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는 신앙의 교훈과 더불어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신앙과 상황을 간증하듯이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관심과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어떤 이들은 선한 뜻으로 복음을 전했고, 어떤 이들은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못된 의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마음과 방식이든지 복음만 전파되면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리스도와 복음만이 존귀하게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축이 자신에서 예수님과 복음으로 완전히 옮겨진 모습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길 바랐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예수님을 믿고 어떤 어려움이 밀려와도 담대하게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은 은혜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닥칩니다. 반대하는 세력도 만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부탁합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서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마음을 같이하며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빌2:2)라는 말씀이 특별합니다. 여기서 한마음은 단순히 교인들끼리 마음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한 마음이 되었어도 그 안에 예수님이 없다면 복음에 합당한 교회가 아닙니다.

 

한마음과 한 뜻이 되는데 “다툼과 허영”은 금물입니다. 다툼은 서로 이기려고 힘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허영은 있지도 않은 것을 있는 것처럼 자랑하고 자신을 꾸미는 것입니다. 대신, 겸손과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섬김이 요청됩니다.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본다면 완벽한 공동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닮을 때 온전한 신앙과 멋진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닮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넓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바울은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떠올려가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바울의 마음에 빌립보 교회가 있으니 저절로 기도가 나왔겠지요.

빌립보 교회 역시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에바브로디도 편에 헌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고

멋진 그리스도인의 연합인지요!

 

2.

이웃을 위한 기도는 기도의 꽃입니다.

 

나만 위해서 기도한다면

여전히 축이 자기중심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웃까지 펼쳐지길 원합니다.

내 기도의 응답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것이 응답되었을 때 더 기뻐하기 원합니다.

 

종종 말씀드리듯이

기도시간에 아니면 하루 중 생활하면서

생각나고 눈 앞에 떠오르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그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고 알려주시고,

그 이웃이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족과 친지들, 참빛 식구들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았던 어떤 사람들이나 상황들,

길을 가면서 지나쳤는데 왠지 마음에 영상으로 남아있는 생면부지의 이웃들,

아무튼 눈에 떠오르는 이웃을 위해서 진실로 기도하는 “묘미”를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다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절로 찬송이 나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기도의 지경이 나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높아지고 넓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5 이-메일 목회 서신)

바울의 기쁨

지난주에는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꺾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16강에 오르길 기원했지만, 실제로 한국이 독일을 꺾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겼습니다. 축구팬들로서는 오랜만에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 덕분에 16강에 올라간 멕시코 사람들까지 “꼬레아”를 외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독일전이 열리기 전날까지 여기저기서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넘쳤습니다. 자칫 독일전에서 큰 점수차로 지거나 졸전을 벌인다면 축구팀 전체가 죄인 취급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독일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여론이 급격히 변했습니다. 비난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입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국민 여론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에도 성격은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으니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은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하지 않았어도 바울의 가르침과 바울이 전하는 소식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교훈과 말이 하나님 말씀인 셈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갖고 로마를 방문했고, 바울은 그로부터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서 바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바울의 권위는 약해졌고 각자의 신앙전통을 빌립보 교회에 도입하려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게 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보 뿐만 아니라 로마에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도리어”라는 태도로 대응합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빌립보 교회는 물론 여기저기에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그 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놓고 바울은 “도리어” 기뻐한 것입니다. 선한 뜻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복음만 전파된다면 기뻐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바울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기에 자신을 비난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찻잔 속 물처럼 요동칩니다. 그러니 세상의 인기와 평판에 얽매이면 한정없이 불안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예수님으로 중심을 잡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토대로 삼기 원합니다.-河-

지극히 선한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대한민국이 세계 1위 독일을 꺾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의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2.

주일예배에서는 빌립보서를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차디찬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만큼 특별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는 바울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코이노니아)가

어느 정도로 깊어야 하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바울은 처음 인사말 마지막을

빌립보 교회를 위한 기도로 마무리했습니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빌립보 교회가

지혜와 총명을 동원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이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특별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끝까지 끌고 가다(to carry through)”입니다.

그 다음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다른 것을 생각해 보다”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다”

“최선의 것으로 가다 (to excel)”라는 뜻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 성경에서는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새번역),

영어 성경에서는 “특출한 것(what is excellent)”

“가장 좋은 것 (what is bes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저는 설교에서

좋은 것(good), 더 좋은 것(better)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best)”을 분별해 내길 바울이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대

말씀이 보여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꽤 세밀하고 완벽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대충대충 판단하고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추구하길 원하십니다.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 (to carry through)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생각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세밀하고, 신중하며,

좋은 것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best)을

분별해낼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하늘의 지혜와 총명을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추구하기 원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9-10)

And it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

so that you may approve what is excellent, and so be pure and blameless for the day of Christ (Phil 1:9-1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주님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하고, 찾아내고,

사랑으로 그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6. 28이-메일 목회 서신)

월드컵 단상

월드컵 단상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어느새 4년이 훌쩍 지났고 러시아에서 또다시 월드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9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여섯 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미국 팀은 물론 전통적인 강호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도 본선에 나가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했으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을 꿈처럼 여겼습니다. 열심히 해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해도 호주를 비롯한 다른 대륙의 팀들과 최종전을 벌여야 했고 번번이 본선 진출 길이 막혔습니다. 당시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이 꽤 있었는데 월드컵 본선 진출이 쉽지 않았습니다. 흑백텔레비전 앞에 숨을 죽이고 앉아서 월드컵 예선전을 시청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아나운서의 익숙한 멘트도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2002년에는 월드컵을 주최하는 국가가 되고 아무리 안방에서 열린 대회였어도 히딩크 감독의 지도하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으켰으니 대한민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처음부터 최약체로 평가받았습니다. 본선에 진출한 서른 두 개 팀 가운데 맨 밑에서 두세 팀에 들 정도였습니다. 공은 둥글다는 뻔한 표현(cliché)이 현실이 되어야 16강에 올라갈 실력이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면서 격려할 뿐입니다.

