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움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아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권사님께서 입원해 계신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샌프란 높은 곳에 위치한 병원인데

주차가 힘들어서 멀리 세워놓고

언덕길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요즘 샌프란은 저녁이 되면 안개가 밀려오고

아침에는 종종 이슬비가 내립니다.

 

걷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인지

병원 건물들이 액자처럼 배치가 되고

그 사이로 샌프란 도시가 내려다보였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와(wow)”하고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순간의 경험이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짧은 순간의 이미지가

온종일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2.

연구에 의하면

“와(wow)” “야(yay)” “오(oh)”등의 감탄사를 자주 사용할 때

행복한 감정을 갖게 된답니다.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경험 (awe-inspiring experience)”

– 감탄사를 외칠 정도로 경이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밤하늘의 별들과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 속에서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느끼는 행복이 있습니다.

 

3.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경외심을 느꼈던 인물이나 사건이 많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40년 동안 이집트 왕자로 살다가

그 다음 40년을 광야에서 살았던 모세 앞에 나타난

떨기나무의 불꽃이야말로 모세는 물론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불꽃이 있는데

가시덤불이 타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라고 자신을 알리십니다.

가서,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동족들을 해방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4.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하는 것은

행복을 넘어서 커다란 축복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통해서

소름이 끼치고 전율할 정도의 “경이로움(awesome)”과 마주칩니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Praise the Lord!”

 

지난 주일에는

야외예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친교 하면서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모레 맞이할 8월의 첫 주일에는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 경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이야기를 마음에 간직하고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뜨겁게 예배하며,

서로 고백하고 간증하는 성도의 교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시편 66:5)

Come and see what God has done:

he is awesome in his deeds toward the children of man.(Psalms 66:5)

 

하나님 아버지

새달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손수 행하시는 일을 통해서

경이로움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8.5 이-메일 목회 서신)

부흥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사역을 자세히 기록한 누가 복음과 짝을 이루면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교회의 탄생과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성령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위로하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 그대로 영(靈)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거주(內住)하십니다.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서 여러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객들에게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각 지역의 언어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사도들의 복음전파는 예루살렘을 들썩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소식과 예수님이 주님과 메시아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복음은 예루살렘 주민들은 물론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찾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식이었습니다.

 

새로 예수님을 믿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가진 것을 팔아서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공동체를 세워갔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집에 모여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사니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이었고 저절로 전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사람이 주도하는 부흥은 부작용이 생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랑이 되기 쉽습니다. 성령이 주도하는 부흥은 자연스럽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예배와 친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았을 때 그들 삶의 모습이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앙과 삶의 일치된 모습에 세상 사람들이 감동받았고 부러움을 샀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주도하시는 부흥을 기대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복음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 나오는 부흥입니다. 참빛교회 성도들은 바르고 근사하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河-

뿌리깊은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오순절 성령강림은

언제 읽어도 신바람 나는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보이고 그것이 각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각기 다른 언어로 말했습니다.

 

바람 소리, 불의 혀와 같은 모습,

오순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에 온 다양한 사람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3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설교,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초대교회의 모습까지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입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했듯이

사도행전의 역사가 참빛 식구들께 개별적으로 임하고

우리 교회 위에도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오순절 성령 강림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읽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모습보다

성령을 받고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어제 수요예배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바람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하나님의 임재인 불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한 것은 복음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족속들,

즉 땅끝까지 전해질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성령의 체험은

회개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힘을 줍니다.

 

3.

나사못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나사못이 나무 판에 깊이 박히는 것과 같습니다.

쉽게 흔들리지도 빠지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나사못이라도

드라이버가 아닌 망치로 내리치면

흔들흔들 나무판에 박혀서 다시 빠지곤 합니다.

 

십자형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차근차근 못을 박아야 보기도 좋고 견고합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성령 체험을

단지 감정적인 경험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못을 망치로 내려치는 것과 같습니다.

일시적 충격에 못이 박히지만 쉽게 빠져버립니다.

어떤 경우는 나무판이 쪼개지기도 합니다.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4.

성령 체험은

체계적이고, 꼼꼼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감정이 동반되지만

의지와 때로는 육체까지 주님을 경험합니다.

그 체험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전율이 일기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 없이 확신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건입니다.

 

깔끔하고 견고하게 자리잡은 나사못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기 원합니다.

확신 가운데 거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원합니다.

 

그 힘으로 주어진 삶을

참되고, 아름답고, 선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전 1:8)

Our Lord Jesus Christ who will sustain you to the end,

guiltless in the day of our Lord Jesus Christ. (1Cor 1:8)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나사못처럼 우리 안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7.29 이-메일 목회 서신)

걸어가는 신앙

 90년대 후반,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왔을 때 아이들 사이에서 “포켓몬”이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학교에서 오면 포켓몬 카드를 갖고 놀았습니다. 게임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는 물론 아이들 옷이나 문방구에 온통 포켓몬 캐릭터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포켓몬은 닌텐도라는 게임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다양한 상품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포켓 몬스터”의 약자로 “주머니 속의 괴물”이란 뜻입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괴물들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너가 되어서 몬스터 볼로 불리는 가상의 상자에 괴물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고 키울 수도 있습니다. 피카츄라는 십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쥐 형상의 캐릭터가 가장 유명합니다. 캐릭터들이 자라고 진화하면서 아이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임입니다.

최근에 포켓몬 열풍이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를 필두로 다시 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게임과 현실을 혼합시킨 증강현실(AR)에 “포켓몬 고(go)”라는 신종 게임을 장착시켰습니다. 미국에서만 하루 사용자가 3천만 명에 육박하고, 전 세계에 포켓몬고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가로수에 부딪히거나 도로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범죄에 사용된다는 끔찍한 소식도 있습니다.

