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2)

어느덧 2018년 세 번째 달을 맞이합니다.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순절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 사순절에는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시는 참빛 식구들께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일상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로 드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하고, 가정과 세상으로 흩어져서 보내는 6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특별히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삶이기에 예측할 수 있고 일상을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특별한 사건을 만드는 카이로스를 추구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참빛 식구들이 각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고,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령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이 튼튼히 세워지면 성도들의 모임인 우리 교회는 저절로 강해질 것입니다. 누군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바르고 굳센 믿음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모습도 요청됩니다.

 

남은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보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 본문을 따라서 말씀과 기도가 있는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도전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주중에 홈페이지나 목요 서신에 첨부된 주일 설교를 한 번 더 들으시면 각자의 자리에 임하는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물론 새벽 기도회나 수요예배에 참석하실 것도 추천합니다. 예배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교회가 함께 예배하는 것은 주님 앞에서 매우 귀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금식했고 절약한 양식을 어려운 이웃과 나눴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순절은 “나눔의 절기”입니다. 쓰고남은 것이 아니라 절약한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만 보내는 사순절을 넘어서 이웃과 세상을 마음에 품기 원합니다.

 

이처럼 일년 중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사순절에는 신앙훈련을 실천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합니다. 2018년 사순절을 지내면서,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신앙이 견고해지고, 각자 주님 앞에서 실천하시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더 깊은 신앙의 길로 들어가고, 신앙과 삶 특히 일상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삼일절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 날짜로 오늘은

삼일절 제99주년입니다.

 

삼일절은

점점 거세지는 일제의 군부 통치에

33인의 민족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독립 만세운동입니다.

 

3개월여 계속되면서

백만이 넘는 국민이 만세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평화적인 비폭력 독립 만세운동이었고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절반에 가까운 16명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파리 강화조약에 참여했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각 민족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하자는

민족 자결주의를 천명했습니다.

 

여기서 힘을 얻은 민족 지도자들이

일본에 의한 독살 가능성이 제기된

고종 황제의 장례식날 (3월 1일)을

D-day로 삼아서 독립운동을 계획한 것입니다.

 

2.

3.1 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기독교인들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습니다.

자신만 아는 개인적인 신앙을 떨치고

조국과 일제 치하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겨레를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36년 일제강점기 내내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본 천황을 향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온 몸을 던졌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한 문단을 가져왔습니다.

<장기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수 있으나 오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번에 죽어진다면 그대로 이길수 있으나

한달 두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준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다미만 타협하면 살려주는데 용감한 신자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은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겯디어 배기겠습니가?

다못 주님께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

 

삼일절을 보내면서

조국 대한민국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개인을 넘어서

“세상을 맑고 명랑하게”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되기 원합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느헤미야 1:6)

Let your ear be attentive and your eyes open,

to hear the prayer of your servant that I now pray before you day and night

for the people of Israel your servants, confessing the sins of the people of Israel,

which we have sinned against you. (Nehemiah 1:16)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시고

친히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 1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 그리스도 (1)

우리가 매주 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따라서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 “전능하신” “창조주”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설명하고 고백하는 표현과 방식이 많이 있지만, 신앙의 첫 단추를 올바로 채우기 위해서 사도신경의 하나님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빠지면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사도신경에서도 성자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재림주로 오실 것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 가운데 아쉬운 부분은 예수님의 3년 공생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심을 말씀과 사역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없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처음 구절 속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요셉의 약혼자 마리아에게 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심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고 의로우신, 즉 하나님과 동일한 분임을 알려줍니다. 마리아에게 태어나심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뜻합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과학은 물론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역설이고 신앙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거역함으로 에덴에서 쫓겨났고 세상에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은 댓가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인해서 죽음이라는 운명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하시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듯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시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기에 죄지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에게 나타나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 할 자이심이라”(1:21)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세상의 왕이 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우리 인생을 주님께 맡깁시다.-河-

승자와 패자

좋은 아침입니다

1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지만

미국에서 올림픽을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참가하는 종목과

미국 선수가 잘하는 종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에는 올림픽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NBC를 클릭했다가

미국과 캐나다의 여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연장전(OT)부터 생중계로 시청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자들이랍니다.

월드컵에서는 여덟 번 싸워서 일곱 번 미국이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서는 1998년 이후

네 번 연속 캐나다가 미국을 꺽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는

미국이 줄곧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동점 골을 내주고

연장전에서 캐나다에 패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강릉에서 또다시 두 팀이 맞붙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캐나다가2-1로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동점골을 내주고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아이스하키 규칙을 잘 모르는데,

연장전에서는 골키퍼를 제외하고 양 팀 네 명씩 경기했습니다.

쉽게 골을 넣을 것 같았지만, 이미 지쳐버린 체력에

골키퍼들의 선방으로 연장전도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스하키의 “슛아웃/shootout”을 보게 되었습니다.

축구의 승부차기처럼 양 팀에서 다섯 선수가 번갈아 나서서

중앙선부터 퍽을 몰고 가서 골키퍼를 피해서 골을 넣는 방식입니다.

 

막상막하여서 다섯 선수 가운데 양 팀 모두 두 선수만 골을 넣고,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다시 나와서 번갈아 슛아웃을 시도합니다.

 

미국 선수가 능숙하게 골키퍼를 속이고 골을 넣었습니다.

상대편 캐나다 선수는 세계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탁월한 선수였는데

그만 골키퍼에게 막히고 말았습니다.

축구로 치면 메시가 승부킥을 실축한 것과 같은 겁니다.

 

미국팀은 얼싸안고 20년만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캐나다 선수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승리의 눈물을, 덕아웃에서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승자와 패자가 그렇게 갈렸습니다.

 

2.

