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좋은 아침입니다.

 

1.

성경에 나오는 표현 가운데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보배(treasure)” 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보배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1:19)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이신 예수께 나아가 (베드로전서 2:4)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베드로전서 2:6-7)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도 보배에 비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 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4)

 

이처럼 성경에서 보배라고 하면,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약속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보배로우면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과연 우리가 믿는 예수님 그리고 믿음을

성경대로 보배롭게 여기는지 돌아봅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에서도 “보배”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33:5-6)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히브리어의 보배라는 단어 속에는

“보물을 저장한 창고”라는 뜻도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보배요 보물창고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요!

 

3.

그 옛날 많은 사람이 금을 찾아서

캘리포니아로 왔듯이

요즘 사람들도 금과 비견되는 보물을 찾아다닙니다.

물질, 명예, 권력, 인맥, 쾌락, 정보 등등

각자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보배라고 깨우쳐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기 원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이 예수님을 닮고

참빛 식구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과 향기가 나기를 기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The fear of God, it is his treasure.

 

하나님 아버지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의 보배로 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9 이-메일 목회 서신)

                   

교회: 그리스도의 몸

필립 얀시라는 분이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고 번역된 조그만 책을 썼습니다. 본인이 겪었던 교회 생활을 돌아보면서 교회의 아쉬운 모습과 자랑스러운 모습을 하나씩 짚었습니다. 우리가 1월 한달 동안 살펴 보았던 고린도 교회와 요즘 교회를 비교하면서 교회의 온전한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힘겨운데, 정치나 교회나 외부 요인까지 겹쳐서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부터 솔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명예 권사님과 집사님들을 세우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임명되신 분들은 교회의 임원으로 교회를 섬기기로 결심하고 주님 앞에서 고백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젊은 집사님들을 세우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어르신들께서 “우리 교회 젊은이들은 정말로 모범적이고 겸손하고 도리어 우리가 배운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참 귀한 젊은이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게 되어서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임원 훈련 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느 곳에 있든지 평생동안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주의 일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어르신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우리 교회처럼 여러 세대가 아름답게 어울려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르신들의 사랑과 아량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부모님의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품어 주시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언급했던 고린도 교회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도 많이 부족합니다. 목사인 저부터 부족하고 실수 투성이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잘못을 꼬집거나 교회의 어두운 모습만 보고 투정한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많이 상하게 될 것입니다. 대신에, 나 자신보다 교인들을 먼저 생각하고, 주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면 우리 참빛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줄 믿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필립 얀시의 책 영어제목은 <교회, 걸림돌이라고요? Church: Why bother?>입니다. 작가에게도 교회가 걸림돌이 된 적이 있었지만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극복했습니다. 우리도 믿음과 사랑 가운데 힘을 합치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 주시면 교회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줄 믿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교회가 깨질 새라 애지중지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참되고 바르고 아름답게 세워 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의 일꾼들이 많이 세워지길 원합니다.-河-

신뢰 2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만 해도 비를 무척 기다렸는데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립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비 소식입니다.

 

날씨가 습하고 쌀쌀하니

독감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감기로 인해서

예배에 못 오신 권사님들이계셨는데

참빛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2.

세상이 매우 뒤숭숭합니다.

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매일같이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다가

세계에서 따돌림은 물론 경제적으로 크게 후퇴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체류 신분을 놓고,

앞으로 미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모르니

많은 분들이 염려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뜻인데

자꾸 혼자만 잘살겠다고 고집부리고

차 떼고 포 떼고 독불장군식으로 정치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네 서민들에게 닥칠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파장이 크고

여기저기서 반-트럼프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도 꽤 뒤숭숭합니다.

 

이런 시절에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악한 동기들이 만연한

불완전한 세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3.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가능한 한 은혜롭게 읽고 묵상한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4-27장은

요한계시록의 예고편이라고 할 정도로

세상의 악과 선이 명확히 갈리는 “그 날”에 될 일을 알려줍니다.

 

악한 세력들이 무너집니다.

바다의 용들이 패하고

세상의 제국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주의 뜻을 행한 백성들이

눈물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어지럽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힘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4.

지난 주일에 함께 나눴듯이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서로 사랑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믿어주고 참아주고

서로에게 친절히 행하면서

손에 손을 붙잡고 과도기를 잘 지나가야 합니다.

