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 예배에서는

창세기 야곱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경의 인물 중에서

야곱만큼 복합적이고 세상적인 인물이 있을까 싶습니다.

 

장자가 되어서 아버지의 복을 차지하겠다는 집요함은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어렵게 얻은 부인이라도

라헬만 편애(favoritism)하는 것은

사랑의 숭고함이 아니라 한 여성을 향한 한 인간의 집착으로 느껴집니다.

 

야곱의 두 부인, 라헬과 레아의 시기와 갈등

아기 낳기 경쟁이 야곱 자신의 편애에서 시작했는데

자기는 쏙- 빠지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약삭빠름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2.

야곱에게는 의외의 면도 있습니다.

 

외삼촌에게 번번이 속지만,

결국에는 얼룩진 양과 염소로 큰 부자가 됩니다.

야곱의 총명함, 지략은

야곱이 외삼촌 머리 위에서 날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약삭빠르면

생각이나 행동이 가볍고,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을 종/노예로 살면서도

자신의 길을 가는 꿋꿋함과 특유의 성실함도 갖췄습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20년을 버틴 믿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야곱에 관한 말씀 후반부로 갈수록

야곱은 조금씩 성숙해 갑니다.

그의 신앙과 생각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으로 야곱을 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3.

훗날 야곱의 이름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뀌지요.

그런데도 성경은 곳곳에서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한 발짝 떨어져서 읽으면

앞에서 말한 야곱의 복합적인 성품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의 말씀속으로 들어가서

야곱과 우리 자신을 겹쳐서 읽으면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용어에서 친근함을 느낍니다.

 

얄미워서 멀리하고 싶지만,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야곱’이라는 한 인간을 마냥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영락없는 야곱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 대신 우리 이름을 슬며시 넣어서 읽어도 상관없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146:5)

 

 

하나님

우리에게도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7. 20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0)

생존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는 속담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이 보다 맞는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하늘을 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정글과 같은 세상입니다.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으니 늘 쫓기는 삶을 살기 십상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울 정도로 경쟁적인 인물입니다. 힘이 센 에서에게 밀려서 형 발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장자권에 대한 야곱의 집착은 그치지 않아서 결국 팥죽 한 그릇에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면서 축복도 가로챘습니다. 형 에서와의 경쟁에서 야곱은 승리했습니다.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잠시 몸을 피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경쟁합니다. 외삼촌은 큰딸 레아를 첫째 부인으로 줍니다. 야곱을 속인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14년 동안 외삼촌을 위해서 종으로 일하게 됩니다. 외삼촌이 야곱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어렵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야곱의 후손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질 정도로 번성할 것이라는 벧엘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야곱에게 열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생긴 것입니다. 레아와 라헬, 그들의 종 빌하와 실바가 경쟁하면서 낳은 자식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라헬에게서 요셉이 태어나자,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대로 며칠만 몸을 피하려던 계획이 외삼촌의 작전에 휘말려서 14년으로 늘어났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입니다. 레아와 라헬의 몸값도 14년의 노동으로 충분히 지불했습니다. 자식이 없는 부인은 여전히 친정아버지 라반의 소유일 수 있어서 조심했지만, 라헬이 요셉을 낳으면서 모든 것이 확보되었습니다.

 

외삼촌은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야곱을 넌지시 붙잡습니다. 얼마든지 야곱이 원하는 품삯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외삼촌은 여전히 야곱을 품삯을 받는 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외삼촌 재산이 늘어났기에 야곱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계산입니다.

 

야곱은 품값 대신에 가축을 갖고 흥정합니다. 흰색 양은 외삼촌 것으로 하고 얼룩진 것들은 자기 것으로 하자는 거래입니다. 대부분의 양과 염소 등이 흰색이기에 외삼촌은 흔쾌히 야곱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당시 고용한 목자들에게 지불하는 20%의 품삯보다 훨씬 저렴해 보이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고 야곱이 꾀를 내서 가축을 치니 야곱의 재산만 늘어났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을 이기고 멋지게 살아남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벧엘에서의 하나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다르게 살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주 전에 목요서신 제목이 <거슬러 살기>였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를 갖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묵상하는

사도행전의 기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아서(upside down)

세상을 소동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긴, 재산을 서로 나눠 쓰고

예루살렘에 핍박이 발생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심지어 죽음도 불사했으니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사도행전의 사건들은

오순절 성령의 임재와 예수님 제자들의 사역으로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였습니다.

강철도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시대였으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2.

얼마 전, 한국 언론에도 등장한 미국 청년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알래스카 항공 사내지를 필두로

많은 언론이 보도한 청년입니다.

 

빌(Bill)이라는 청년은

UC 버클리에서 교통 관련 석사 학위 과정에 등록했는데

거처를 버클리로 옮기지 않고 LA집에서 비행기로 통학했습니다.

버클리 지역의 비싼 렌트비를 아끼고

일주일에 수업이 세 번 있었기에 LA집에서 학교에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버클리 지역 1년 렌트비 약 25,000불의 20% 정도에 불과한

5,600불을 교통비로 사용하고 올해 5월에 졸업했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은 LA 집에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비행기로 샌프란 공항에 도착한 후에 바트로 이동해서 10시 수업에 들어갔고

집에 가면 보통 자정이 되었답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을 해냈기에

빌이라는 청년이 레딧이라는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4.

청년이 비행기로 통학한 것이 학업이나 학교생활을 위해서

지혜로운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상이 특이한 것은 사실입니다.

