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레위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는 성경통독반에
열 명이 넘는 분들이 등록해 주셨습니다.

 

성경 통독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주 주보에 나가는 일주일 분량을 읽기 위해서
하루에 3장만 읽으면 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혼자 성경 통독을 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읽어나가면
끝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성경통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언덕 베기가
바로 구약성경의 레위기입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는 말씀부터 조금씩 지루해다가
레위기에 이르면 절정에 이릅니다.

 

“레위기는 슬쩍 넘어가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렇지만 레위기도 엄연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조금 무심해서 그렇지
레위기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레위기의 전반부는
희생 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복잡한 제사법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를 폐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레위기 후반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You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Lev 19:2)

 

레위기 17-27장을 “성결법전”이라고 부르는데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물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조항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백성으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공평과 사랑으로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 필요한 법규들입니다.

 

그 의미와 원리를 올바로 찾아내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 마음에 감동받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예전에 준비해 놓았던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을 첨부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mark)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예수님의 향기가 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살고 있는 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멋진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위기 20:26)
You shall be holy to me, for I the Lord am holy and have separated you from the peoples, that you should be mine. (Leviticus 20:2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날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6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4: 모든 것을 바라며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덕목 열다섯 가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오래 참음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특별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서로를 향해서 오래 참지 않았고, 허물을 덮어 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견디는 힘이 약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오래 참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랑은 친절하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울처럼 반사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친절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무례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내는 것도 친절한 사랑이 아닙니다. 친절은 남을 배려하고 용납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친절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길을 걷습니다. 사랑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모두 포함된 것을 보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사랑의 덕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향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기 사랑은 이웃 사랑을 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불의의 편에 서 있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편에 섰을 때 한없는 자유함을 누리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악한 것과 불의한 것은 세상을 허물지만, 진실은 공동체와 세상을 세웁니다.

 

사랑 속에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합니다. 서로 가릴 것도 없고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나눕니다. 진실된 사랑도 공동체 속에 꼭 있어야 할 모습입니다.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할렐루야!-河-

고린도전서 13장 3 – 사랑은 친절하고

지난 시간에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들 가운데 처음과 나중인 오래 참는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의 오래 참고는 시간을 두고 화나 분노를 다스리면서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는 허물을 덮어주고 비밀을 지켜주면서 감싸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어떤 일이 닥쳐도 사랑으로 견디고 결국에는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면서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알려주는 사랑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을 때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성품이고 행동입니다. 완성된 사랑의 모습을 미리부터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사랑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인 “친절함 (kindness)”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온유라고 번역했지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양선이 여기에 속하고 친절함이라고 읽는 것이 헬라어 본문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친절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마음으로 찾아오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매어 주시는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인생길을 편안하게 걷게 하시는 마음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너그럽게 품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위로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착하고 선한 것에는 유익한 것을 제공한다는 뜻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본문에서 “친절하고”가 단지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인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선하고 친절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고, 성내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울이 알려주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 가운데 꽤 많은 덕목이 친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선하고 인자하게 말씀하시고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착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너그럽게 품어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河-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는 워낙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8년 전 대통령이 될 때부터

준비된 연설이든지, 즉흥 연설이든지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도

가족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성 있는 연설로 지난 8년을 회고했습니다.

 

처음 대통령이 될 때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라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는 해 냈습니다(Yes, we did)”로

고별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2.

제가 미국 대통령 연설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에서 만났던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철이라는 영어교재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만났습니다.

남부 사투리가 섞여 있다고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읽으면서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 정치에 대해서 슬며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연설을 듣게 될 텐데

막말이 아니라 정선되고 진정성 있는 연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수요예배에서 살펴보는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 바울의 연설이 다섯 번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 군중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자신을 심문하는 천부장과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

그리고 마지막에 아그립바왕 앞에서 행한 연설입니다.

물론 아테네에서 행한 연설도 꽤 유명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연설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유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는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전의 상태,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된 과정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이후 그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담대하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을 강권적인 역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4.

