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

 청년들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심판)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디까지 사랑으로 포용해주고, 어떤 지점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배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사랑과 공의라는 속성이 함께 있지만, 하나님의 속마음은 사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분명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십니다. 증오와 죽음이 판치는 어두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을 빛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온 세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입니다.

 

한 청년은 요즘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과연 역사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고난받고, 아무 연고 없이 목숨을 잃고,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신학적 질문입니다. 구약성경에 의로우면서도 고난받은 욥이 있지만, 욥기를 수없이 읽어도 뒤죽박죽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흡족한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난받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연대하면서 함께 울 뿐입니다. “언제까지이니까?”라고 그들과 함께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청년들에게는 세상의 그릇된 모습을 바로잡고, 의와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임하는데 참여하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주에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로 많은 희생자를 낸 총기 참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인 줄 알았는데, 동성애까지 관련된 증오범죄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동성애자들이 가는 클럽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나 수사당국에서는 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하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끝에 총기규제에 대한 법안을 만든다니 이번에는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50명의 희생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종교나 인종, 성적 지향을 떠나서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미워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동료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범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누구이든지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울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화들짝 놀랄 소식이 새크라멘토에 있는 한 미국교회에서 들려왔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는 젊은 목사가 올랜도 참사를 놓고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설교한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이 희생당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고, 총기를 휘두른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것이며,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목사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막말입니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모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1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총기 참사가 생각납니다. 성경공부를 하던 흑인 교회에 백인 청년이 들어와서 한 시간 동안 함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 말미 기도시간에 이 청년은 흑인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으니 돌아가라고 외치면서 총격을 가해서 아홉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희생자 가족들은 총격을 가한 청년을 사랑으로 용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증오와 그에 따른 범죄를 막는 방법이 사랑과 용서 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세상은 희생자 가족들이 표한 사랑에 감동받고 그들의 신앙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청년의 질문, 세상에서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생기는 신앙의 회의,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안타까운 총기 참사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을 푸는 열쇠는 찰스턴 교회의 성도들이 몸소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녹입니다. 용서와 사랑만이 답입니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긍휼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2016년 6월 23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숨은 영웅 7: 갈렙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은 영웅은 갈렙입니다. 갈렙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갈렙 역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발해서 가나안 땅을 미리 살펴보게 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대표들이 백성들 앞에서 보고회를 갖습니다. 열 지파의 대표들은 가나안 땅에 거인들이 살아서 도저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그곳 주민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뚜기와 같다고 스스로 비하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비록 종살이를 했지만 이집트에서 잘 있었는데 괜스레 광야로 데리고 나와서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말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충동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정탐하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신들의 옷을 찢으면서 백성들 앞에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고, 그 땅의 주민들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돌을 들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대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배회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스무 살 이상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렙에게는 그가 정탐하고 온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 그때 갈렙의 나이가 마흔이었습니다.

 

갈렙은 그로부터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마음에 품고 꿋꿋하게 견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약속에 대한 확신도 흐려집니다. 시간이 흘러 지체되면 약속을 포기하거나 낙심합니다. 갈렙은 40년이라는 광야 생활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마침내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명령대로 각 지파에게 공평하게 땅을 분배합니다. 갈렙이 속한 유다 지파의 차례가 되었을 때, 85세가 된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갑니다. 45년 전에 약속하신 땅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청합니다:”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2). 자신이 친히 가서 그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자신이 45년 전과 똑같이 강건하다고 말합니다. 충분히 싸워서 그 산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체력은 물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행여나 자신이 준비되지 못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여호수아가 갈렙을 축복하고, 갈렙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산지를 차지합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은 “개”라는 뜻입니다. 충성스러움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 가려서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그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숨은 영웅이었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끝까지 걸으시고,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시는 믿음의 장부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시편 묵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새벽기도회는 물론

일 년 성경통독에서도 시편을 읽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하루에 2-3장씩 읽어가고 있으니

한동안 시편 속에 빠져 살 것 같습니다.

 

저는 시편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종종 시편 한 편을 선택해서

한 달 이상씩 설교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가 잘 안 되거나

마음이 힘들 때 시편을 펼쳐서 무작정 읽습니다.

 

시편 자체는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기도와 찬양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과 결단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언제까지이니까(How long)?”로 대표되는

개인의 탄식과 공동체의 탄식을 읽으면서

우리 삶에 깊이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도 하나님의 의지하면서 다시 일어섭니다.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찬양 시편은

속으로 읽을 말씀이 아니라

소리 내서 읽어야 맛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로 시작되는 감사 시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만물과

세상과 우리 삶에 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감사입니다.

요즘은 파란 하늘,

그 위에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만 보아도 감사가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은 삶의 지혜를 주는 지혜시입니다.

