도 말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보내십니다. 사르밧은 항구도시로 무역이 번성했던 곳입니다. 왕비 이세벨이 시돈 출신이고 하나님을 믿는 지역이 아닌데 그곳으로 엘리야를 보내셨으니 엘리야가 의아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엘리야는 바알신을 섬기는 지역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엘리야가 찾아간 과부는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한 번 먹을 기름을 갖고 음식을 만들어서 아들과 함께 먹고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서 함께 먹자고 제안합니다. 한 번 먹을 음식인데 엘리야를 줄 떡을 먼저 만들면 자신들이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르밧 과부에게 곡식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들과 단둘이 사는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르밧 과부를 언급하셨습니다. 많은 과부가 있지만 사르밧 과부에게 특별한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돌봄이 지역이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성품(마음)속에 임함을 배웁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한 주를 시작합시다. 돌봄의 은혜를 경험하고, 돌봄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시다.-河-

첫날

좋은 아침입니다.

 

1.

8월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기대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작하는 것에 숨겨진 염려와 불안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들인데,

때로는 시작이 무색할 정도로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3-6)

 

우리의 성실과 하나님의 성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정오의 빛처럼 빛나는 인생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시고

믿음으로 새달을 맞으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하며

제 기도의 자리에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2.

지난주일 밤

기혼 그룹 카톡방에 길로이 총격 사건에 대한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길로이 마늘 축제 현장에서

열아홉 살 된 청년이 AK 반자동 소총으로 무차별 사격해서

4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청년은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서 사살되었지만,

범행 동기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행 전 그의 SNS에 올린 글이나, 그가 읽은 책으로 보아서

백인 우월주의자 성향을 진진 청년으로 생각됩니다.

 

캘리포니아는 21세 이상만 총기를 구입할 수 있어서

네바다까지 가서 구입했다니 계획한 일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목숨을 잃은 6살 소년은 꿈 많고

자신을 치장할 줄 알고 R&B음악을 즐겨 들었답니다.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 또래여서 더욱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보다 편을 가르고

반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험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순수한 희생자들이 발생하니 안타깝습니다.

 

하루속히 정부 차원에서 총기 규제가 법으로 제정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선해지고, 화평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돌봄이 충분히 작동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

8월의 첫날을 맞으면서

오늘 아침 나눈 말씀대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성취하실 줄 확신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Casting all your anxieties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1Pet 5:7)

마음속에 있는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새달을 시작합시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새달을 살아갑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옵소서.

오늘도 참빛 식구들이 화평케 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8.1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