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는 두 아이가 결혼하기 전에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너무 야무지고 이상적이어서 얼마 전부터 하와이로 바꿨지만, 여전히 불가능했습니다. 미시간의 큰 아이가 방학을 맞아서 집에 오고 회갑을 맞으신 한국의 누님께서 방문하셨던 지난달에 그랜드 캐년을 다녀오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10년 전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할 때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았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하면서 이틀에 걸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웅장한 그랜드 캐년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서 명암이 생기고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깎아내린 듯한 협곡과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콜로라도 강, 심지어 10년 전 가족사진을 찍었던 바위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인터넷에 저장해 놓은 10년 전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랜드 캐년은 변한 것이 없는데 사진 속의 우리 가족은 많이 변했습니다. 청소년이던 두 아들은 이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0년 전 우리 부부는 조금 과장해서 신혼부부처럼 젊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건만 사진 속에는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만약10년 후에 다시 그랜드 캐년을 찾는다면 어떻게 변해있을까 생각하니 슬며시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할아버지가 사진 속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요예배에서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전통적으로 전도서는 부귀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이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말씀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 전도서를 대표합니다. 물론 여기서 헛되다는 것은 물방울이 떨어지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인생을 비유한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필요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중에도 지금 이곳의 현재를 즐기며,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청년의 때에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서는 청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전도서 말씀을 청년들에게 제한할 수 없습니다. 청년의 때는 누구에게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에서 말했듯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개인적으로 날마다 청년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갈렙은 85세가 되었어도 자신을 청춘이라고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하신 험한 산지를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 웬만한 젊은이들도 겁낼 거인들이 사는 땅을 자신이 친히 가서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을 45년 동안 간직했고,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청년으로 살 때 우리 모두 언제나 청춘입니다.

 

하물며 말 그대로 청년의 때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도전하고 해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비록 실패해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물론 요즘 청년들의 삶이 녹록지 않습니다. 청년 실업은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청년들 안에 분노가 쌓이고 스스로 인생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매진하면 분명히 길이 열릴 것입니다. 전도서의 표현대로 떡을 물 위에 던지면 언젠가 도로 찾게 될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10년 후, 그랜드 캐년에 다시 서서 사진을 찍는다면 그랜드 캐년은 그대로 있을 테지만 저는 지금보다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청춘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청년의 때를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청년으로 살기 원합니다. 갈렙처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믿음의 장부가 되기 원합니다. (2016년 5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수요예배에서는

지난 수요예배에서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잠언부터 시작해서 열 달 가까이 구약의 성문서를 읽은 것입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주제를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1)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2)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3)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고 주관하심을 믿고 매사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길 부탁했습니다.

 

잠언 말씀은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어서 곧바로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말조심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라는 교훈이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시점을 마지막에 설정해놓고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식으로 말씀이 전개되었습니다. 인생은 헛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것은 또 다른 성문서인 욥의 고백대로 적신(빈손)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가는 길이 똑같으니 헛될 수 있습니다. 전도서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감사함으로 받고 즐길 것을 권면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세상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알려줍니다. 전도서 말씀대로 삶의 끝에서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점검한다면 현재의 삶이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 지혜임을 전도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앞으로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본문 읽기를 잠시 쉬고, 성경을 대하고 읽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무작정 성경을 읽으면 지루하고 때로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도가 나가지 않고 구약의 창세기, 신약의 복음서에서 멈추고 맙니다. 이때 성경을 읽는 방법을 조금이라고 익혀 두면 성경을 읽고 대하는 것이 한결 쉬어 지고 기대가 됩니다.

 

성경 본문을 <관찰-해석-적용>이라는 틀로 읽는 방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성경 본문을 만나면 세심하게 본문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귀한 보물들을 많이 숨겨놓으셨습니다. 그 기이한 주님의 보화들을 발견해 가면서 달고 오묘한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다가 어려운 지점을 만납니다. 성경이 쓰일 당시의 문화, 성경만의 용어, 신학적인 의미를 풀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해석입니다.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성경을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고 바른 해석방법을 습득한다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 그대로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자신에게 또는 교회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읽도록 자신을 말씀에 내어 드리는 단계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변화되고,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한 달여 수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그리고 즐겁게 읽는 방식을 터득하기 원합니다. -河-

신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신호등에 서 있는데

아내가 후드 앞쪽에서 연기가 난다기에

서둘러 차를 길옆 상가에 세우고

후두를 얼어보니 기름이 다 흐르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상가의 Auto Zone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서둘러 정비소로 가랍니다.

