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보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이 많이 뒤숭숭합니다.

중서부를 비롯한 백인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는

“미국을 떠나라(get out of America)”는 구호와 함께

백인우월주의가 예상보다 강하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인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캔사스에서도, 오하이오에서도

미국을 떠나라는 식의 혐오 범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달에는

LA에서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백인 여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

이미 4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학창시절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미국을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라는 그릇에 녹아 들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1900년 초부터 소개된 개념이니

백인 중심의 유럽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가리켰을 것입니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멜팅팟”보다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완전히 녹아 내려서 하나가 된 미국이 아니라

샐러드 내용물처럼

각각의 문화, 인종, 관습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미국이라는 그릇 속에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우리 말 만화경을 뜻하는

영어 표현 kaleidoscope(칼레이도스코프)도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 “아름답다(beautiful)”에 “모양(form)”을 합친 말입니다.

다른 배경을 가진 각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같다는 것이지요.

 

3.

미국 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어울리려는 노력보다

자기 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멸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혐오 범죄”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냥 미워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폭언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총격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과 염소와 어린 아이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 더욱 경계하고,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멜팅팟처럼 모두가 하나로 녹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샐러드 보울처럼 각자 제 맛을 내면서

한 공간에 어울려 사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각자의 색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다 함께 어울려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됨과 조화로움을 이루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고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 11:6-11 중에서)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Isa 11:9)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주님 원하시는 평화의 동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9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2: 시편 131편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절기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에 세례받을 성도들이 신앙과 삶을 주님께 조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에는 신앙 훈련에 힘썼습니다. 일년 가운데 10분의 1을 경건하게 살려는 전통입니다. 기도와 말씀 때로는 금식을 동반하면서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 속에 들어가길 소원했습니다. 이웃을 섬기고 선행을 베풀면서 몸으로 신앙을 실천했습니다.

 

올 해도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주님께 가까이 가고, 마음과 영이 맑아지고 주님을 닮아 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한 가운데서 꼭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 네 편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작년 말에 열 한 편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했고,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예배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고 묵상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다가 주님께 오는 발걸음이 감사가 넘치고 가벼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무거워서 억지로 주님께 올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떠든지 성전에 올라오는 그 순간이 감사하고 그 발걸음이 믿음인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1편에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오늘 본문을 시편 속의 진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정도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이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첫째로,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교만을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입니다. 둘째로 거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거만함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고 이웃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기 능력이나 처지를 넘어서는 일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교만함과 거만함을 다스린 사람의 최종적인 고백입니다.

 

시편 131편이 이스라엘 최고의 왕인 다윗의 고백이기에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이처럼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신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할렐루야!  -河-

네 오른손을 잡고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종종 성경을

눈에 보이듯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읽기를 부탁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고 움직이는 동작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옛것을 고집하면서

멈춰있는 그것도 흑백 영상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 읽기가 점점 지루해집니다.

 

어떤 경우는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나 성경 스토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입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의 모습,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띄게 하는 사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와 창자국을 보여주시는 장면은

읽기만 해도 우리 역시 현장에 있는 듯합니다.

 

2.

이번 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장 이하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은

바벨론 포로기에 있거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40장 이하로 넘어가면

익숙하고 은혜로운 말씀이 펼쳐집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서 포로로 살고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 무력함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 땅의 우상을 섬깁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파트는

포로기에

끝까지 남아서 신앙을 지킨 하나님 백성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중에 엊그제 읽은 이사야 42장 13절이

계속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뜬금없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 영감없이 주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꼭 붙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

 

3.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동시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심을

삶 속에서 눈에 보이듯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붙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듣는 것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이사야 41:13)

For I, the Lord your God, hold your right hand; it is I who say to you,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Isa 41;13)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의 손을 잡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 이-메일 목회 서신)

                   

흩어지는 교회 (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소유했다고 알려줍니다(빌3:20).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에 로마 시민권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고 사도 바울 자신도 전도여행을 하면서 로마 시민권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시민권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깨우쳐줍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두 가지 시민권을 갖고 삽니다. 하나는 이 세상 국가에 속하면서 얻게 된 시민권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상 국가의 시민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세상의 시민권과 비교해서 하늘나라 시민권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나님 나라 대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후5:20). 미국에 파견된 한국 대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사는 파견된 국가에서 본국을 위해서 일합니다. 만약에 대사로 파견되어서 대사의 일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고 대사관 안에서만 활동한다면 본국에서 파견한 대사의 임무를 올바로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대사는 밖에 나가서 활동해야 합니다. 파견된 국가와 협력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소개해야 합니다.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지위와 대사라는 임무를 생각하면 왜 우리가 세상 속으로 흩어져야 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고 우리끼리 좋아한다면 그것은 대사의 임무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인 세상 속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이 시작이라면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은 모임의 목적이고 종착점이라고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4장속의 예수님처럼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거나 그들을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면서 이웃을 섬기고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 각자가 교회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흩어진 주의 백성으로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河-

히브리어 “타밈”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뉴스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일어난 최신 소식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전하는 것인데 그 앞에 가짜가 붙었습니다. 영어 표현을 빌리면 옥시모론(oxymoron, 모순 어법)으로 들립니다.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란 말이 성립될 수 없듯이 엄밀히 보면 “가짜 뉴스”는 모순 어법입니다. 뉴스에 가짜가 붙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꽤 어지럽습니다. 가짜 뉴스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이 갈리고 있습니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이 둘로 셋으로 갈려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윗사람부터 자기 마음대로 진실을 왜곡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목적을 이루면 된다는 식입니다. 일단 권력만 잡으면 어떤 것도 숨길 수 있고 자기식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심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에 가짜 뉴스까지 합세하니 서로를 향한 불신이 더해집니다.

