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둘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는

20년 동안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프로 농구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열일곱 살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지난 20년 동안 3만 점이 넘는 골을 넣었고

중간에 못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어제 경기에서 혼자 60점을 넣으면서

그의 농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팀을 옮기지 않고

20년을 한 팀에서 지낸 것도 대단하고

틴 에이저에 프로선수가 되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2.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전도서 7장에는

시작보다 끝을 강조하는 말씀이 연거푸 나옵니다.

 

출생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을 중시합니다.

 

7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서 “이것”은

<만사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될 것 같은 어려움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의 시작이

저녁의 감사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5 이-메일 목회 서신)

말씀대로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은혜로 사는 한 해>라는 표어에 맞춰서, 주님의 은혜를 힘입고 험한 세상에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엘리야는 주전 9세기경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 아합이었는데,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으면서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전체로 퍼졌습니다. 아합은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에 속하게 됩니다. 그 시절, 엘리야는 이방신을 믿는 바알 선지자들과 그를 죽이려는 이세벨 왕비에게 혼자 대항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뭄이 닥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앞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는 극심한 가뭄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당시에 가뭄은 전쟁과 전염병과 함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가장 큰 징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가뭄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재난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무고한 백성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르앗에 있던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그릿 시냇가로 몸을 피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거기는 시냇물이 남아 있고,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까마귀가 음식을 공급해 준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같이”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대로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이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다 줍니다.

 

가뭄이 계속되니 엘리야가 있던 시냇가도 말라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 땅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은 왕비 이세벨의 나라입니다. 엘리야가 대적하고 있는 이세벨 왕비의 고향으로 가서 머물라는 말씀은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다 줄 것이라는 말씀보다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곳에 가면 한 과부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이라는 지역도 힘겨운 곳이지만, 과부가 엘리야를 돕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사르밧에 간 엘리야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납니다. 엘리야가 물을 달라고 하면서, 떡 한 조각도 함께 갖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과부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곡식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남았고, 나뭇가지를 주어서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든 후에 아들과 더불어 생을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가서 작은 떡 하나를 자신을 위해서 가져오고 그 다음에 과부와 아들을 위해서 떡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를 위해서 떡을 만들면 양식이 떨어집니다. 과부와 아들이 먹을 것이 없는데 그다음에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라는 엘리야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행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떡그릇과 통에 양식과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믿음에 입각한 행동입니다. 기도는 삶인 것을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배웁니다.-河-

기도와 간구로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으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경에서 알려주는 영적인 렌즈로 신앙과 삶을 들여다본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악을 다스리는 사탄이 우리 마음과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조심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무조건 모든 것을 사탄의 역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선,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염려, 근심, 두려움을 모두 사탄의 역사라고 일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염려와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때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삶의 긴장감을 높이고 앞으로 전진하는 활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염려가 두려움과 절망으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동반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각자의 삶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악한 세력의 시험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허겁지겁 바쁘게 살고, 개인마다 독특한 기질을 갖고 있기에 서로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때도 부서진 관계를 통해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화해하면서 더욱 견고하게 신뢰관계를 쌓아간다면 그것 역시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반면에, 사탄의 시험은 갈등을 떠나서 분열과 소외를 일으킵니다. 관계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관계의 단절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것이 악한 세력의 계교임을 얼른 알아차리고 각자 또는 함께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사탄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망가뜨립니다.

 

세상의 모습도 무조건 사탄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입니다. 이기주의와 욕심이 가득하고 게다가 물질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세상의 모습은 미움, 증오, 갈등, 죽음과 살인 등 누가 봐도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교의 장(場)임을 깨닫고 빛과 소금으로 살면 됩니다. 사도바울의 권면대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안하뇨”라고 인사 하셨듯이 하늘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하고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은 물론 관계와 세상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활동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 말씀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야말로 시험에 들지 않고 사탄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말고), 2) 감사함으로 (감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3) 모든 일에 (마음과 관계와 세상의 모든 일), 4)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을 통해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나가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쳐도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교회력으로 부활절 둘째 주일입니다.

 

강단 색깔은 흰색이고,

오순절(50일) 성령강림전까지

부활 절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두려움과 실의에 가득 차 있던 제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셨고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세상에 계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오순절에

약속대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2.

부활절 이후, 한 달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간입니다.

 

“평안하뇨”라고 인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 부인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그를 회복해 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절기를 보내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답하고

다시금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에

예수님과 가까워졌다면,

부활절 이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부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기가 오순절까지 계속되는 교회력을 따라서

부활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생명을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 21:15)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He said to him, “Feed my lambs.”(John 21:15)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You know that I love you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우리가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의 능력

2016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부활로 이어졌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지난 3주에 걸쳐서 영적인 세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자연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연세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영역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입증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영적인 세력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악한 영의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악한 세력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사탄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기에 거침없이 이 세상에서 활동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니 아무 때나 나타나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어느 곳이나 침투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흔들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도 사탄입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하고, 필요하면 하나님 말씀까지 살짝 왜곡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사탄이 어떤 곳이나 누구에게나 침투할 수 있기에 사탄의 유혹을 따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그 결과를 보아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 것이 예상되거나 실제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든다면 사탄의 유혹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속의 염려와 근심, 두려움, 그리고 일상의 관계들이 사탄이 노리는 공격 루트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가룟 유다를 보면 우리의 관심사나 장점까지 사탄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분별하는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골탕먹이는 분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갈등이나 다툼을 조장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 가운데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갈등을 일으키거나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탄의 작업입니다. 얼른 분별해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사탄과 경쟁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탄의 마지막 수단이 죄와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세력 즉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 현재 사탄은 패잔병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승패는 결정이 났고 마지막 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굳게 믿을 때, 사탄의 유혹과 훼방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모든 유혹과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

고난 주간에

1.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각자 정한 대로 경건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금식이 보편적입니다.

육신에 즐거움을 주는 식욕을 억제한 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세상 것들에 매이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교만과 고집스러운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기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2.

영어로 성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답니다.
그래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Good Friday를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아니 온 세상을 향한
“선한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야 말로
악을 선으로 이긴 최고의 사건입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입니다.

 

은혜가 임하고 힘이 생깁니다.

 

3.

올해 성금요일에는

지난 월요일

벨기에 폭탄테러에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을 마음에 품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보내도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 세계가 하나님 앞에서 화해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올해 부활주일에는

성만찬과 세례예식

찬양대가 준비한 특별찬양,

찬양팀과 온 성도님들이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은혜를 묵상하면서

고난 주간을 마무리합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Isaiah 53:5)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임했음을  깊이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25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