 

이 밖에도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니 문을 들라는 시편은

왕의 행진과 등극을 찬양합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으로 읽으면

더욱 힘차고 위엄이 있습니다.

 

2.

시편 말씀은 성경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신앙과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함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주님 앞에서 크게 뉘우치는 마음과

새로운 영을 창조해 달라는 다윗의 회개 기도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Psalms 51:10)

 

“창조하시고”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쓰였던 히브리어 동사(“바라”)가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과거의 죄를 지워주시고(delete)

처음의 상태로 새롭게 창조해(create) 주시길 원하는 기도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 51:11)

 

큰 죄를 범했지만

자신을 문전박대하지 마시고

성령을 거두어 가지 마시길 구하는 간절한 애원입니다.

 

구원의 기쁨(the joy of salvation)을 회복시켜 주시길 간구합니다.

 

3.

시편 말씀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기 원합니다.

 

시편을 펼쳐서

소리 내서 읽고

속으로 묵상하고

우리 자신을 말씀 앞에 내어놓기 원합니다.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을 표시해 놓고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다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편 119:77)

Let your mercy come to me, that I may live;

for your law is my delight. (Psalms 119:77)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주의 말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16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 6: 사마리아 여인

성경이 쓰일 당시는 남녀의 구별이 뚜렷한 시대였습니다. 여성에 대한 지위는 높지 않았고 때때로 남성들의 소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도리어 여성들이 하나님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은 영웅도 여성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룻이 모압 여인이었듯이, 오늘 살펴볼 여성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우 꺼리던 사마리아 출신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과 북쪽 갈릴리 지역을 유대라고 했고, 예루살렘과 갈릴리 중간에 있는 지역을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는 옛날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주전 722년에 당시의 대국 앗시리아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무너집니다. 앗시리아는 사마리아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외국인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주민들과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섞여 살게 됩니다.

 

이것을 본 남쪽 예루살렘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의 혈통을 지키지 않았다고 무시했습니다. 사마리아 역시 이에 질세라 자기 나름대로 그림신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모세 오경을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부르고, 자신들이야말로 정통 야곱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갈등은 700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을 지나지 않으려고 동쪽 광야로 우회해서 갈릴리를 오가곤 했습니다.

 

이처럼 같은 민족이면서도 유대와 사마리아가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 출신이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에 가신 것 자체가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수가성 우물가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남들이 쉬고 있던 정오에 물을 길러 온 것을 보면 보통 여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물 좀 달라”고 말을 건네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 출신 예수님께서 말을 붙이신 것에 기분이 상해서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으로 하여금 차근차근 자신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신앙의 고민까지 고백하게 하십니다.

 

알고 보니 여인에게는 남편이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의 발길이 뜸한 정오에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는 말에 마음을 열게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여인은 그 정도로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진정한 예배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물동이도 우물가에 둔 채 마을로 들어가서 자신이 메시아를 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메시아 예수님을 만나니 순식간에 상처가 회복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모시고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수백 년간 닫혀있던 사마리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고, 민족의 갈등이 치유되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이처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복음을 전함으로 온 동네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데 쓰임 받는 숨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힘들 때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오후에 심방이 있어서

샌프란에 가는데

평소와 달리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막힌 적이 없는 길이었기에

샌프란에 차가 많아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달리 우회도로가 없어서

꾹- 참고 신호등을 지나고

Stop 사인을 지키면서 운전을 했는데

앞에 “공사 중(under construction)”표시가 나왔습니다.

 

차선을 막고 공사 중이니

차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2.

under construction(공사 중)

–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도 매 순간 공사 중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인생길이 지체되고, 혼잡하고

완성될 때까지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염려와 근심이 이어집니다.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잦습니다.

 

완성된 후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현재의 불편과 어려움을 참아낼 뿐입니다.

 

그런데 인생길은

크고 작은 공사를 늘 맞닥뜨리는 여정(journey)같습니다.

 

말끔하게 정돈된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도 잠시일 뿐

이곳저곳에서 고장이 나니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면서 걸어가는 발걸음입니다.

 

3.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시편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의 일생에 맞춰서 기록된

다윗의 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 밖에도 성전에서 함께 부르던 찬송과 기도입니다.

 

오늘 아침에 살펴본

시편 42편과 43편은 서로 짝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변에서 여러 가지 비난의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는

조롱 섞인 말이 제일 듣기 힘듭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고

계속 공사 중일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한탄이 나옵니다.

 

이처럼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43:5)

Why are you cast down, O my soul, and why are you in turmoil within me?

Hope in God; for I shall again praise him, my salvation. (Psalms 42:5,11; 43:5)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쉬워 보여도

막상 내 일로 닥치면 꽤 어렵습니다.

