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참빛
2022년 10월 3주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7): 다니엘 1/ 단1:1-21
두려워하지 말라 (7)
다니엘 (1)
구약 성경의 다니엘서는 매우 독특한 말씀입니다. 전반부(1-6장)는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활동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활약상을 전하고 후반부(7-12장)는 다니엘이 본 환상을 중심으로 장차 일어날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언형식으로 전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으로 악한 세력이 무너진다는 예언은 다니엘서의 문학 장르를 묵시문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이 첫 번째로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주전 597년으로 추정됩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기 10년 전입니다. 당시 포로들 가운데는 다니엘 외에도 이스라엘 왕이었던 여호야긴과 에스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을 미리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흠이 없고 총명하며 용모까지 아름다운 이스라엘의 귀족 출신입니다. 바빌론에 도착해서 이름부터 바빌론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빌론에서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의 공식적인 이름은 벨드사살(“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이었습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바빌론 언어와 학문을 배워야 했습니다. 당시 바빌론의 학문은 별을 보고 나라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완전히 바빌론 사람으로 동화시키는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입니다. 포로 신분인 다니엘이 제국의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뜻을 정해서” 왕궁에서 먹는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신전에 제사했던 음식 대신에 채식만 하였지만, 다니엘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시니 각국에서 선발된 소년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바빌론 왕의 자문역이 됩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바빌론 제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음식으로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 외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구별점’이 분명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고,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도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펄펄 끓는 풀무불에 던져지고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극복했을 것입니다. 왕들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들의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입증하고 바빌론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일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바빌론 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이중 사명(double mission)을 갖고 매일매일 살아갑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기를 원합니다.-河-
설렘
좋은 아침입니다.
1.
10월 9일,
지난 주일은
한국식으로 한글날이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해서
1446년 9월에 발표한 우리나라 고유의 말입니다.
오랫동안 한글은
하류 계층이나 사용하는 언문(諺文)이라고 불리면서
한문에 비해서 크게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연산군은 그의 학정을 고발하는 투서가
한글로 작성된 것을 빌미로 한글 사용을 금지한 적도 있습니다.
한글이 우리 겨레의 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입니다.
우리 말 대신에 일본 말을 써야 하는 것에 위기를 느낀
주시경을 비롯한 한글 학자들이 한글 사용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번역했던 존 로스 선교사는
영어를 본떠서 한글 띄어쓰기를 개발했고
선교사들이 한글을 갖고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면서
한글 전파에 앞장섰습니다.
한글은 매우 우수한 글자요 말입니다.
대부분의 표현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는 소리 언어입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 사용하는 우리 언어입니다.
2.
지난 주일 예배에서
제가 좋아하는 우리말 한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설렘”이었습니다.
설렘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서 두근거림”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좋아서 몸과 마음이 들썩거리는 모습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처음 한글을 만들고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양반들이 쓰는 한문을 몰랐던 천민 계급의 백성들이
한글을 익혀서 글을 쓸 수 있을 때도 꽤 설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결과가 기대한 대로 나왔을 때,
인생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게 되었을 때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무엇보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한 제목이 응답되는 신비로운 순간에도
설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3.
언어가 다 그렇다고 하지만,
요즘은 한글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줄임 말이 사용되고,
앞에 상스러워 보이는 표현을 붙여서
매우 좋다고 말하고,
외래어와 섞여서 한글 특유의 맛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말, 한글이 아름답게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말과 글이 중요한
“책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음도 감사한 일입니다.
올 가을에는 하나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합시다.
아무쪼록
반듯하고 한결같은 ‘또바기’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20:15)
하나님,
우리 입술에서 아름다운 말,
살리는 말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13 이-메일 목회 서신)
2022년 10월 2주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6)
이사야
이스라엘의 역사는 험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빌론에 속한 우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서 정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 전에 400년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됩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되고 광야 40년을 지났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셨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신, 세상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반짝했지만, 결국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당대의 제국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멸망했습니다. 성전도 무너지고, 나라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빼앗겼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닥친 비극과 재난을 놓고 애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아닌 것을 쫓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애를 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끝까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북왕국이 무너지면서 아시리아가 사마리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남왕국이 무너지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이사야 말씀은 이사야서의 두 번째 메시지에(40-55장) 속합니다. 바빌론이 쇠퇴하고 페르시아가 신흥 제국으로 등장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의 막바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바빌론에 포로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의 400년에 비하면 짧고 상황도 비교적 좋았지만,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적인 상실감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때 모세를 통한 출애굽을 떠올리면서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바빌론에서도 자유를 주실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서 40장 이하는 절망하지 말고 제 2의 출애굽을 꿈꾸라는 소망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河-
일상의 발견
좋은 아침입니다.
