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떼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새해도 20일 가까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갑니다.

연초에 계획하고 결심하신 일을 잘 해내고 계시는지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날마다 아니 적어도 삼일마다

자신을 점검하고 새롭게 결심하면서 한 해를 사는 것도 좋겠습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호세아를 끝내고 요엘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요엘서는, 앞으로 닥칠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개인과 공동체가 회개하고

여호와의 날 이후에 펼쳐질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길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요엘서의 흥미로운 구절은 1장 4절의 메뚜기 재앙입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요엘1:4)

What the cutting locust left,the swarming locust has eaten.What the swarming locust left,

the hopping locust has eaten, and what the hopping locust left, the destroying locust has eaten.(Joel 1:4)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으로 번역된 우리 말이 생소합니다.

4년 전에 우리나라 해남에 메뚜기 떼가 출몰해서 농작물을 망가뜨린 일이 있었고

펄벅의 소설 <대지>에서도 메뚜기 떼의 출몰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고대 이스라엘처럼 메뚜기 떼의 습격이 흔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워낙 메뚜기 떼의 습격이 잦은 곳이기에

메뚜기에 대한 용어가 발달했고

그것을 우리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소한 용어가 사용된 것 같습니다.

 

“먹어 치우는 메뚜기” “떼를 이뤄서 달려드는 메뚜기”

“뛰는 메뚜기” “폐허를 만드는 메뚜기” –

네 가지 모두 각기 다른 메뚜기의 공격입니다.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메뚜기 떼의 습격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2.

메뚜기 떼의 습격은 요엘서 외에도 성경 몇 군데서 발견됩니다.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내린 메뚜기 재앙 (출1);12-15)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하나님 백성에 임할 재앙 (신28:38)

이스라엘에 쳐들어오는 적군을 메뚜기 떼에 비유하였습니다(삿7:12).

 

요엘서의 메뚜기 떼도

“여호와의 날” 즉 심판 날에 임할 재앙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기존질서를 폐지할 것입니다.

인간이 쌓아놓은 모든 문명을 “ 무(nothing)”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선과 악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3.

지난 주일 달란트 설교 (마24-25장),

수요 예배의 마지막 때에 대한 예수님 말씀(막13장)

새벽기도회의 요엘서까지

새해 벽두부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날”을 준비할 것을 깨우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끝(종말)이 있음을 믿고

그 끝에 맞춰서 현재의 삶을 점검합니다.

여호와의 날에 합당하도록 지금/여기에서 단정하게 살아갑니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걸러내고, 씻어내고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것을 꼭 붙잡기 원합니다.

수억 마리 메뚜기 떼가 지나가도 끄떡없이 남아있을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들고 올 한해 살아갑시다.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요엘2:26)

Prais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who has dealt wondrously with you.

And my people shall never again be put to shame. (Joel 2:26)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여호와의 날> 마지막에 놓고

정돈하며 날마다 새날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8이-메일 목회 서신)

한 달란트 가진 자

새해가 되니 뚜렷이 하는 일은 없어도 마음과 생각이 바쁩니다. 새해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결심과 행함이 있어야할 것 같고, 동시에 작심삼일이던 예전의 기억이 겹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과 삶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꽤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우리 교회 올해 표어인 “작은 일에 충성”도 오늘 본문에서 왔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마태복음24-25장에 이르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단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로 시작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실 심판으로 끝을 맺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세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충성스러운 종, 기름과 등불을 준비한 다섯 처녀, 그리고 마지막이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세 비유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도둑처럼 불현듯 다시 오실 것이니 그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한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 오실 것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비유를 읽고 있으면, 준비를 잘한 사람보다도 준비를 하지 않은 악한 종,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 한 달란트 받은 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한 귀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능력에 따라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는 20년 정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장사를 해서 갑절을 남겼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돈을 땅에 묻어 놓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점검합니다. 갑절로 이익을 남긴 두 명의 종은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지만, 주인의 재산을 땅에 묻어놓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함께 갖고 있던 재산까지 빼앗긴 채 밖으로 내쫓깁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의 문제는 주인의 성품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것입니다. 다른 두 명의 종이 열심히 장사하면서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동안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성품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매우 이기적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만을 보호하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마음껏 사용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기 원합니다.  -河-

작은 일에 충성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집에 오는 길에

큰 트럭에서 작은 돌이 자동차 앞 유리로 떨어졌습니다.

돌이 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

아주 작은 구멍과 불가사리 모양으로 금이 갔습니다.

 

1센트짜리 동전으로 충분히 덮을 만한 상처인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조금 더 커진 느낌이었습니다.

집 근처 자동차 부품가게에 가서

repair kit을 구입하고 설명서를 읽어보니

제 차에 생긴 흠집은 쉽게 수선할 수 있는 모양이 아닙니다.

 

고민하다가 Yelp의 리뷰가 좋은

자동차 유리 보수하는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65불이면 깔끔하게 고쳐주겠답니다.

제가 구입한 repair kit에 비교하면 비쌌지만

워낙 손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체격이 크신 분이 고치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작은 흠을 메꾸는 특수장비들이 있었습니다.

20여 분 그 작은 흠집을 메꾸기 위해서

정성껏 힘을 다하십니다.

 

정말 유리가 완전하게 수리될 수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셔서 머쓱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말을 못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자꾸 말을 시킨 것이 죄송스러웠습니다.

 

작업을 모두 끝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들어갑니다.

