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4: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따라서 새해 첫 달에는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방언과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구제하면서 자신을 내어주는 열심이 있었지만 그 안에 사랑이 빠지니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지난 3주 동안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눠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참음, 친절함, 그리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적인 감상이나 다짐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계속되는 의지, 노력, 훈련 그리고 성품임을 강조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 그리고 이웃을 향했습니다. 시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무례하거나 성을 내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자기의 희생과 섬김이 “친절함”이라는 사랑의 특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곧 우리가 이웃에게 친절할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불의와 함께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사랑은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랑 속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불신과 절망을 몰아냅니다. 사랑은 우리를 일으키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날마다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리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도록 주님의 사랑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이웃과 세상으로 흘러넘칠 때 비로소 하나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고린도 교회의 그릇된 신앙을 바로 잡고 있습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사랑은 미래로 나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다반사로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거울로 보듯이 희미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주님의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생기고 회의가 찾아옵니다. 믿음도 소망도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河-

마음에서 마음으로

조국 대한민국이나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불확실성 속에서 새해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자칫 부딪칠까 염려될 정도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 한마음이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생각을 갖기를 기대한다면 시대를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변한 다원화 시대에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기보다 공동의 선을 위해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그나마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마음을 닫고 산다면 그것만 한 비극이 없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서로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경우를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마음에 벽을 쌓곤 합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곁에서 지켜봐도 아슬아슬하고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마음으로 소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새해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일들이 세상과 가까운 이웃 사이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교회 식구들의 기도 제목을 받았습니다. 빼곡하게 기도 제목을 꼼꼼히 적으신 분부터 적당히 큰 글씨로 서너 개 적은 기도 제목까지 다양합니다. 기도 제목을 강대상 성경책 맨 앞에 끼어 놓고 매일같이 한 장씩 넘기면서 기도합니다. 다급한 기도 제목부터 인생이 걸린 매우 중요한 기도 제목까지 어느 한 가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기도 제목은 다양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하나로 모아집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의 경우, 점점 약해지는 육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믿음과 평안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넉넉하고 따뜻해지길 기도합니다. 취업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굳게 잡아 주셔야 합니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들고 앞길이 어두울 때,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들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교수님과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도 마음을 교회에 두면 우리 식구가 되지만, 마음이 떠나면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공동체 식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을 합쳐서 힘을 모으고 서로 사랑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잠언 말씀대로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다투는 것 보다 마른 떡 한 조각 밖에 없어도 화목한 것이 최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을 두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하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의 하는 일을 책임져 주실 테니 마음에 있는 일을 그대로 행하라는 충고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한 사람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백지 수표와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을까요!

 

어느덧 새해의 첫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일들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가까운 이웃부터 온 세상까지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눈길 닿는 곳을 우리도 바라보고, 하나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 마음도 가고, 하나님 손길 닿는 곳에 우리 손이 닿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에 전달하는 주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우리 앞에 안개처럼 드리운 불확실성을 거둬낼 수 있는 하늘의 지혜와 용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2017년 1월 26일 한국일보 종교칼럼)

구약성경 레위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는 성경통독반에
열 명이 넘는 분들이 등록해 주셨습니다.

 

성경 통독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주 주보에 나가는 일주일 분량을 읽기 위해서
하루에 3장만 읽으면 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혼자 성경 통독을 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읽어나가면
끝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성경통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언덕 베기가
바로 구약성경의 레위기입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는 말씀부터 조금씩 지루해다가
레위기에 이르면 절정에 이릅니다.

 

“레위기는 슬쩍 넘어가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렇지만 레위기도 엄연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조금 무심해서 그렇지
레위기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레위기의 전반부는
희생 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복잡한 제사법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를 폐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레위기 후반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You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Lev 19:2)

 

레위기 17-27장을 “성결법전”이라고 부르는데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물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조항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백성으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공평과 사랑으로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 필요한 법규들입니다.