 

요즘 세대를 따라잡고 싶어서 저도 휴대폰에 포켓몬고 게임을 설치해보았습니다. 설치를 끝내자마자 우리 집 거실 텔레비전 앞에 포켓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귀여운 모습입니다. 우리 집에 포켓몬이 사는 것 같아서 놀랍고 또 신기했습니다. 포켓몬 볼을 던져서 잡으니 또 한 마리가 책꽂이에 나타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두 마리 모두 잡았더니 2단계로 진입했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웬걸 남의 집 안에 포켓몬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도 나타나고 이러 저리 동네를 헤매고 다니게 생겼습니다. 저의 포켓몬고 체험은 거기까지 였습니다. 자칫 목사가 게임에 빠져서 예배시간에도 포켓몬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얼른 게임을 지웠습니다.

 

포켓몬고 게임 뒤에 붙은 “고(go)”를 보면서 “걷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할락크>가 생각났습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멈춰 있지 않고 발을 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 땅으로 길을 떠날 때도 할락크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길 위를 걷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길 위를 걷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여정, 즉 여행길입니다. 인생길을 걷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우리 모두 길을 걷는 나그네입니다.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것도 할랄크라는 동사로 표현되는 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들이 지켜야할 율법을 할락크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형을 써서 <할락카>라고 부릅니다. 율법은 발로 걸어가면서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할락크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멈춰있는 명사나, 화려한 형용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들고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그리고 거리로 흩어지는 것이 할락크 즉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날을 <할락크> 걸어갑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고 포켓몬 (주머니 속의 괴물)을 찾아서 걷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리를 향해서 걷습니다. 생명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생길 고비고비에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도 만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걷고 또 걷기 원합니다. (2016년 7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숨은 영웅들 11: 세례요한

이번 연속 설교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숨은 영웅은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두고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자연산 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던 세례 요한을 존경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알리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님은 의롭고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특별한 아들입니다.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하고, 구약의 나실인처럼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고, 엘리야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자입니다. 그만큼 천사가 알려주는 아기, 즉 세례 요한의 탄생은 특별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는 나사렛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도 알렸습니다.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친척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태중에 있던 세례 요한이 복중에서 뛰놀면서 반기는 장면도 성경에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매우 비극적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왕비로 삼은 것을 질책했는데 이것을 문제 삼은 왕비에 의해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서른 남짓한 나이였을 것입니다. 비록 세례 요한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메시아를 알리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데 충실했습니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지만 예수님보다 앞서지 않고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한 그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옳은 말을 하고 바른 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어떤 소명으로 살아가든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와 왕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삶을 산 것입니다. 성경 속의 숨은 영웅들 열한 명을 살펴본 연속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열 두 번째 숨은 영웅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기 원합니다. -河-

낯선 시각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번에 걸쳐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배운 후에

맞이하는 사도행전이기에

말씀을 대하고 읽는 깊이가 다를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큽니다.

 

사실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차분하게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를 빠짐없이 나오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미국 교회를 출석하던 형제였는데

떠나기 전 식사하는 자리에서

작은 교회 새벽기도회 자리를 지켜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제가 좋았습니다.

새벽마다 성경 한 장씩 읽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성경을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맞는 말일 것입니다.

보통 결심이 아니면

평상시에 성경을 가까이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2.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알파고가 나오고 포켓만 고가 나오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웬만큼 교회에 다닌 분들은

성경의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대충대충 읽게 됩니다.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시작하고

속회에서는 마가복음을 마치고

청년부에서는 요나서를 읽고

새벽기도회에서는 시편을 읽고 있는데 (휴- 저만 많이 읽는가 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낯선 시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환경에 들어가면

호기심과 경계심을 갖고 차분하게 대처합니다.

무엇보다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처음 읽는 말씀처럼,

낯선 시선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도 발견할 수 있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질문이 생기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3

성경을 자세히 읽다 보면

현재의 가치관이나 문화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과 우리 사이에

시간, 문화, 지리적인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성경 자체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넘어서

성경 말씀 속에 깃든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왜 이런 사건, 이야기, 주제가

성경에 쓰였는지,

성경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글보다

하나님께서 성경 깊이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는 자세로 말입니다.

 

“아- 이런 뜻이구나”라고 생각이 되면

그것을 현재 자신의 상황과 오늘날 우리 세상에 적용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기 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your law. (Ps 119:18)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이 참빛 식구들이 걸어가는 발에 등이되고

가는 길에 빛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7.22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들 10: 구레네 시몬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은 영웅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의하면 그는 구레네 시골 출신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구경하다가 그만 로마 군인들에게 지목되어서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악하고 추한 죄인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억지로”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구레네 시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특별하게 선택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지척에서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당연히 예수님을 믿었겠지요. 오늘 본문에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보통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앞에 나오는 표현이 그 사람을 알려주는 중요한 표시가 됩니다. 본문을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알렉산더와 루포가 있지요. 그 분들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졌습니다.” 마가복음이 쓰일 당시에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 유명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아버지 덕분입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장에서 사도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합니다(롬16:13). 구레네 시몬의 이름이 빠진 것을 보니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와 아들 루포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가 곧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깊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지치신 모습을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무게를 경험한 사람도 구레네 시몬 뿐입니다. 그가 지고 간 십자가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대신 지고 가야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로 가고 구레네 시골 출신 시몬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합니다. 그러고 보니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을까요!

 

우리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억지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이 가장 복된 일임을 구레네 시몬을 통해서 배웠기에 즐겁게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걷습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