 

구약 성경 잠언 19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것을 요즘 세상에 적용하면, 가짜 뉴스를 생산해 내고 거짓을 일삼는 행위를 가리킬 것입니다. 가난해도 성실한 것은 세상의 관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진실되게 살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에서 “성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톰”입니다. 동사로 쓰이면 “타맘”이라고 발음하고 형용사는 “타밈”이라고 읽습니다. 잠언에서 성실로 번역된 “타밈”의 의미는 무엇보다 완전한 것입니다. 시작한 일을 말끔하게 끝맺는 것이 타밈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대충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맡겨진 일을 끝내느라 모든 힘을 쏟아서 소진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정도의 완벽함이 타밈입니다.

 

히브리어 타밈은 잠언 말씀대로 성실을 뜻합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건강함도 타밈입니다. 불의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입술로 남을 저주하거나 몹쓸 말을 쏟아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 앞에서 신실합니다. 우직하게 의로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믿을만하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마음과 행동이 똑같이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타밈은 진실을 뜻합니다. 앞뒤가 같습니다. 겉과 속이 같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억지로 핑계를 대거나, 거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짓을 일삼고 다른 이들까지 속이려 하지만, 타밈 속에는 거짓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가짜라는 말은 얼씬도 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서 정직과 성실이 짝을 이뤄서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은 세상에 타밈이 실종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뉴스 앞에 가짜가 붙을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으로 서로 연결된 요즘 세상에서 누군가 가짜 뉴스를 생산해서 퍼뜨린다면, 우리는 매번 뉴스의 사실 여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번거롭고 시간 낭비입니까? 행여나 정보에 어두운 분들은 가짜 뉴스를 사실로 믿고 그것을 추종할 수도 있습니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약속이자 중요한 가치인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진실이 가짜 뉴스에 가리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세상이 얼마나 어지럽게 변하겠습니까? 타밈을 가로막는 가짜와 거짓은 하루속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입술과 행동이 물러가고 <타밈>이 온전히 세워지길 원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어도 타밈이 실종되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할 지 언정 진실된 세상을 만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진실(타밈)된 것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삶에도 타밈이 임하길 원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조화를 이루고, 거짓 없이 진실한 타밈의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와 같은 모순 어법이 사라지고 진실만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7년 2월 23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맞받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1.

한때는

권투가 국민 스포츠일 때가 있었습니다.

타이틀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오픈 경기들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챔피언을 꿈꾸는 무명 선수들이 4회전 경기를 하는데

처음부터 난타전을 벌입니다.

성격이 급한 선수들은

무모하게 밀고 들어가다가

카운터 블로라는

맞받아치기 주먹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집니다.

 

맞받아치기의 위력은

앞으로 밀고 오는 상대방의 힘까지 주먹에 실리면서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2.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 36-39장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 중에서 다윗과 요시아처럼

하나님을 잘 믿은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넘어뜨린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말을 할 줄 아는 랍사게라는 신하를 시켜서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너뜨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히스기야왕과

유다 입장에서는 큰일입니다.

독 안에 든 쥐입니다. 항복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앗시리아라는 당시의 제국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에 올라갑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앗시리아를 물리쳐 주실 것이니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국 앗시리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앗시리아에게 무릎 꿇지 않고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민족의 위기를

믿음과 기도로 맞받아친 것입니다.

 

3.

우리 역시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를 맞받아칠 필요가 있습니다.

 

골리앗과 마주 대하며 싸웠던 다윗처럼

앗시리아의 회유와 위협 앞에서

기도함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했던 히스기야 왕처럼

상황을 맞닥뜨리는 믿음과 용기를 장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멋지고 힘있게 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맞받아치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참빛식구들께서

맞부딪쳐야 할 일들이 여느 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 어지러운 세상 –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담대히 맞닥뜨리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KO승을 거두길 기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사야 37장 20절)

So now, O Lord our God, save us from his hand,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are the Lord.” (Isaiah 37:2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인생길을 담대하게 마주치고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3이-메일 목회 서신)

흩어지는 교회 (1)

교회(敎會)에 대한 한자어의 의미는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입니다. 교회에 대한 헬라어 “에클레시아”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신약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구약시대에도 “카할”이라는 히브리어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이 존재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할 것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나고 오순절이 되자 약속하신 성령이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니 수천 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초대교인들은 각 가정에서 모였고, 성전에서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며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함께 나눴습니다. 어떤 이들은 재산을 팔아서 제자들 앞에 갖다 놓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 믿는 자의 숫자가 날마다 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아끼셨던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도 헤롯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커다란 박해가 일어나자 베드로를 비롯한 주요 사도들 외에는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것입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민들레 홀씨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봄철이 되면 온 잔디밭을 노란 꽃으로 수놓듯이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부터 시작된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전파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박해는 성도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로 모이는 목적은 결국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하나의 교회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주일예배로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친 마음에 위로받고 다시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세상으로 흩어져서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참빛 식구들이 가는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도 함께 가서 그곳에 씨가 뿌려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파되길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