스포츠에서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런데 어디 스포츠만 그럴까요?

우리 인생에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이것을 알기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승리했다고 교만할 것도 아니고

패배했다고 기죽을 일도 아닙니다.

묵묵히 그리고 여전히 성실하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분복(分福, portion)을 지금/여기서 누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뚜벅뚜벅 신앙과 인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어제 경기를 생각하니

마지막 골을 실수한 캐나다 선수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했으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요!

어제 했던 실수가 평생 생각날 것 같습니다.

어제 일을 인생 교훈으로 삼고 훌훌 털고

또다시 얼음판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전도서 3:4-5)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a time to cast away stones, and a time to gather stones together;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from embracing;(Ecclesiastes 3:4-5)

 

하나님 아버지,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과 같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신앙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2이-메일 목회 서신)

언제까지니까

발런타인데이 학교에 간 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고 이리저리 딸을 찾아다녔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범인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격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예쁘고 인기가 많았던 제이미에 대한 사연입니다. 제이미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친지들은 그녀의 페이스북에 끝없는 추모의 글을 올리며 제이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슬퍼했습니다. 부모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로 밝혀진 열아홉 살 청년이 반자동 연발 소총을 발사해서 열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AR-15 소총은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죽음의 기계”라고 불리던 무기입니다. 한 번에 열 발 이상을 발사할 수 있어서 코네티컷의 뉴타운 초등학교, 캘리포니아의 샌버나디노,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에 사용되었고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플로리다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있던 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코치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총에 맞아 희생당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콘서트가 열리는 곳과 영화관에서 총을 쏴도 상관이 없나 봅니다.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미국 총기 협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의원들을 국회로 보내면 안 됩니다.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 어리석은 일을 멈추고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자동 소총을 규제하는 일을 하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다소 긴 인터뷰를 제가 요약했습니다. 스티브 커의 인터뷰를 실은 칼럼에서는 스포츠인들은 물론 유명인들이 나서서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총기협회는 물론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거듭 주장합니다. 총기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총기 사용을 억제 또는 금지하는 것은 자위권에 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총기규제를 반대하고 미국 총기 협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들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작년에 텍사스 서덜랜드 조그만 교회에서 스물일곱 명이 목숨을 잃는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의 저명한 상하원의원들이 잇따라 희생자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도한다(praying)”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총기협회로부터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야말로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위선적 기도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총기협회 정치 자금을 끊고 총기 규제를 해야 합니다. 말로만 기도하고 뒤로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긴다면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분노하셨던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침에 밝게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간 자녀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옵니다. 모든 생명이 귀하니 단순비교는 조심스럽지만, 미국이 참전한 아프가니스탄에서 2001년부터 현재까지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삼만 천명이고 삼천 명 정도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숫자는 만오천 명이 넘습니다. 총기로 자살하는 숫자까지 더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입니다.

 

하루속히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미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에, 시애틀 씨호크의 풋볼 선수 볼드윈의 “예, 말은 그럴듯하지만, 학생도 교사도 그 누구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정신 차리십시오”라는 리트윗이 마음을 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학교에 금속탐지기라도 설치해 달라는 희생자 어머니의 외침에 귀 기울일 시점입니다. 저절로 탄식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니까?” (2018년 2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창조주 하나님

온 교회가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태생적인 관계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능하십니다. 피조물인 우리와 구별되는 속성이 곧 전능함입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고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을 통해서 고백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사도신경에서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에 이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창세기1장 1절이 “태초에(In the beginning)”로 시작 하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세상이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토대를 놓으신 말 그대로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모든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은 당연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의 뜻에 맞게 주어진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올려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아니기에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권력과 힘으로 통제 하는 것이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물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은 물론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신다는 믿음을 통해서 스스로 겸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우리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오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편139:14). 하나님을 온 세상은 물론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로 고백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河-

언제까지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 일곱 번째 참빛 보이스는

청년부 자매들이 꾸몄습니다.

 

디자이너와 애니메이터의 차이도 배웠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갖고 주신 소명(vocation)을 감당하는 모습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참빛 보이스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구체적인 기도 제목들도 얻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교회 일을 바짝 줄이고

대신에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있기에

참빛 보이스와 같은 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2.

참빛 보이스에서 배웠듯이

자율 주행차의 기술이 꽤 발전하고 있고

회사마다 마지막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든 이의 관심은 사고방지입니다.

자동차 스스로 움직이다가, 행여나 오작동이 나서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잃게 한다면

자율 자동차의 존재 가치가 뚝—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금세 의회에서 자율 자동차 규제 법안을 만들고

국민의 안전이 최고라고 호들갑을 떨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희생자가 생겨도

꿈쩍하지 않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총기 규제입니다.

 

어제 다시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19살의 청년이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서

17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달에도 켄터키에서 15세의 학생이 저지른 총격으로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습니다.

총기사고가 학교로 번지고, 범행을 저지르는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정치인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을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테러로 인해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총격과 총기를 사용한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사고 가능성 역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총격 사건이 생길 때마다 “위로”를 전하는 정치인들의 인터뷰는

더 이상 효력도 설득력도 없습니다.

 

총격 사건으로 서른 명의 목숨을 잃은 후에

총기를 규제하고 2억 달러 이상의 총을 사들인

호주처럼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민자 규제나 국경에 담을 쌓는 것보다

국민을 훨씬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귀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하나님께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범죄입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의 스티브 커(Steve Kerr) 코치의 인터뷰 첫마디가 마음을 칩니다: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 아이들이 총으로, 그것도 학교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가 봅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이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힘없는 사람들, 애꿎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요엘 2:18)

Then the LORD became jealous for his land and had pity on his people. (Joel 2:18)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땅을 기억하시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들이 법으로 실제화되는 것을 속히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15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