자동차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water pump)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문을 연 Sears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곳까지 2마일 여를 운전하는데

운전석 앞 계기판이 1분만 지나면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몇 번을 가고 서고를 반복한 끝에

정비소에 도착해서 거금을 주고 수리했습니다.

 

일찍 발견했기에 다행이지

모르고 계속 운전했다면

엔진까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답니다.

 

엔진을 시켜주는 냉각수가 그렇게 중요한지 처음 경험했고

지금은 운전하면서 계기판을 보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

 

2.

어제로 수요예배에서

잠언과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열 달 가까이 계속된 긴 여정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양식을 구체적으로 배웠고

전도서에서는

시간의 축을 인생의 끝에 옮겨 놓았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portion)을 누리고,

사라질 것을 영원한 것과 바꾸지 말고

젊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잠언과 전도서를 마치면서

제 마음에 깊이 다가온 표현이 있다면 “신중함”입니다.

 

신중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쉬킬”은

잠언이나 전도서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사에 서둘지 않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차근차근

그렇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신중함입니다.

 

3.

자동차에 냉각수가 작동하지 않으니

1분도 되지 않아서 엔진이 과열되고 연기가 났습니다.

 

신중함은

쉽게 열을 받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근심과 염려가 밀려오면 균형을 잃고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신중함은

그것까지도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지럽고

빠르게 진행되기에

당황스럽고 허둥대기도 합니다.

 

그때도 중심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주어진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께

세상을 사는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분별하는 명철을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을 명철하다 한다 (잠언16:20-21, 새번역)

Whoever gives thought to the word will discover good, and blessed is he who trusts in the Lord.

The wise of heart is called discerning. (Proverbs 16:20-21)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이 작은 것에 흔들리 않고

오늘 하루도 차분하게 주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20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 3: 엘리사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능력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고전12:3).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바로 그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예배와 교회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에 거주하시고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변호해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성령 충만하길 요청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적합한 환경, 마음가짐, 믿음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말 그대로 거룩한 영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거룩함을 추구할 때 성령충만이 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 성도들은 자연스레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를 체험합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부터 12월 초 대강절까지 성령강림주간이 반년 가까이 계속됩니다. 강단 색깔은 초록색입니다.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생명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로 자라는 기간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대로 교회와 참빛 식구들께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충만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살펴볼 인물은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입니다. 스승 엘리야가 워낙 뛰어나서 엘리사의 사역이 후순위로 밀리거나 때로는 엘리사의 일까지 엘리야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엘리사 역시 숨은 영웅이라고 부르기 겸연쩍을 만큼 유명합니다.

 

엘리사는 소 열두 마리를 동원해서 밭을 갈 정도로 재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그를 제자로 불렀을 때, 소를 잡고 이웃을 초청해서 감사의 제사를 드린 후에 미련없이 엘리야를 따라나섭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못 미더웠는지 그를 후계자로 기름 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나님께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쫓아갑니다. 엘리야가 길갈, 벧엘, 여리고를 지나갈 때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때 스승보다 갑절의 능력을 구합니다. 집요하고 담대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승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받고 이스라엘을 바알 신에게 넘긴 아합왕 일가를 심판했습니다. 엘리야처럼 죽은 아이도 살렸고, 나쁜 물도 좋게 만들고, 가뭄이 들었을 때 직접 선지자들을 먹이고, 보리떡으로 백성들을 먹이는 등 큰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것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쫓으면서 갑절의 은혜, 우리 식으로 성령  충만을 구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조금씩 더 힘을 내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기 원합니다. 성령충만하길 원합니다.-河-

부르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 한국에서는

특수부대 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로 웬만한 국가들은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 씰(Navy Seal)이 유명합니다.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에는

특수 부대 요원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하던 세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명은 수영 훈련 중에 사고를 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중간에 훈련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 가족과 인터뷰한 내용도 기사에 있었는데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세 명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특수부대 요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 요원으로 부르셨음을 확신한 병사도 있었습니다.