1.
벌써 두세 달이 지난 것 같습니다.
TV 아침 방송을 틀어 놓고 일하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말과 함께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신기해서 볼륨을 높이고 시청했더니
남가주에 사는 할로(Harlow)라는 소녀로
말에게 주는 먹이(간식)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로는 집에서 피터 팬이라고 이름을 붙인
조랑말(pony)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학교 과제 가운데 하나로
자기가 키우는 조랑말 피터 팬에게 줄 간식을 개발해서 발표했고
그것을 사업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일상의 발견입니다.
할로의 웹사이트에 가면,
사람이 먹어도 될 것 같은 조랑말 간식을 진열해 놓고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조랑말을 위한 간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만들었습니다.
순수 자연산 재료로 만들었답니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습니다.
2.
방송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
매우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랑말을 집에서 키우는 것부터,
조랑말 애호가들이 전국적으로 꽤 많은 것 같고
열 개도 되지 않는 간식 한 상자가 20불이 넘는데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상품성이 있어도 어린아이의 제품이라면 무시하기 일쑤인데
초등학생이 만드는 조랑말 간식을 구매하고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미국은 겉모습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땅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3.
할로는
자기가 키우는 조랑말 피터 팬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숙제를 했을 것입니다.
억지로 할 수도 있는 학교 숙제입니다.
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지루한 일상인데
할로는 즐겁고 특별한 일로 발전시켰습니다.
일상은 소홀히 하거나 지나치기 쉽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일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그러니 학교 숙제를 비즈니스로 만든 할로가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어느덧 10월이 되었으니 올해도 석 달 남짓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 깃든 특별한 의미를 포착해 내기 원합니다.
무채색처럼 지루할 만한 일상을
다채롭고 특별한 일로 바꾸는 일상의 발견을 기대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말씀과 기도 역시
일상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 안에 숨겨진 은혜를 찾아가면서
남은 석 달을 새록새록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봅시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니라 (전9:10)
하나님,
무심코 지나칠 일상 속에
숨겨진 보석을 찾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6 이-메일 목회 서신)
2022년 10월 1주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5)
스바냐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왕 요시야 시대(주전640-609년)에 활동했습니다. 아버지 아몬이 살해되면서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무너지고 남유다만 존속하던 시대입니다. 훗날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에 따라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다윗에 버금가는 왕이 되었지만, 요시야 개혁 전의 남유다는 정치, 경제, 종교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스바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셨다” 또는 “숨어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앗시리아와 같은 제국에서 수입한 우상들이 판을 쳤고 백성들은 우상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이방신의 특징은 물질과 번영입니다.
신앙은 물론 도덕적으로 나라가 망가지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관리들은 폭력을 사용해서 힘없는 백성들을 학대하고,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상황을 패역, 더러움, 포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패역한 세상 가운데 계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날이라는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세상이 망가졌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남아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3:14-18)은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쁨으로 찬양하라는 부탁으로 시작합니다. 심판이 지나고 구원과 회복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한 가운데 계십니다. 모든 어려움이 지났고 원수는 쫓겨났습니다. 이제 기쁨의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동안 많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낙심과 절망 그리고 포기입니다. 힘이 없어서 털썩 주저앉은 모습입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을 의지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찬양이 이어집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7절).
우리도 오늘 말씀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찬양하고 기뻐하기 원합니다.-河-
그리스도인다움
좋은 아침입니다.
1.
9월 초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현재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64%인데
앞으로 점점 줄어서
50년 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2007년 통계만 해도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70% 이상이었습니다.
10년 만에 10%가 줄었습니다.
동시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무종교 비율이
15%에서 30%로 늘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도
50대 이상에 기독교인이 많아서 그렇지
30대 이하의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층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크리스천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나누는 말씀 묵상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수된 것이 떠오릅니다.
2.
올해 한국의 각 교단이 집계한 통계에서
교인 숫자가 수십만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니
미국의 추세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인의 숫자가 감소할까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요즘 세대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아닌 물질로 대표되는 세속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기술을 쫓아갑니다.
가치보다 실용이 우선입니다.
시대 상황 외에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가 매력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배타적인 집단,
사랑을 외치는 그리스도인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3.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주신 사랑의 예수님,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처음 불렸듯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독특함을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밀도 있게 간직하고 믿는 것입니다.
3% 정도의 소금기(염도)가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반듯하고 품격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가치 있고, 행복하며, 생명의 길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묵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장착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는 <예수 닮기>를 실천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참빛 식구들의 모습을 눈에 그립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임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그리스도인다움”의 덕목을 회복합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29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