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달 둘 째까지

대학원 공부를 위해서 데이비스로 올라가면서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쉬는 이번 주간,

조금 넓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아이들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10년여 쓰던

책상을 먼저 해결해야했습니다.

 

처음 샌프란에 왔을 때

오피스 디포에서 구입해서 하루 종일 조립했던 책상인데

이제 수명을 다한 것입니다.

 

조립했던 때와 반대로

해체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책상에 묻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상 바닥의 칠도 벗겨지고

아이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 놈들이 이렇게 공부했구나”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냥 넘기기가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 보관해 놓았습니다.

한가할 때 아이들에게 보내줘야겠습니다.

 

2.

어떤 물건에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주인이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평생 한 권의 성경책만 보신 어르신들이 많으셨습니다.

그분들의 성경책을 보면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경번역본의 종류도 많고

셀폰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손 때 묻은 성경책을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언더라인>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가 헐어 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耳順(이순,60)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至高(지고)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 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박목월-

 

성경책을 한권 지정해서

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도 하고

손 때를 묻혀가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Psalms 119:10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으로 참빛 식구들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8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4장 – 겟세마네 기도

그동안 우리 교회 기도의 어머님이셨던 박재순 권사님께서 지난 주일 홀연히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지난 주일예배 때 오랜만에 오신 낸시 권사님과 두 분이 나란히 앉으셔서 도란도란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평소와 똑같이 일찍 오셔서 웃음으로 교인들을 맞아 주시고, 아이들을 예뻐해 주셨는데 오늘 예배에 계시지 않으니 무척 허전합니다. 이렇게 금방 가실 줄 알았으면 손 한 번 더 잡아 드리고, 권사님과 마주하며 얘기도 더 나눌 걸 그랬다는 아쉬움도 큽니다. 저희가 권사님께 해 드린 것보다 권사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기도가 더욱 크기에 권사님이 더욱 그립고 마음 한편이 빈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권사님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소망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해서 위로받고, 권사님의 뜻을 따라 더욱 열심히 주님과 교회를 섬기기로 다짐합니다.

 

박재순 권사님께서는 평소에 소원하신 대로 오래 앓지 않으시고 기도하시는 중에 주님께 가셨습니다. 94년 일생을 권사님처럼 정갈하게 살다 하나님께 가신 분도 드물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 만날 준비를 하시면서 90평생을 사신 권사님이셨습니다. 젊은이들을 사랑하셨고, 교회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시고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 그러셨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참 연약합니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젊고 건강할 때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것 같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때마다 우리 자신이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임을 실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때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듯이 우리 인생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예수님 맞을 준비 하면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열심히 관리할 뿐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끝이 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정도로 존귀하고 실제적인 사역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서 그 순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고뇌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로 끝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살았습니다. -河-

깨어 있으라

지난주 홀연히

우리 교회 최고 연장자이셨고

어머니셨던 박재순 권사님께서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주일 예배는 물론 친교까지

평소대로 밝게 웃으시며 마치고 헤어졌기에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의 모임에서

축복기도 하시다가 주님께 가셨고

올해 93세를 맞으신 권사님 소원대로

앓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셨으니 위로가 됩니다.

 

교회에서

권사님의 위치가 굳건한 기둥처럼 든든했고

준비할 기회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한 주간 내내 권사님이 그립고 허전했습니다.

 

그러면서

2주 전에 나눴던 마가복음 13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어서 그날을 준비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이렇게 실감이 날 수가 없습니다.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새달을 맞을 때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오셔도

내어 드릴 것이 있는 준비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인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선용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over a little;

I will set you over much.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Matthew 25:21)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셨던 신앙의 선조들의 신앙과 뜻을 본받게 하시고

저희도 날마다 깨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1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4장 – 옥합을 깬 여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제자들에게는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믿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믿음이 열린 세계라는 사실과 무한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비결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이웃을 향한 용서임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고 생명과 능력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럴수록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직접 예수님께 나와서 난처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권위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일 것을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을 맡아서 농사짓던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능욕하더니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는 비유였습니다. 여기서 주인의 종들이 구약의 예언자들이었다면, 주인의 아들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징검다리 삼아서 마지막 종말에 일어날 징조들과 종말을 맞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듯이 종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종말이 오는 가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만 아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말을 맞고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깨어서 매 순간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삶을 선하고 충성 되게 관리해서 예수님 오셨을 때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 전반부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하지만 하늘의 지혜와 능력으로 거침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행하신 말씀, 지도자들과의 논쟁, 그리고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사건 등을 보아도 예수님께서 매우 크신 일을 행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발길은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매우 비싼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일 년을 일해서 산 향유 옥합입니다. 제자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옥합을 깨서 낭비하기보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낫겠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특별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여인의 일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던 동전 두 개를 성전에 드린 과부와 같습니다. 반면에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 계획을 세우고,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행할 때 예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여인을 통해서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있었던 일들입니다.-河-

이제 말하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시편 120편부터 시작되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읽고 있습니다.

