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3 – 사랑은 친절하고

지난 시간에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들 가운데 처음과 나중인 오래 참는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의 오래 참고는 시간을 두고 화나 분노를 다스리면서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는 허물을 덮어주고 비밀을 지켜주면서 감싸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어떤 일이 닥쳐도 사랑으로 견디고 결국에는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면서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알려주는 사랑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을 때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성품이고 행동입니다. 완성된 사랑의 모습을 미리부터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사랑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인 “친절함 (kindness)”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온유라고 번역했지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양선이 여기에 속하고 친절함이라고 읽는 것이 헬라어 본문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친절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마음으로 찾아오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매어 주시는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인생길을 편안하게 걷게 하시는 마음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너그럽게 품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위로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착하고 선한 것에는 유익한 것을 제공한다는 뜻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본문에서 “친절하고”가 단지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인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선하고 친절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고, 성내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울이 알려주는 열다섯 가지 사랑의 덕목 가운데 꽤 많은 덕목이 친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선하고 인자하게 말씀하시고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착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너그럽게 품어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河-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는 워낙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8년 전 대통령이 될 때부터

준비된 연설이든지, 즉흥 연설이든지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도

가족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성 있는 연설로 지난 8년을 회고했습니다.

 

처음 대통령이 될 때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라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는 해 냈습니다(Yes, we did)”로

고별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2.

제가 미국 대통령 연설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에서 만났던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철이라는 영어교재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만났습니다.

남부 사투리가 섞여 있다고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읽으면서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 정치에 대해서 슬며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연설을 듣게 될 텐데

막말이 아니라 정선되고 진정성 있는 연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수요예배에서 살펴보는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 바울의 연설이 다섯 번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 군중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자신을 심문하는 천부장과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

그리고 마지막에 아그립바왕 앞에서 행한 연설입니다.

물론 아테네에서 행한 연설도 꽤 유명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연설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유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는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전의 상태,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된 과정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이후 그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담대하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을 강권적인 역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4.

우리도 새해를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들처럼

아니 바울처럼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증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주여 입술을 열어 주소서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편 51:15)

O Lord, open my lips,

and my mouth will declare your praise. (Psalms 51:15)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은 물론 입술로도

주님을 전파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전서 13장 2 – 사랑은 오래참고

올 한해도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도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 불확실성이 먹구름처럼 드리워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도 발걸음이 잦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앞 일을 생각하면 늘 염려와 불안이 앞섭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두려워 말라”인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마음의 상태를 잘 알고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새벽 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데 지난 목요일 본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사7:9).

 

연말에 제가 선물로 드린 책 <조지 뮬러처럼>을 갖고 자원하신 분들과 책 읽기와 묵상 모임을 카톡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많은 도움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사했습니다. 올해 성경 통독반에도 많은 분이 자원해 주셨습니다. 일 년 동안 성경을 통독하기가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게 되는데, 함께 읽어가면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는 우리 안에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모임들과 순서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교회가 주도하는 프로그램부터 참빛 식구들이 비공식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임까지 서로 기도해 주고 말씀을 읽고 신앙과 삶을 고민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쉽지 않은 날들이 펼쳐질 때가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함께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면서 걸어가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서로 사랑하라>와 맞물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은 사랑이 무엇인지 “하라”와 “하지 말라”로 나뉘어서 알려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입니다. 사랑을 열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그 가운데 세 가지 덕목이 “인내”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4절),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며”(7절)입니다. 그것을 보면 사랑에서 오래 참음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심판을 연기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견딥니다. 오래 참는 사랑이 신앙을 온전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河-

신뢰

좋은 아침입니다.

 

1.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렇다고 하지만

안팎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적으로도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까지 기도 제목이 참 많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 한 주 “서로 사랑”으로 지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을 볼 줄 믿습니다.

 

2.

새해에 선물로 드린

<조지 뮬러처럼>이란 책은

새해를 맞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의 풍조와 염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보다 앞서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 있을 때도 많습니다.

 

한달 동안 조지 뮬러와 함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이사야서 7장 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If you are not firm in faith, you will not be firm at all.(Isa 7:9)

 

<조지 뮬러와 함께>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역경의 시간에 그분께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할 때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음산하고 황폐한 인생의 산에서 축복의 소나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도,

축복의 소나기를 맞아도 순전한 마음이 아닌 섞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주를 향한 순전한 마음이 없다면,

역경의 골짜기에서 황폐한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28쪽)

 

3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올 한 해를 굳게 세우기 원합니다.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 안에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깊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신뢰를 회복하길 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8:7)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hield; in him my heart trusts, and I am helped;

my heart exults, and with my song I give thanks to him.(Psalms 28:7)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달을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5 이-메일 목회 서신)

고린도 전서 13장 1: 사랑이 없으면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날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데 올해는 1일이 주일입니다. 덕분에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 이어서 이틀 연속 하나님을 예배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기대와 불안이 우리 마음속에 교차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니 염려가 됩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생길을 걷고 있기에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해”라는 말 그대로 새로운 일이 생기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쁜 일들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큽니다. 그렇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 결심을 적어갑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염려되고, 갈수록 힘겨워지는 목회 환경을 돌아봐도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에는 참빛식구들의 들고 나는 발걸음이 잦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2017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당회(교인 총회)에서 젊은 집사님들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훌륭한 젊은이들을 보내주셨고 이들과 더불어 활력 있게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주일 대표기도를 집사님들이 인도하도록 배려하고, 권사님들은 식사 기도로 축복하고, 교회 사역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진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세대가 어울려서 더불어 세워가는 참빛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흔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지 잠시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을 실천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했을 때,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열방의 빛이 되라고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사랑에서 비롯된 은혜입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고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받은 사랑을 세상에 나눌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가까운 가족과 교회 식구들로부터 세상까지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면서 한 해를 보냅시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河-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16년 새해를 맞아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내일 저녁에 2017년을 맞는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이 화살같이 흘러갑니다.