 

미국 명문 대학을 나온 재원들도

네이비 씰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독한 훈련을 받는답니다.

 

훈련을 받다가 중간에 탈락한 이들을 세심하게 관리야 한다는 의견과

특수부대 요원이 된다는 것 자체는 목숨을 담보로 한 활동이기에

훈련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특수부대라고 해도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애끓게 기도하는 가족들이 있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을 다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철저하게 돕고 관리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로 부르셨다는 대목에서

지난 두 주 동안 살펴본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이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악한 왕을 섬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단체의 회원이었습니다.

 

마음고생이 상당했을 텐데,

그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세상에서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의 삶을 살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선교사로 보내셨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만만치 않으니

네이비 씰 요원들처럼

세상에서의 생존 훈련과 그곳에서의 작전 수행 능력을 키워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여나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허리띠를 꽉 묶고

각오를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

보냄 받은 곳에서

하나님 나라 특수요원으로 살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Psalms 23:4)

 

하나님 아버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살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13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 2: 아리마대 요셉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미국에서는 mother’s day라고 하지요. 성경에서도 부모님 공경을 강조합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에 대한 계명 다음에 첫 번째로 나오는 제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가장인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부르심으로 이스라엘은 물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가족은 우리를 낳으신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이 앞에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 부모님들이신 어르신들께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켜 주시길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은 영웅은 신약 성경의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 당시에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이 식민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로마는 식민지에 어느 정도 자치를 인정했는데, 대제사장들과 당시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의회가 이스라엘의 최고 기관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고 귀족층을 대표하는 사두개파 계열 24명과 서민을 대표하는 바리새파 계열 24명, 그리고 성경의 기록과 해석을 담당했던 서기관 계열 22명, 총 7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종교적인 기구로 보였지만 로마 정부가 다루지 않거나 위임한 입법과 사법을 책임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리마대 요셉을 두고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부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요셉과 같은 부자도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여기서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께 배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부자였던 요셉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가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존경받는 공회원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회원은 위에 설명한 산헤드린 의원을 가리킬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으며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것이 드러나면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지위에 손상을 받을까 두려워서 제자인 것을 숨겼다고 전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고 자신이 준비한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이처럼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습니다.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떠났을 때, 위험을 무릎 쓰고 예수님을 장사 지낸 멋진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여러 가지임을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서 배웁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고 제자의 삶을 살았던 아리마대 요셉을 닮기 원합니다.-河-

그가 주셨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5월 5일 한국으로 하면

어린이 날입니다.

 

일제가 통치하던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비롯한 색동회 회원들이

어린이 날 행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답니다.

 

어린이들의 권리도 찾아주고

꿈도 심어주면서,

그들이 장차 민족의 주역이 되길 기대하면서

해방 이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뛰노는 것을 보면

교회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저도 어린시절을

교회에서 뛰놀며 지냈고

그러는 와중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스며들어왔기에

아이들이 교회에서 지내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놓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를 즐깁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지요!

 

또한 어린이들은

낮고 작은 자들입니다.

아이들을 아무리 귀하게 여겨도

그들은 여전히 약자들입니다.

부모님들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3.

매달 제게 배달되는

<Table Talk>이라는 경건의 일기 책자가 있습니다.

 

5월 주제가 “요한복음 3:16(John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책자에서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게 잘라서 한 단어 또는 짧은 구절들로 설명해갑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주셨으니 (He gave)”에 대한 해설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건이

“하나님이..주셨으니”의 절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가운데 최고라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복음의 심장부입니다.

우리의 죄를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The cross stands at the heart of the gospel no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of sin,

Bu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about the grace of God”

 

어른들인 우리는

교리에 익숙해서

십자가를 보면서 죄를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죄를 회개할 때

십자가의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크게 보일 것 같습니다.

 

죄를 덮어버리는 사랑,

허물을 용서해주는 사랑,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는 손길,

십자가 앞에서 느끼는 편안함,

그냥 사랑해 주시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

 

지나 온 과거는 께름칙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와 두려움 투성이지만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그 약속,

그 능력을 의지해서 오늘을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푹- 잠기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녹아 내리고

(지난 주일에 나눴던) <오바댜> 주님의 종으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만큼…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서

머리끝까지 그 사랑에 잠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