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에 보내는 첫 번째 목요서신입니다.

올해도 서신을 함께 나누면서

신앙과 삶이 함께 가고,

우리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 원합니다.

저로서는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늘 감사하답니다.^^

 

엊그제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판에

감동적인 미담(美談)이 실렸습니다.

 

40년 전 각각 미국에 입양이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각자의 건강정보를 위해서

DNA 테스트를 했고 DNA가 일치하는 자매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자매는

조지아주에서 불과 40분 거리에서 10년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두 자매는 생후 5개월과 18개월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생모가 공장에서 일하던 미혼모였는데 양육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입양한 가정에서 잘 자라서

신기하게도 자매 모두 프리스쿨 교사가 되었습니다.

 

40년 만에 만난 두 자매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았고

서로 지난 얘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후에

어쩌면 생전에 계실 생모를 찾을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의기투합해서 파티 관련 사업도 시작했답니다.

불혹이 넘어서 재회한 자매가

둘이 있어서 그들의 인생이 더욱 행복하길 기사를 읽으며 기도했습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1970-80년대에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가 11만 명이 넘는다니 엄청난 숫자입니다.

기사에 나온 자매들처럼 함께 입양된 형제자매들끼리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2.

인생에서 만남만큼 귀한 것도 없습니다.

만남 속에는 헤어짐이 숨겨져 있다지만

헤어짐도 만남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예수님과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은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도 만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웃과의 만남은 물론 우리는 올 한해 누군가를 계속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실 것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침에 보내드리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일주일마다 목요서신을 통한 만남도 기대합니다.

 

올 한해 참빛 식구들에게 만남의 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동료를 만나고, 조력자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시는 만남도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만남, 신앙의 동역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seek me diligently find me.(Prov 8:17)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참빛 식구들의 모든 만남을 예비하시고

주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순간순간 만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3이-메일 목회 서신)

자랑할 데가 어디냐

올해 마지막 주일이자 로마서 3장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로워도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로마서에서는 의인이 하나도 없고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돕고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입니다.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롬3:27-31)은 크게 세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첫째는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27절)입니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심지어 신앙적으로 아무리 탁월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 갖고 있던 율법이나, 헬라인 또는 세상 스승들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으로 의롭게 될 수 없기에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자랑할 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29절)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했습니다.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별칭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에게 활짝 열렸습니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질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31절)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율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계속해서 죄를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우리를 회개로 이끌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율법의 본뜻을 이룰 수 있으니 믿음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河-

희망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무술년(戊戌年) 2018년이 지나갑니다. 올해의 최고 뉴스는 2월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 조성일 것입니다. 올림픽 전까지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로켓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북한도 물러설 것 같지 않았는데,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남북 관계는 물론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화해 무드로 급격히 전환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연이어 만나고,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극적인 순간도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70년 넘게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던 역사가 단숨에 뒤바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낭만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올 한해 한반도에서 시작된 희망을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크게 두 가지 역사서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신명기 역사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해서 사사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까지 통일왕국을 이루다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무너지는 것을 기술한 역사입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일찍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왕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북이스라엘은 그렇다 쳐도 남쪽의 다윗 왕조까지 무너진 것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신명기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릴 수 있을지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마음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장려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왜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신명기를 기준으로 약속의 땅에 정착한 순간부터 마지막 예루살렘의 멸망까지 과거의 역사를 꼼꼼하게 회고했습니다. 나라와 성전의 무너짐을 경험하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절한 자기반성입니다.

 

신명기 역사서가 과거를 돌아보았다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쓰인 또 다른 역사서인 역대기는 미래를 향합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물론 창세기의 아담까지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해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생략하고 남유다 중심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남유다를 중심으로 다윗 왕조를 다시 세우려는 기대와 희망입니다.

 

신명기 역사서와 달리 이스라엘의 흑역사를 대부분 생략한 채 밝은 면만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면,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명기 역사서인 열왕기하에서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왕이 므낫세인데, 역대기에는 므낫세가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소개합니다. 신명기가 왕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대기는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과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의 계절에 지나온 한 해를 돌아봅니다. 연말이 되면서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평화의 소식에 뿌연 안개가 드리우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안개가 걷히고 민족의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해를 돌아보니 아쉽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여기저기 흑역사가 숨겨 있어서 구약성경의 신명기 역사가처럼 우리 자신을 낱낱이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주인이시고 우리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전인미답의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담대히 맞닥뜨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새해를 맞이합시다.(2018년 12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마무리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작은 일에 충성>이었고

올 초에 교회 표어와 관련한 목요 서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돌이 날라와서 구멍이 났을 때

그것을 정성껏 보수해 주신 분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세상에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계심을 소개했습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분은 말을 못 하는 분이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연초에 보냈던 메일 가운데 일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작은 일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매사에 충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실제로 “작은 일”도 있습니다.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일입니다.

