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주 오래전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지난 번 설교 시간에 나눴던

법궤/언약궤(the ark of covenant)가 등장합니다.

영화 제목 자체가 “잃어버린 법궤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나치가 숨겨진 법궤를 찾아서 난공불락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존스 교수가 나치의 계획을 막아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모셔온 법궤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있다가

언제부터인지 성경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모세가 죽었던 느보산의 동굴에 숨겼다고 합니다.

 

로마 성당의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

이집트 또는 에티오피아 심지어 아프리카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까지

실제로 법궤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설(說)이 난무합니다.

 

법궤가 없길 망정이지

실제로 법궤가 남아 있었으면

영화 속의 나치처럼 하나님 능력의 법궤를 손에 쥐려는 세력들부터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법궤를 섬기려는 종교인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2.

영어 성경에는

법궤에 해당하는 Ark라는 표현이 크게 세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만든 법궤 외에도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지었던 “방주”가 Ark입니다.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모세가 들어있던 “상자”도 Ark입니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상자는

<테이바>라는 히브리어가 쓰였고

다윗이 예루살렘에 가져온 법궤는 <아-론>이라고 부르는데

방주, 상자, 법궤의 공통적인 모양인 “상자”를 뜻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모세의 갈대 상자 역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능력, 영광을 뜻합니다.

 

3.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우리 모두는 하늘 성전에서 법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요한계시록 11:19)

The ark of his covenant was seen within his temple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하나님의 법궤를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런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법궤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왔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마음과 삶 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보호와 인도,

능력과 임재의 법궤를

마음과 삶 속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오늘 새벽에 읽은 이사야 말씀입니다.

그가[주께서]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이사야 57:14)

And it shall be said, “Build up, build up, prepare the way,

remove every obstruction from my people’s way.” (Isaiah 57:14)

 

하나님 아버지

마음과 삶 속에 주님을 모시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능력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3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4: 시편 133편

지난주에는 애써서 찾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온 다윗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자신의 성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의 기쁨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을 기쁨과 감사라고 알려줍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기쁨이 아니라 안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과 삶에 들어오셨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멈추지 않고 죽음의 길로 치닫던 인생의 궤도를 바꿔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섰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3편도 춤을 출 듯이 기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주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예배가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 일인지 찬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13:35).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사촌처럼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같은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니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 133편의 기쁨은 공동체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성령 충만합니다. 기름이 머리부터 옷 깃까지 흘러내립니다. 여기서 기름은 풍성함, 능력 그리고 은혜의 상징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나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흘러 넘치게 부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제사장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을 제사장으로 기름 부을 때 임했던 기쁨이 성전에 올라온 모든 백성에게 흘러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헐몬 산은 해발 2,700미터쯤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이 되면 헐몬 산에 이슬이 흠뻑 내립니다. 그 이슬이 이스라엘의 모든 산을 적셔줍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 날마다 내리는 새벽 이슬은 생명수입니다. 교회 안에 이슬같은 생명의 은혜가 소리 없이 내리길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영생의 복을 향해서 함께 걸어가는 신앙의 순례자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자라길 원합니다.-河-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2주 전 수요 예배를 마치고

권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안내 데스크에 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머리숱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가운데 머리가 훤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한 권사님께서

희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한국의 부분 가발이 아주 좋으니 그거 사용하시면 돼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아- 부분 가발이 있었구나”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버님을 닮은 것 같으니 머리가 많이 빠질 텐데

그냥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권사님께서 알려주신 부분 가발을 사용해서

외모를 치장할 것인가?

 

이 모습 그대로 가는 것

즉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래 제 생각이었는데

“부분 가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외모에 변화를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래도 젊어 보이면,

생동감 있게 미래를 맞이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제 머리 상태가 괜찮습니다.^^

거기에 부분 가발이라는 든든함까지 있으니

머리숱이 없어져도 안심이 됩니다.

 

2.

지난주에는 시편 132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은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나서는 것,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을 현재에 모심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것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미래로 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앞을 향하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중요합니다.