 

빌이라는 청년을 보면서

다르게 사는 것도 주목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의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고

세상을 거슬러 사는 것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스스로 보기에 좋았다고 감탄하신 하나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걸작품(masterpiece)으로 만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창의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사는 일상을 창조적인 카이로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주신 지혜를 갖고

나만의 하루, 창조적인 일을 시도해 봅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하나님

하나님 지으신 걸작품다운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7. 13 이-메일 목회 서신)

레아의 시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함께 나눈 본문은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본문은 레아와 그의 동생 라헬의 외모를 비교했습니다.

라헬은 외모가 탁월했고,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고 우리 성경이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눈이 부드럽다(Leah’s eyes are tender)”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레아가 라헬에 비해서 약하고 뒤처지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외모를 갖고 비교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에서와 야곱의 반대입니다.

 

레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야곱의 첫째 부인이 됩니다.

야곱은 라헬을 원했는데 아버지 라반이

그 지방 풍습대로 맏딸인 레아를 야곱에게 준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이 조카 야곱을 속였고

레아는 속고 속이는 상황에서

주체적인 의지나 생각을 상실한 객체일 뿐이었습니다.

 

2.

야곱이 14년을 일하고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헬만 사랑합니다.

지독한 편애(favoritism)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분풀이하듯이

레아를 미워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라헬과 레아를 대한 것입니다.

 

이처럼 레아는

야곱이 새로 꾸민 가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심지어 미움받는 연약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레아를 챙기셨습니다.

미움받고 소외된 레아를 보셨고 레아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셔서 네 명의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제사장 지파의 조상 레위,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 유다가

레아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레아를 향한 하나님의 실제적인 위로였습니다.

 

3.

우리 모두 인생을 살다 보면

레아의 시간을 살 때가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사랑받고 사는데 자기는 덩그러니 홀로된 느낌,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사는 시간,

외톨이 또는 왕따를 경험하는 시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던져진 것 같은 심정 등등…

자존심이 상하고

자기도 모르게 동굴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레아의 시간은 힘겹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레아를 보시고

레아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말씀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약한 자, 외로운 자, 무력한 자를 향합니다.

아무도 챙기지 않을 때, 하나님이 챙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는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 가시는 곳을 가고

하나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의 레아들, 레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이웃을 챙기는 것이지요.

 

멋지고 근사한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듬뿍 경험하고 전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시 41:1)

 

 

하나님

레아의 시간을 사는

세상 모든 사람의 편이 되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7. 6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8)

레아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14년 동안 일해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라헬이었기에 레아와 라헬 중에서 라헬을 특별히 더 사랑했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가정에서 한 명의 부인이 소외되고 배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나안에 있을 때,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야곱의 가족 가운데 레아는 늘 소외된 인물입니다. 야곱의 마음은 언제나 라헬을 향했습니다. 레아의 삶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시켜서 야곱을 속이고 결혼했습니다. 레아의 의지와 상관없는 그 지방의 관습을 따른 결과였습니다. 눈이 연약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레아의 마음이 연약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고 보니 레아는 늘 주변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셔도 야곱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레아를 향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외롭고 약한 사람을 향하심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레아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아들을 낳았으니 커다란 경사입니다. 야곱의 장남이 태어난 것입니다. 레아가 너무 기뻐서 이제는 자기 남편 야곱이 자신을 사랑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라헬만 사랑합니다.

 

레아가 둘째를 낳고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었습니다.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한탄을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레위라고 짓습니다. “연합함”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에게 아들을 셋이나 낳아주었으니, 이제는 라헬을 떠나서 자기와 연합할 것으로 생각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유다라고 짓습니다. “찬송함”이라는 뜻입니다. 레아가 “내가 이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니 남편 야곱의 사랑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야곱이 무시한 레아를 하나님께서 돌보셨습니다. 그에게서 맏아들 르우벤은 물론 훗날 제사장 지파의 조상이 된 레위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조상인 유다가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레아는 잇사갈, 스불론까지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여섯 명의 아들을 낳고 딸 디나까지 낳았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레아를 무시한 것 같습니다. -河-

거슬러 살아보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한국에 있을 때,

휴전선 임진강 근처 폭포 어장에 가곤 했습니다.

잉어를 키워서 직접 요리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음식점 앞에 있는 어장에서 잉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수많이 잉어 떼가 몰려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며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먹이에 무관심하고 저 멀리서 유유히 수영을 즐기는

특이하게 행동하는 잉어들이 꼭 있었습니다.

대부분 모든 잉어가 먹이에 집착하고 서로 싸우는데

세상을 초월한 듯이 자기 삶을 즐기는 잉어들입니다.

 

2.

임진강 폭포 어장의 잉어들을 예로 들었지만,

세상을 거슬러 살거나 구별된 삶을 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자기들만의 삶을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성경 용어로 말하면 “거룩”입니다.

 

수요일 에베소서 성경 공부에서 배웠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신 이유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성도(saints)”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성도답게 사는 것이 요청됩니다.

거룩한 길을 가는 것인데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거룩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자칫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예루살렘 지도자들 같은 위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3.

요즘은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자기만족의 무한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조그만 손으로

작은 먹이 하나만 던져주어도

떼로 몰려와서 먹이를 갖고 서로 싸우고

허덕대는 잉어 떼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그때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그리스도인 특유의 여유를 갖고 세상을 헤엄치기 원합니다.

세상을 거슬러 살아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거슬러 가는 묘미를 즐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거룩이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을 닮아봅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5:1)

Therefore b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 (Eph 5:1)

 

 

하나님

세상을 거스를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6. 29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