올 한해는 그런 일도 챙겨 보고 싶습니다.

 

유리창의 아주 작은 흠집을 보수해주셨듯이

세상에는 작은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수행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존경과 박수를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이라는 우리 교회 표어대로

올 한해, 아니 오늘 하루

우리 주변의 작은 일에 성실하고

작은 자들을 챙기고

작은 일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2.

올해가 나흘 남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이웃과 세상 속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였는지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요?

 

물론, 자신 있게 “예스/yes”라고 답할 정도의 강심장은 우리 가운데 없으십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은혜가 필요하고

올 한해도 은혜로 살았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해를 돌아보면서

재빠르게 은혜 속으로 숨거나, 무작정 은혜를 갖다 대지 말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과연 “작은 일에 충성”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일을 정성껏 하시는 분들입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시는 분들입니다.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일정하게 유지될 겁니다..

 

더불어, 작은 자 하나를 사랑하시고

창조주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하찮은 일까지 챙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합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over a little;

I will set you over much.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Mat 25:21)

 

하나님 아버지

작은 일에 충성하며 한 해를 살아온

참빛 식구들께 힘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27이-메일 목회 서신)

2018년 12월 4주 성탄주일

성탄 주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 9장 6절

성탄예배: 기쁘다 구주오셨네/누가 2:1-20

 

찬양:

거룩한 주 예수

사랑이 예 오셨네

 

봉헌송 연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어김없이 올해도 성탄절을 맞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네 번의 대강절 후에 맞는 성탄절입니다. 그동안 한주 한주 보내면서 마음에 촛불을 밝히며 성탄절을 기다렸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배웠듯이 우리는 물론 세상에 예수님이 꼭 필요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기준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누군가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어야 가능합니다. 인간은 물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셔야 했기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습니다. 죄가 없는 몸을 입기 위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우리가 매주 함께하는 사도신경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기름부음 받은 자가 태어날 것을 예고하셨는데, 천여 년 후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신을 비워서 종의 형체 즉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시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야 할 죽음의 길을 대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이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 칭의,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속량,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짐을 대신 지고 속죄소에 오르신 속죄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9장 6절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한 아기가 낳을 것이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온 세상을 통치할 왕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과 같으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는 것도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부서지고 어그러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도 예수님의 평화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마음속에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평화의 왕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화를 주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고, 행여나 부서진 이웃과의 관계가 있다면 평화의 예수님을 맞음으로 화해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河-

일상의 보물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에 소천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몬태나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정육점을 하셨습니다.

피터슨 목사님은 어려서부터 정육점에 나가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목사님은 종종 그의 저서에서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신앙과 연결시킵니다.

 

정육점에서 입었던 앞치마를 보면서

성경의 인물인 사무엘이 입었던 에봇(제사장 복장)을 떠올렸습니다.

성소에서 자랐던 어린 사무엘은 키가 자라면서 에봇을 교체해야 했는데

자신도 자라면서 정육점의 앞치마가 점점 커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육점을 사무엘이 자랐던 성소와 비교한 것도 특별했습니다.

 

“칼은 자기 나름의 의지가 있어” –

정육점 직원이 피터슨 목사님께 해준 말입니다.

실수해서 손을 베면,  “네가 칼을 몰랐다”며 주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칼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용도에 따라서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렇게나 고기를 자르거나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의 종류와 부위에 맞게 다뤄야 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의 아버지는 고기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다루는 직원을 “해커”라고 불렀답니다.

칼은 물론 고기까지 존중하는 것이 정육점의 관습이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가 아버지의 고객입니다.

아버지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손님을 존중하셨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맞이하셨기에

정육점에 들어오는 모든 고객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정육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몸을 파는 여성들이 거주하는 곳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여성들이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들어오면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부자 고객과 똑같이 맞이하셨답니다.

 

고기를 구입한다는 면에서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차별이 없었고

아버지 역시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또는 누구를 대하든지

우리 고집 또는 생각대로 하지 말고

상대에 맞게 또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데

그것을 피터슨 목사님은 “겸손”이라고 불렀습니다.

 

2.

늘 그렇듯이

피터슨 목사님의 글쓰기는 창의적이고

자잘한 부분까지 공감을 일으킵니다.

 

어릴 적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신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목회자의 덕목으로

발전시키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에 비하면

우리는 일상의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대충대충 넘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속에 보석을 숨겨놓으셨건만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리 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보석을 숨겨놓으신 하나님께서 꽤- 섭섭하시겠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합니다.

우리의 숨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모든 장소, 우리가 사는 모든 시간도

은혜요 그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있습니다.

 

올해가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삶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찾아 세어봅시다.

특히, 가족과 이웃 속에 숨겨진 보물들에 주목합시다.

감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119:37)

Turn my eyes from looking at worthless things; and give me life in your ways (Ps 119:37)

 

하나님 아버지

일상 속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세심한 안목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20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