 

월드컵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가 되기도 하지만 가슴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아이슬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에 실패했습니다. 메시는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에 “매우 고통스럽다. 내가 페널티킥에 성공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답니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천하의 메시이지만 페널티킥에 약한 편입니다. 그는 지난 시즌에 여섯 번 페널티킥을 시도해서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공을 다루고 슛을 성공시키는 실력은 신기(神技)에 가깝지만, 상대편 골키퍼와 마주 대하는 페널티킥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한 선수가 모든 것에 완벽하면 그것도 싱겁습니다. 한 두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야 동정심도 생기고 더 열심히 응원할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기록한 아이슬란드도 흥미로운 팀입니다. 북대서양 한 중간에 떠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4만 명밖에 되지 않은 국가로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아이슬란드 팀의 감독은 치과의사 출신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어쩌다가 치과의사가 되었고, 우연치 않은 기회에 축구 감독까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겨줍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아이슬란드의 골키퍼는 영화감독 출신입니다. 이번 월드컵동안 자신의 조국 아이슬란드에서 방영하는 코카콜라 광고를 연출했답니다. 수비수 가운데 한 명은 소금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대표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슬란드는 말 그대로 축구를 즐기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인데 첫 경기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거뒀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듯합니다.

 

이처럼 개인은 물론 국가의 명예를 걸고 한판 대결을 벌이는 월드컵이기에 보는 이의 마음도 승패에 따라 춤을 춥니다. 멋진 승부가 펼쳐지고, 마지막 순간에 골을 넣어서 승패가 뒤바뀌는 것을 보며 짜릿함을 느낍니다.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죽기 살기로 뛰지만, 끝나면 곧바로 악수를 하고 땀 냄새 가득한 유니폼을 교환하는 선수들이 참 멋집니다. 보란 듯이 예상을 뒤엎고 의외의 승리를 거두는 팀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열심히 하려다 보니 실수도 하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의기소침하지 말고 더욱더 힘을 내기 바랍니다.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월드컵이 막바지로 달려갈수록 스포츠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과 미담이 쏟아지길 기대합니다. (2018년 6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사도 바울의 기도

이번주 토요일에는 남선 교회 주관으로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탠포드 근처 공원으로 야유회를 갑니다. 작년의 버클리 마리나에 이어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나들이입니다. 우리 교회는 갓 태어난 아기들부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지만 90이 넘으신 권사님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서 예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수십년전에 미국에 오신 권사님들부터 최근에 미국땅을 밟으신 식구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교인들부터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오시는 분들까지 사시는 지역과 하시는 일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들이 한마음으로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지역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빌립보 교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간직했고, 교회를 세운 사도바울은 물론 모든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함께 하시고 빌립보 교회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울이 현재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각별한 인연으로 세워진 교회였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특별합니다. 십자가위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교 교회와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역시 한결같이 바울 편에 섰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에 물심양면으로 동참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변함없이 바울을 지원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나누는 사랑과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편지의 인사말(1-11절)을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사랑 안에서 예수의 날까지 복음을 지킬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는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추구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헛발질

좋은 아침입니다.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한국팀은 첫 경기에서 그런대로 선전했지만,

16강에 들라는 국민의 성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내일모레 멕시코와의 2차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 팀 가운데

뒤에서 두세 번째 드는 전력이니 16강에 들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경기 결과를 떠나서

가슴의 태극 마크가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뛰어서

국민들에게 흐뭇함을 선사하면 좋겠습니다.

 

2.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는

당연히 포르투갈의 호날두와 아르헨티니아의 메시입니다.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골을 넣어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교만해 보일 수 있는 그의 눈빛과

두 손을 아래로 펼치는 골 세레모니를 자주 보게 됩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첫 경기에서는 페널티 킥을 놓쳤습니다.

메시의 킥을 막은 아이슬란드의 골키퍼가

영화감독 출신이라니 메시의 자존심이 더 상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경기에서

메시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3대 0으로 패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챙겨보니

메시가 상대편 수비에 꽁꽁 묶였답니다.

 

예선 마지막 경기가 남아있지만

4년 전 브라질에서 결승전까지 팀을 이끌었던 메시로서는

어쩌면 평생에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서

실력 발휘를 못해서 무척 아쉽겠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3.

저는 메시가 처음 두 경기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팀이 하나 되었을 때, 없던 힘도 생기도 개별 선수의 실력도 발휘됩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나눴듯이 99%의 노력이 있어도,

1%의 영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고,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메시를 보니 누구나 헛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도 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지나치게 완벽해 지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주어진 일을 즐깁시다.

1%의 영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Phil 1:6)

 

하나님 아버지,

행여나 실수해도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6. 21이-메일 목회 서신)

첫날부터 이제까지

세상 속에 하나의 교회가 세워 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빌립보에 갔지만, 복음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렸고 루디아라는 최초의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계기가 되어서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두 번째 교인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믿음과 기도로 끝까지 견뎠을 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자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흐트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바울을 사용하지 않고 그가 전한 복음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바울을 깎아내리면서 그릇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옥에서 전해 들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 올바른 믿음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한시도 빌립보 교회를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것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왔고, 어려운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자라가는 빌립보 교인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쁨과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잊지 않고 복음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악한 무리들이 들어와서 유혹했지만, 바울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처럼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사는 빌립보 교인들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도 착한 일을 시작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계획하신 선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변함없는 신앙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가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담대함이요 확신입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축복 선언이 우리 참빛 교회와 참빛 식구들께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