 

힘들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향한 믿음이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You keep him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you,

because he trusts in you. (Isaiah 26:3)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소망이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어려울수록 서로 사랑하면서

견디고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4: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따라서 새해 첫 달에는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방언과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구제하면서 자신을 내어주는 열심이 있었지만 그 안에 사랑이 빠지니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지난 3주 동안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눠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참음, 친절함, 그리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적인 감상이나 다짐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계속되는 의지, 노력, 훈련 그리고 성품임을 강조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 그리고 이웃을 향했습니다. 시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무례하거나 성을 내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자기의 희생과 섬김이 “친절함”이라는 사랑의 특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곧 우리가 이웃에게 친절할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불의와 함께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사랑은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랑 속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불신과 절망을 몰아냅니다. 사랑은 우리를 일으키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날마다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리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도록 주님의 사랑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이웃과 세상으로 흘러넘칠 때 비로소 하나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고린도 교회의 그릇된 신앙을 바로 잡고 있습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사랑은 미래로 나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다반사로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거울로 보듯이 희미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주님의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생기고 회의가 찾아옵니다. 믿음도 소망도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河-

마음에서 마음으로

조국 대한민국이나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불확실성 속에서 새해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자칫 부딪칠까 염려될 정도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 한마음이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생각을 갖기를 기대한다면 시대를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변한 다원화 시대에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기보다 공동의 선을 위해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그나마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마음을 닫고 산다면 그것만 한 비극이 없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서로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경우를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마음에 벽을 쌓곤 합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곁에서 지켜봐도 아슬아슬하고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마음으로 소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새해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일들이 세상과 가까운 이웃 사이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교회 식구들의 기도 제목을 받았습니다. 빼곡하게 기도 제목을 꼼꼼히 적으신 분부터 적당히 큰 글씨로 서너 개 적은 기도 제목까지 다양합니다. 기도 제목을 강대상 성경책 맨 앞에 끼어 놓고 매일같이 한 장씩 넘기면서 기도합니다. 다급한 기도 제목부터 인생이 걸린 매우 중요한 기도 제목까지 어느 한 가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기도 제목은 다양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하나로 모아집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의 경우, 점점 약해지는 육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믿음과 평안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넉넉하고 따뜻해지길 기도합니다. 취업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굳게 잡아 주셔야 합니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들고 앞길이 어두울 때,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들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교수님과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도 마음을 교회에 두면 우리 식구가 되지만, 마음이 떠나면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공동체 식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을 합쳐서 힘을 모으고 서로 사랑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잠언 말씀대로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다투는 것 보다 마른 떡 한 조각 밖에 없어도 화목한 것이 최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을 두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하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의 하는 일을 책임져 주실 테니 마음에 있는 일을 그대로 행하라는 충고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한 사람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백지 수표와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을까요!

 

어느덧 새해의 첫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일들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가까운 이웃부터 온 세상까지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눈길 닿는 곳을 우리도 바라보고, 하나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 마음도 가고, 하나님 손길 닿는 곳에 우리 손이 닿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에 전달하는 주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우리 앞에 안개처럼 드리운 불확실성을 거둬낼 수 있는 하늘의 지혜와 용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2017년 1월 26일 한국일보 종교칼럼)

구약성경 레위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는 성경통독반에
열 명이 넘는 분들이 등록해 주셨습니다.

 

성경 통독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주 주보에 나가는 일주일 분량을 읽기 위해서
하루에 3장만 읽으면 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혼자 성경 통독을 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읽어나가면
끝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성경통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언덕 베기가
바로 구약성경의 레위기입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는 말씀부터 조금씩 지루해다가
레위기에 이르면 절정에 이릅니다.

 

“레위기는 슬쩍 넘어가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렇지만 레위기도 엄연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조금 무심해서 그렇지
레위기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레위기의 전반부는
희생 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복잡한 제사법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를 폐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레위기 후반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You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Lev 19:2)

 

레위기 17-27장을 “성결법전”이라고 부르는데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물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조항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백성으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공평과 사랑으로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 필요한 법규들입니다.

 

그 의미와 원리를 올바로 찾아내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 마음에 감동받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예전에 준비해 놓았던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을 첨부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mark)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예수님의 향기가 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살고 있는 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멋진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위기 20:26)
You shall be holy to me, for I the Lord am holy and have separated you from the peoples, that you should be mine. (Leviticus 20:2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날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6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4: 모든 것을 바라며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덕목 열다섯 가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오래 참음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특별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서로를 향해서 오래 참지 않았고, 허물을 덮어 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견디는 힘이 약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오래 참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랑은 친절하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울처럼 반사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친절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무례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내는 것도 친절한 사랑이 아닙니다. 친절은 남을 배려하고 용납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친절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길을 걷습니다. 사랑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모두 포함된 것을 보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사랑의 덕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향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기 사랑은 이웃 사랑을 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불의의 편에 서 있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편에 섰을 때 한없는 자유함을 누리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악한 것과 불의한 것은 세상을 허물지만, 진실은 공동체와 세상을 세웁니다.

 

사랑 속에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합니다. 서로 가릴 것도 없고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나눕니다. 진실된 사랑도 공동체 속에 꼭 있어야 할 모습입니다.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