우리도 새해를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들처럼

아니 바울처럼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증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주여 입술을 열어 주소서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편 51:15)

O Lord, open my lips,

and my mouth will declare your praise. (Psalms 51:15)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은 물론 입술로도

주님을 전파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2 – 사랑은 오래참고

올 한해도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도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 불확실성이 먹구름처럼 드리워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도 발걸음이 잦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앞 일을 생각하면 늘 염려와 불안이 앞섭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두려워 말라”인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마음의 상태를 잘 알고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새벽 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데 지난 목요일 본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사7:9).

 

연말에 제가 선물로 드린 책 <조지 뮬러처럼>을 갖고 자원하신 분들과 책 읽기와 묵상 모임을 카톡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많은 도움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사했습니다. 올해 성경 통독반에도 많은 분이 자원해 주셨습니다. 일 년 동안 성경을 통독하기가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게 되는데, 함께 읽어가면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는 우리 안에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모임들과 순서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교회가 주도하는 프로그램부터 참빛 식구들이 비공식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임까지 서로 기도해 주고 말씀을 읽고 신앙과 삶을 고민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쉽지 않은 날들이 펼쳐질 때가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함께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면서 걸어가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서로 사랑하라>와 맞물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은 사랑이 무엇인지 “하라”와 “하지 말라”로 나뉘어서 알려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입니다. 사랑을 열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그 가운데 세 가지 덕목이 “인내”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4절),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며”(7절)입니다. 그것을 보면 사랑에서 오래 참음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심판을 연기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견딥니다. 오래 참는 사랑이 신앙을 온전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河-

신뢰

좋은 아침입니다.

 

1.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렇다고 하지만

안팎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적으로도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까지 기도 제목이 참 많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 한 주 “서로 사랑”으로 지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을 볼 줄 믿습니다.

 

2.

새해에 선물로 드린

<조지 뮬러처럼>이란 책은

새해를 맞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의 풍조와 염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보다 앞서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 있을 때도 많습니다.

 

한달 동안 조지 뮬러와 함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이사야서 7장 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If you are not firm in faith, you will not be firm at all.(Isa 7:9)

 

<조지 뮬러와 함께>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역경의 시간에 그분께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할 때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음산하고 황폐한 인생의 산에서 축복의 소나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도,

축복의 소나기를 맞아도 순전한 마음이 아닌 섞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주를 향한 순전한 마음이 없다면,

역경의 골짜기에서 황폐한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28쪽)

 

3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올 한 해를 굳게 세우기 원합니다.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 안에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깊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신뢰를 회복하길 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8:7)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hield; in him my heart trusts, and I am helped;

my heart exults, and with my song I give thanks to him.(Psalms 28:7)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달을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5 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 전서 13장 1: 사랑이 없으면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날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데 올해는 1일이 주일입니다. 덕분에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 이어서 이틀 연속 하나님을 예배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기대와 불안이 우리 마음속에 교차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니 염려가 됩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생길을 걷고 있기에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해”라는 말 그대로 새로운 일이 생기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쁜 일들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큽니다. 그렇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 결심을 적어갑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염려되고, 갈수록 힘겨워지는 목회 환경을 돌아봐도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에는 참빛식구들의 들고 나는 발걸음이 잦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2017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당회(교인 총회)에서 젊은 집사님들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훌륭한 젊은이들을 보내주셨고 이들과 더불어 활력 있게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주일 대표기도를 집사님들이 인도하도록 배려하고, 권사님들은 식사 기도로 축복하고, 교회 사역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진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세대가 어울려서 더불어 세워가는 참빛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흔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지 잠시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을 실천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했을 때,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열방의 빛이 되라고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사랑에서 비롯된 은혜입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고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받은 사랑을 세상에 나눌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가까운 가족과 교회 식구들로부터 세상까지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면서 한 해를 보냅시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