 

2.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맡겨진 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작은 흠집을 보수하는 장비들이 꽤 세밀하고 전문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기기들을 발명하고 발전시켜서

기술자들께 판매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수요가 클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자동차 유리의 작은 흠집을

메꿔주신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적당히 메꿨으면 아마 겉모양이 흉해지거나

재보수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뜨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문가에게 맡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덩치가 크신 분이 꼼꼼하게 유리를 보수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릅니다.

정말 작은 일에 충성하신 분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작은 일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매사에 충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실제로 “작은 일”도 있습니다.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일입니다.

올 한해는 그런 일도 챙겨 보고 싶습니다.

 

유리창의 아주 작은 흠집을 보수해주시듯이

세상에는 작은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수행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존경과 박수를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이라는 우리 교회 표어대로

올 한해, 아니 오늘 하루

우리 주변의 작은 일에 성실하고

작은 자들을 챙기고

작은 일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over a little;

I will set you over much.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Mat 25:21)

 

하나님 아버지,

작은 일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1이-메일 목회 서신)

작은 일에 충성

2018년 새해 첫째 주일입니다. 올해는 무술년 개띠해입니다. 일반적으로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견(忠犬)으로 불립니다. 특별히 무술년과 연관시킨 것은 아닌데 2018년 우리 교회 표어가 “작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우선, 작은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가리킬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크고 작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십보백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또한, 작은 일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입니다. 적당히 지나쳐도 될 것 같은 일입니다. 챙기지 않아도 될법한 일입니다. 행여나 열심히 해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 일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소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해야 하는 일/과업뿐만 아니라 관계도 포함합니다. 소홀하기 쉬운 관계, 지나치기 쉬운 관계, 관심을 가져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관계들을 챙기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작은 일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공동체 안에서 행여나 소외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분이 우리 교회에서 신나게, 주인의식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속회, 남선 교회, 여선 교회, 청년부, 성경공부 모임 등을 통해서 “공동체성”을 경험하고, 말씀과 기도로 서로 연결되기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신앙 안에서 교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일 친교 시간에도 서로 챙기고, 삶과 은혜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 가기 원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작은 일과 연관됩니다. 우리 교회는 늘 그랬듯이 어떤 일을 강제하지 않고 자원해서 섬기고 여력이 있는 한에서 사역을 펼쳐왔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마음과 손길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올해에도 작은 일, 궂은일,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말없이 은밀하게 섬기는 손길들을 기대합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는 일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분기마다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고국의 소년소녀가장 돕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소망을 전할 할 수 있다면 성심껏 그 일에 참여하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이기에 더욱더 진실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참빛 가족이 되기 원합니다.-河-

여호와를 알자

좋은 아침입니다.

 

2018년 새해 첫 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해가 바뀌는 것은

달력으로 구분된 시간일 뿐인데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각오와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밋밋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새해가 있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순서에 따라서

호세아 6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이라는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신실한지 보여줍니다.

 

호세아 5장에서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조목조목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벌을 주셨지만

결국에는 상처를 싸매 주시고,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인애(헤세드, 조건 없는 사랑)를 소개합니다.

 

2.

누구든지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절대로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백성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제물을 드립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과 대화하고, 함께 지내고, 한마음이 되면서 서로를 알아갑니다.

그때 비로소 서로를 알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Let us know; let us press on to know the LORD (Hos 6:3)

 

여기서 “힘써” 안다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택과 집중입니다.

 

3

올 한 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데 힘쓰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경험하는데) 몰두하기 원합니다.

 

올해도 멋지게 하나님을 믿어봅시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Let us know; let us press on to know the LORD (Hos 6:3)

 

하나님 아버지,

2018년에도 우리를 찾아오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4이-메일 목회 서신)

송구영신 예배 공동기도

하나님 아버지,

2017년을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와 기쁨입니다.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 기억하며 예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2017년을 보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를 갖고 한 해를 살았는데, 과연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실천했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 내 것을 더 챙기려는 욕심, 남들 보다 더 많이 갖고 높아지려는 교만이 살아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2018년 새해에는 아주 작은 일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소홀하기 쉬운 것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시고, 주변의 이웃들을 찾아가서 손잡아 주고,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올 해가 다갔을 때,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새해에는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해서 서로 미워하고, 파당을 짓고, 다투는 일이 줄어들게 하옵소서.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전쟁, 테러, 총기 사고를 주님께서 통제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주님의 뜻대로 유지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올 한해도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아이들이 주님의 아들과 딸로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하시고,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인생 여정에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정오의 빛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찾아오시는 예수님: 엠마오로 가는 길

2017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 개인은 물론 교회로도 감사와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삶의 구비구비에서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를 갖고 한 해를 보냈습니다. 가족 같은 교회로 함께 세워가고, 받은 사랑을 서로 나누면서 한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길 원했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한 해를 지내셨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서로를 마음에 품고 기도해주고 배려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작은 사랑 나눔을 세 번에 걸쳐서 실천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조국에 있는 30여 명의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지만, 꼭 필요한 곳에 은밀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참빛 식구들께서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내년에도 작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대강절과 성탄절을 맞으면서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아가신 말씀을 나눕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을 두루 만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신비로운 몸을 입으셔서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시지 않으면 제자들이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직후의 상황입니다. 열두제자에 속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동행하시는 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슬며시 말을 거시니 사흘 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죽으심과 최근에 들은 부활 소식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자신이 메시아이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알리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비로소 이들의 눈이 떠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웠던 순간을 회고하면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한 해 동안 우리를 찾아오시고 동행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