 

자신 있게 덤비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늘 공사 중입니다.

 

그래도 거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펼쳐놓은 인생의 공사판을 마무리해 가야지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허리를 동이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43:5)

Why are you cast down, O my soul, and why are you in turmoil within me?

Hope in God; for I shall again praise him, my salvation. (Psalms 42:5,11; 43:5)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주께서 저들의 소망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9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 5: 보아스 2

구약성경 룻기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던 사사 시대가 배경입니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 직후를 가리킵니다.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 별로 배정된 땅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의 풍습과 종교에 물들어가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사사를 세워서 자신의 백성을 구해 주셨습니다. 삼손과 기드온, 드보라와 왼손잡이 에훗등이 대표적인 사사들입니다. 사사들의 통치가 끝나면 백성들은 여지없이 마음대로 행동했고, 사사기 후반부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타락은 물론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 내란이 일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럽고 타락해도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룻기는 험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선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흉년이 들자 모압땅으로 피난 갔지만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빈 손으로 고향에 돌아온 나오미, 모압 여인이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온 룻, 룻을 돕고 급기야 그를 아내로 취한 보아스가 룻기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나오미는 큰 상처를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마라” 즉 쓰디 쓴 슬픔의 여인이라고 부르라고 했을까요! 하지만 나오미는 모압 며느리 룻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면서 가문을 일으킵니다. 룻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압 출신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심하게 차별했고, 모압과 이스라엘은 서로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그럼도 불구하고 모압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로 선했습니다.

 

룻을 거두어 준 보아스야 말로 숨은 영웅입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위치에 있던 인물입니다. 종들을 두고 농사를 짓는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종들은 물론 모압 여인 룻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밤중에 불쑥 찾아와서 프로포즈를 한 룻을 아무 조건없이 맞아주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됩니다. 룻과 나오미의 재산은 물론 룻을 책임진 것입니다. 룻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결국 룻과 보아스는 다윗왕의 조상이 됩니다.

 

보아스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룻을 받아주는 것을 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자들을 받아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 나오면 무조건 은혜로 받아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아스에게 있습니다. 룻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된 보아스는 십자가에 죽는 값을 치루시면서 우리를 살려 주신 예수님과 같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신부로 맞아 주었듯이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흰옷 입은 신부로 섭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듯이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드러나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분노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한국에서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분을 덮쳐서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젊은이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신감을 잃고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퇴근길에 비운의 죽음을 맞은 분은

뒤늦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가장이었습니다.

만삭의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늘 착하고 선한 분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와 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힘이 임하길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2.

세상이 참 어지럽습니다.

화장실에서 먼저 들어온 여성을,

등산로에서 먼저 마주친 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보니

개인의 문제와 동시에 한국 사회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제는 UCLA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살생부까지 기록해 놓고 범행을 저질렀다니 머리가 쭈뼛 섭니다.

 

우리 모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살기가 힘들고 뜻대로 세상이 펼쳐지지 않으니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고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화를 내고,

심하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도

형 가인이 분을 조절하지 못해서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느냐?”(창 4:6)

“Why are you angry, and why has your face fallen?

 

가인은 자신의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들로 나가서 아벨을 죽이면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3.

누구나 분노(anger)를 갖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통제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쉽지 않으니

평소에 분노를 다스리는 훈련을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지난번 <참빛 보이스>에서 배웠던

12가지 tool box가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그때 메모해 두었던 것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호흡하기 (deep breathing tool)

스트레스를 받고, 다급하게 행동하게 되고

그것이 분노로 발전하는 순간,

잠깐 멈춰서 대여섯 번 심호흡하면 확실히 감정이 조절됩니다.

 

2) 피난처 찾기 (Quiet and safe place tool)

분노가 생기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안전하고 조용한 피난처를 우선 찾아서

그곳에서 평정심을 되찾는 것도 좋습니다.

 

3) 시간 갖기 (taking time tool)

심호흡과 동시에 잠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한 박자만 늦추는 것이지요.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연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4) 다시 일어나기 (courage tool)

주저앉아 있으면 자꾸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제가 자주 쓰는 히브리어대로 ”쿰(stand up)”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실 겁니다.

 

5) 쓰레기통에 넣기 (garbage tool)

화를 내게 만드는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개 사소한 일들입니다.

없어도 되는 것들, 진작에 버려야 할 것들을 갖고 있다가

거기서 화가 생긴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일으키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화를 내게 만든 것을 십자가에 흘려보내고

화를 내는 자신까지 십자가에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 위로, 사랑,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3-24)

The steps of a man are established by the Lord, when he delights in his way;

though he fall, he shall not be cast headlong, for the Lord upholds his hand. (Psalms 37:23-24)

 

하나님 아버지

샬롬의 은혜를 참빛 식구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