 

시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0-134편)는

마가복음 연속 설교를 마무리하는 대로

올 하반기에 살펴볼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제 본문이었던

시편 124편은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상하면서

성전에 올라가는 예배자들의 노래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이집트 군사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거기서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고 칠흑같이 깜깜한 광야 길을 걸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지 않았다면

40년 광야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시편 124편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회상해 보길 부탁드렸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구비구비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자신이 우리 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크고 작은 일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골짜기에서,

심지어 무심코 운전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고,

지금 돌아봐도 시편 기자와 똑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3.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갈 앞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근거가 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던 일들을 회고해 보고

그것을 발판 삼아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함께 해 주셨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8.26 이-메일 목회 서신)

                   

올림픽 미담 (美談)

브라질에서 열린 2016년 하계 올림픽이 16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주일 막을 내렸습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브라질의 불안한 치안과 공중위생,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올랐던 올림픽이었는데 큰 사고 없이 막을 내려서 다행입니다.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지구촌의 축제입니다. 각 국가와 언론들이 금,은,동 메달을 집계하고 순위를 발표하지만, 실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지구촌의 평화와 우정을 도모하는 친선 대회인 셈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올림픽은 눈에 거슬릴 정도로 상업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느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 미담(美談)이 쏟아졌습니다. 120년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피해서 조국을 떠난 열 명의 선수가 난민팀을 구성해서 참가했습니다.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입장하는 난민팀 선수들에게 전 세계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20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지만, 자신들에게 찾아온 역경을 이기고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할 경비가 없어서 노상에서 모금하며 간신히 참가했는데 동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SNS를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펜싱 선수는 결승전에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다 진 경기를 뒤집고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100여 년 만에 올림픽 종목이 된 골프의 금메달 역시 대한민국이 가져왔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브라질 리우에서는 이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매일같이 펼쳐지면서 전 세계를 올림픽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선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여자 마라톤에 참가한 캄보디아 선수입니다. 올해 마흔네 살의 리 나리 선수는 우승을 차지한 케냐 선수보다 1시간 이상 늦은 3시간 20분을 달려서 맨 마지막에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마흔네 살의 나이로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다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 선수의 인생 여정은 더욱 특별했습니다.

 

나리 선수는 어릴 적 크메르루즈 군에 의해서 수백만이 학살당한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고아가 된 어린 소녀는 아홉 살에 국제 적십자사에 의해서 프랑스로 입양되었습니다. 스물여섯에 조국 캄보디아로 돌아온 나리 선수는 에이즈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생물학 박사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서른네 살의 나이로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마라톤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불혹도 훨씬 넘은 나이에 국가 대표가 되었고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나리 선수는 157명이 참가한 이번 마라톤에서133등을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맨 마지막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경찰들과 경기 진행 요원들이 나리 선수를 쫓아가면서 도로에 설치해 놓은 보호벽을 철거하고 교통통제를 해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 캄보디아 국기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관중들은 나리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왠지 우리 식 이름과 비슷해서 더욱 친근해 보이는 마흔네 살의 마라토너 “나리” 선수를 보면서 부모를 잃고 낯선 나라에 입양되어서 성인이 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외로움과 살아남은 끈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리 선수는 3시간 이상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새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을 것입니다. 기록이나 입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올림픽에서 조국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뛰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나리 선수를 통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도 생각해 봅니다. 나리 선수에게 독특한 과거와 그녀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도 자신만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고 때로는 뜁니다.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되뇌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올림픽 경주가 아니니 우리가 뛰는 모습을 구경하는 관중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기록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더욱 자유롭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달려가면 됩니다. 마지막 결승점에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 주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6년 8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마태복음 13장 – 깨어 있으라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3장은 마지막 날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세상이 뒤숭숭할 때마다 갖가지 종말론이 등장하는데, 마가복음 13장을 통해서 종말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지난번 속회 공과 내용을 요약해서 다시 한번 나눕니다.

 

마가복음 13장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생길 일과 마지막 종말에 일어날 일이 겹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예루살렘이 무너질 것과 관련된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고 그때 사람들을 로마 군대에 넘겨주고 회당에 남아 있는 사람은 채찍질을 당하는 박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고소해서 잡혀갈 수 있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할 말을 알려주실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후 70년에 예수님 말씀대로 로마의 박해가 일어났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세상 끝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혹하는 선지자들이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자신들이 메시아라고 말합니다.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곳곳에 지진과 가뭄이 생기는데 이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이후에는 요한 계시록에 있듯이 환난이 임할 것입니다. 가증한 것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징조는 자연재해는 물론 우주적으로 이뤄집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빛을 내지 못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세상에 오십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천사들을 보내서 택한 자들을 세상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추수 때가 된 것을 예상할 수 있듯이 마지막 때의 징조를 보고 깨어서 마지막 날을 준비할 뿐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은 종말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보다 종말을 맞이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3절).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절).

 

항상 예수님 맞을 준비 하며 사는 것을 종말론적 삶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과 구원의 확신,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삶으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종말론적 삶은 우리 인생과 세상에 끝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영원한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종말론적인 삶을 살 때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소망 가운데 견딜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오실 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곳에 오셔도 기쁨으로 예수님 맞을 준비 하면서 깨어서 살아가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