 

그 의미와 원리를 올바로 찾아내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 마음에 감동받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예전에 준비해 놓았던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을 첨부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mark)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예수님의 향기가 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살고 있는 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멋진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위기 20:26)
You shall be holy to me, for I the Lord am holy and have separated you from the peoples, that you should be mine. (Leviticus 20:2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날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6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4: 모든 것을 바라며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덕목 열다섯 가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오래 참음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특별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서로를 향해서 오래 참지 않았고, 허물을 덮어 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견디는 힘이 약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오래 참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랑은 친절하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울처럼 반사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친절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무례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내는 것도 친절한 사랑이 아닙니다. 친절은 남을 배려하고 용납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친절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길을 걷습니다. 사랑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모두 포함된 것을 보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사랑의 덕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향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기 사랑은 이웃 사랑을 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불의의 편에 서 있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편에 섰을 때 한없는 자유함을 누리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악한 것과 불의한 것은 세상을 허물지만, 진실은 공동체와 세상을 세웁니다.

 

사랑 속에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합니다. 서로 가릴 것도 없고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나눕니다. 진실된 사랑도 공동체 속에 꼭 있어야 할 모습입니다.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할렐루야!-河-

고린도전서 13장 3 – 사랑은 친절하고

지난 시간에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들 가운데 처음과 나중인 오래 참는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의 오래 참고는 시간을 두고 화나 분노를 다스리면서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는 허물을 덮어주고 비밀을 지켜주면서 감싸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어떤 일이 닥쳐도 사랑으로 견디고 결국에는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면서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알려주는 사랑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을 때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성품이고 행동입니다. 완성된 사랑의 모습을 미리부터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사랑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인 “친절함 (kindness)”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온유라고 번역했지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양선이 여기에 속하고 친절함이라고 읽는 것이 헬라어 본문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친절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마음으로 찾아오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매어 주시는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인생길을 편안하게 걷게 하시는 마음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너그럽게 품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위로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착하고 선한 것에는 유익한 것을 제공한다는 뜻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본문에서 “친절하고”가 단지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인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선하고 친절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고, 성내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울이 알려주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 가운데 꽤 많은 덕목이 친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선하고 인자하게 말씀하시고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착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너그럽게 품어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河-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는 워낙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8년 전 대통령이 될 때부터

준비된 연설이든지, 즉흥 연설이든지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도

가족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성 있는 연설로 지난 8년을 회고했습니다.

 

처음 대통령이 될 때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라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는 해 냈습니다(Yes, we did)”로

고별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2.

제가 미국 대통령 연설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에서 만났던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철이라는 영어교재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만났습니다.

남부 사투리가 섞여 있다고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읽으면서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 정치에 대해서 슬며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연설을 듣게 될 텐데

막말이 아니라 정선되고 진정성 있는 연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수요예배에서 살펴보는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 바울의 연설이 다섯 번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 군중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자신을 심문하는 천부장과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

그리고 마지막에 아그립바왕 앞에서 행한 연설입니다.

물론 아테네에서 행한 연설도 꽤 유명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연설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유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는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전의 상태,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된 과정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이후 그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담대하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을 강권적인 역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4.

우리도 새해를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들처럼

아니 바울처럼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증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주여 입술을 열어 주소서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편 51:15)

O Lord, open my lips,

and my mouth will declare your praise. (Psalms 51:15)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은 물론 입술로도

주님을 전파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2 – 사랑은 오래참고

올 한해도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도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 불확실성이 먹구름처럼 드리워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도 발걸음이 잦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앞 일을 생각하면 늘 염려와 불안이 앞섭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두려워 말라”인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마음의 상태를 잘 알고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새벽 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데 지난 목요일 본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사7:9).

 

연말에 제가 선물로 드린 책 <조지 뮬러처럼>을 갖고 자원하신 분들과 책 읽기와 묵상 모임을 카톡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많은 도움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사했습니다. 올해 성경 통독반에도 많은 분이 자원해 주셨습니다. 일 년 동안 성경을 통독하기가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게 되는데, 함께 읽어가면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는 우리 안에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모임들과 순서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교회가 주도하는 프로그램부터 참빛 식구들이 비공식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임까지 서로 기도해 주고 말씀을 읽고 신앙과 삶을 고민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쉽지 않은 날들이 펼쳐질 때가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함께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면서 걸어가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서로 사랑하라>와 맞물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은 사랑이 무엇인지 “하라”와 “하지 말라”로 나뉘어서 알려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입니다. 사랑을 열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그 가운데 세 가지 덕목이 “인내”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4절),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며”(7절)입니다. 그것을 보면 사랑에서 오래 참음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심판을 연기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견딥니다. 오래 참는 사랑이 신앙을 온전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