화살은 과녁을 향해서 날아갑니다.

빠르게 지나간 올 한해

화살처럼 우리의  삶이 과녁에 적중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참빛 교회 목사로서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한 얼굴들이 스쳐 갑니다.

 

올 한해도 교회를 굳게 지켜주신

어르신들,

아이들부터 청년과 젊은 부부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1년 전 다니던 직장을 접고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제게 든 생각은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였습니다.

 

담임 목회의 길에 접어든 지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하나님께 되묻습니다: “하나님, 여전히 제가 필요하신지요?”

 

은혜로 살 수밖에 없었던 2016년,

아무나 하는 목회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고

함께 하신 참빛 성도님들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목요일마다 서신을 받아보시는

저와 우리 교회를 위해서 마음으로 물질로

기도로 지원해 주시는 동역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 도움, 기도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2.

2017년 새해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생활비가 비싸고

발길이 뜸한 샌프란의 목회 환경도 꽤 거칩니다.

작은 교회일수록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거친 파도라도

함께 손을 잡고 맞이하면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겠지요.

사랑으로 함께 하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것입니다.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된 교회에 성령께서 역사하심도 믿습니다.

 

우리 교회 내년 표어대로

“서로 사랑”하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저 역시, 아무나 하는 목회가 아님을 해가 갈수록 실감하기에

멍에를 벗겨주시길 기도할 때가 많지만

참빛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쓸모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줄 믿고

힘차게 2017년 새해를 맞이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1-2절)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From where does my help come?

My help comes from the Lord, who made heaven and earth. (Psalms 121:1-2)

 

하나님 아버지

한 해 동안도 주님의 교회를 지키고 세우신

참빛 식구들과 미국과 한국의 동역자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2.29 이-메일 목회 서신)

알레포의 왕관

“저는 지금 집이 없어요. 부상은 크지 않지만 어제부터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요. 살고 싶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5년째 내전이 계속되면서 폐허가 된 시리아 알레포에 사는 한 소녀가 지난달 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 세상에 전한 애절한 메시지입니다.

 

2011년에 시작된 “아랍의 봄” 물결은 50년 이상 지속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시리아 국민의 저항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적 저항이 내전으로 발전하고, 러시아와 아이시스(ISIS)까지 개입하면서 시리아는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고향을 떠나서 피난민으로 전락했고 그 중에 2천 명 이상은 국경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8월에는 다섯 살 소년이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폭격을 맞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표정으로 앰브란스에 앉아 있는 사진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혀서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빨강 셔츠를 입은 세 살배기 아기의 시신을 보고 온 세상이 함께 울었습니다. 이 모든 비극의 참상이 시리아에서 일어났고, 반군이 주둔하고 있던 알레포라는 도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알레포의 시민 운동가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나 옷 심지어 기도도 아니고, 국제 사회가 공조해서 러시아와 정부군의 폭격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폭격에 대한 상처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라니 전쟁의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레포라는 도시는 우리가 현재 갖고있는 구약성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원본은 없고 현재 가장 오래된 사본은 맛소라로 지칭되는 학자들이 필사한 것입니다. 900년경 유대인 랍비들이 양피지 위에 쓸개로 만든 잉크를 갖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필사했습니다. 그때까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문맥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는데, 맛소라 학자들이 정확한 발음을 위해서 모음을 첨가했고 액센트는 물론 노래로 말씀을 음미할 수 있도록 악상 표시까지 기입했습니다. 여백에는 주석도 기록했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바르게 읽을 수 있고 원본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본이 십자군 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었지만, 그 가운데 한 권의 필사본이 이집트를 거쳐서 600년 가까이 시리아 알레포에 살던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서 보존되었습니다. “알레포 코덱스”라 불리는 히브리어 필사본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입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알레포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1947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발표되면서 알레포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알레포 코덱스는 우여곡절 끝에 모세 오경을 비롯한 많은 분량이 소실 된 채 현재는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약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읽는 우리는 600년 동안 필사본을 보관해준 알레포라는 도시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알레포가 하나님 말씀인 구약성경을 600년 동안 품고 있었듯이, 이제 하나님께서 알레포를 품어 주시고 그곳에 평화가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알레포 왕관으로 불리는 알레포 코덱스처럼 전쟁으로 찌들고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알레포 아이들 머리 위에 왕관이 씌어 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왕관까지는 아니어도 밖에서 마음껏 뛰놀고, 학교에서 배우고, 오손도손 가족과 함께 지내고, 폭격의 공포 없이 해맑은 눈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을 바라만 볼 수 있어도 그들에게는 최고의 축복일 것입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시리아 어린이들을 도울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들을 후원하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연말이 가기 전에 조그만 정성이라도 보내야겠습니다. 새해 정유년(丁酉年)에는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알레포를 비롯한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로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6년 12월 29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