 

미래는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가능성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며 기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다시 발견하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꿈을 꾸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께

주님의 꿈을 보여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끝없이 이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139편 9-10절)

If I take the wings of the morning and dwell in the uttermost parts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sha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shall hold me.(Psalms 139:9-10)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16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3: 시편 132편

지난 시간에 살펴본 시편 131편과 오늘 132편은 다윗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자로서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즐기면서 감당하지 못할 큰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자신이 늘 연습하던 물맷돌을 갖고 골리앗을 넘어뜨릴 정도의 믿음과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광야를 배회하면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았지만 나이 서른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 같은 왕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면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품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쓰러져가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세워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2편은 성전에 올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이 겪었던 어려움을 기억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개역 개정에서 “겸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에는 고난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 드리운 고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한 그의 믿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낼 때 그들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임재 상징 법궤를 찾아서 예루살렘에 모셔 오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밤낮없이 쉬지 않고 법궤를 찾아다녔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추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열심이 그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법궤를 찾은 다윗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법궤를 영원히 모시기로 작정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의 후손을 왕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 성에 풍족한 먹거리와 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추구한 다윗의 믿음은 후손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습니다. 백성들도 다윗의 믿음을 닮고 싶었을 것입니다.

 

시편 132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다윗의 열심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능력의 상징인 법궤를 찾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갔고, 하나님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 모셨고, 장차 성전을 지으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과거를 새로 구축했고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지나온 발자취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장차 펼쳐질 앞날을 꿈꾸기 원합니다.-河-

샐러드 보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이 많이 뒤숭숭합니다.

중서부를 비롯한 백인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는

“미국을 떠나라(get out of America)”는 구호와 함께

백인우월주의가 예상보다 강하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인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캔사스에서도, 오하이오에서도

미국을 떠나라는 식의 혐오 범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달에는

LA에서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백인 여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

이미 4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학창시절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미국을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라는 그릇에 녹아 들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1900년 초부터 소개된 개념이니

백인 중심의 유럽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가리켰을 것입니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멜팅팟”보다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완전히 녹아 내려서 하나가 된 미국이 아니라

샐러드 내용물처럼

각각의 문화, 인종, 관습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미국이라는 그릇 속에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우리 말 만화경을 뜻하는

영어 표현 kaleidoscope(칼레이도스코프)도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 “아름답다(beautiful)”에 “모양(form)”을 합친 말입니다.

다른 배경을 가진 각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같다는 것이지요.

 

3.

미국 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어울리려는 노력보다

자기 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멸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혐오 범죄”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냥 미워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폭언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총격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과 염소와 어린 아이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 더욱 경계하고,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멜팅팟처럼 모두가 하나로 녹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샐러드 보울처럼 각자 제 맛을 내면서

한 공간에 어울려 사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각자의 색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다 함께 어울려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됨과 조화로움을 이루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고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 11:6-11 중에서)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Isa 11:9)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주님 원하시는 평화의 동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9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2: 시편 131편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절기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에 세례받을 성도들이 신앙과 삶을 주님께 조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에는 신앙 훈련에 힘썼습니다. 일년 가운데 10분의 1을 경건하게 살려는 전통입니다. 기도와 말씀 때로는 금식을 동반하면서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 속에 들어가길 소원했습니다. 이웃을 섬기고 선행을 베풀면서 몸으로 신앙을 실천했습니다.

 

올 해도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주님께 가까이 가고, 마음과 영이 맑아지고 주님을 닮아 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한 가운데서 꼭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 네 편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작년 말에 열 한 편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했고,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예배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고 묵상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다가 주님께 오는 발걸음이 감사가 넘치고 가벼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무거워서 억지로 주님께 올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떠든지 성전에 올라오는 그 순간이 감사하고 그 발걸음이 믿음인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1편에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오늘 본문을 시편 속의 진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정도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이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첫째로,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교만을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입니다. 둘째로 거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거만함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고 이웃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기 능력이나 처지를 넘어서는 일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교만함과 거만함을 다스린 사람의 최종적인 고백입니다.

 

시편 131편이 이스라엘 최고의 왕인 다윗의 고백이기에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이처럼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신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