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기도(5):속량하셨나이다/ 시편 77:13-15
Author: 참빛
2020 기도 (5)
속량하리이다
하나님 안에서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시편 기자의 입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앞에서 드린 기도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씨름이었다면, 후반부의 찬양은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간증과 고백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편 77편은 탄식과 찬양은 물론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룹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관심사가 바뀝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의 시야를 갖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주님께서 행하신 옛날 일을 읊조리고 주님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노래했습니다(11-12절). “작은 소리” “낮은 소리”라는 우리 말 번역처럼 시편 기자가 받은 은혜를 자기 내면에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강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는 온데간데없고 시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가득 찼습니다. 1-10절에는 “나”라는 단어가 주어로 사용되었는데, 후반부로 오니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문제가 자신을 얽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자기에 닥친 문제만 보였습니다. 문제가 하나님과 시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존재,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먹구름이 거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만큼 위대하신 분이 없습니다. 크게 다가온 문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도(말씀)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채웠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시인이 경험하는 기도의 신비(mystery)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온 민족 중에 알리길 기도합니다. 요셉과 야곱으로 시작된 주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능하신 팔로 속량(redemption)하심을 믿습니다. “속량”은 하나님께서 대신 값을 치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속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자신을 인식(self-awareness)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니 하나님께서 베푸신 속량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은 물론 상황까지 변화시킵니다. 속량(贖良) – 구원의 은혜가 온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께서 함께하신 경이(기적)로 만드는 것도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의 끝에 찬양이 있습니다. 기도를 넘어서 찬양에 이르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河-
행복점 찾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77편 말씀대로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삶은
하나님 손길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경이로움(His wonders),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깜짝 놀랄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동안 함께 읽었듯이
시편 77편에서 시인의 삶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밤에도 손을 들고 기도하고
기도해도 안정은커녕 불안함과 한숨이 나오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사람의 위로까지 마다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고 사정하면서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함과 슬픔을 인정하고
지존자의 오른손이 행하신 변화를 경험하면서
말 그대로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77편은 10절을 중심으로
전과 후가 나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반부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하나님의 경이와 하신 일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감사의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옛일을 기억하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옛일을 기억하니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이 생각납니다.
2.
저도
팬데믹 기간은 물론
그 이전의 옛날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힘들었던 일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예상해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고
여전히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습니다.
교회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온상지가 되었다는
조국의 뉴스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시편 77편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편 말씀처럼 전과 후가 완전히 갈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옛일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날들
주의 경이로움이 넘쳤던 순간들
교인들, 이웃들,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했습니다.
지나온 <행복점>들을 찾아서
지금 이곳으로 가지고 오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나왔습니다.
3.
주의 경이로움을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내서
그 속에 깃든 주의 손길, 주님의 기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행복점 찾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때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시고
앞으로도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편77:11)
I will remember the deeds of the LORD;
yes, I will remember your wonders of old.(Ps 77: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 속에 기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20이-메일 목회 서신)
2020년 8월 3주 말씀
2020기도 (4): 기억하리이다/ 시편 77편 11-12절
2020 기도 (4)
기억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살던 곳, 만났던 사람들, 그때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잊고 싶은 기억도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마음고생도 합니다.
성경에도 “기억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400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기억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구축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소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억하며” “기억하리이다” “읊조리며” “되뇌이리이다”와 같은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시편 77편의 전반부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고, 어려울 때 불렀던 노래를 기억했습니다(3, 6절). 그런데 그 기억의 결과는 불안함과 한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존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경험한 후에 새롭게 변화됩니다(10절).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읊조리듯이 그 은혜를 입으로 고백하기를 반복합니다. 앞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불안으로 이어졌다면, 오늘 본문의 기억은 찬양으로 발전합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전과 후의 차이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전환점을 수시로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고 다시 기억하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지나온 옛길을 기억하면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구체적으로 느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소원을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읊조리는 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2020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끊을 수 없느니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큐티 본문이
로마서 8장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최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모세 율법을 알고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
이스라엘도 율법에 걸려 넘어가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 오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여전히 죄라는 악한 세력이 이곳 저곳에 침투해서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할 만큼
죄의 유혹이 큽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힘겨워하는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잠시 잠깐 죄에 넘어갈 수는 있어도
죄가 절대로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2.
그래도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 뜻대로 기도하고 실천하는데 취약합니다.
그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거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세력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칼이나 전쟁도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도
벌거벗겨진다고 해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을 것이 없습니다.
3.
분리불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완견의 경우 주인과 떨어지면
몹시 불안해하고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에서 분리되면
안전의 욕구가 파괴되면서 불안에 휩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하나님 부재(absence)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숨어 버리신 하나님!
하나님과 단절이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킬
그 어떤 세력도 없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주의 임재(presence)를 매순간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not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8:39)
하나님,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13이-메일 목회 서신)
2020년 8월 2주 말씀
2020기도 (3): 지존자의 오른손/ 시편 77편 10절
2020 기도 (3)
지존자의 오른손
기도를 우리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에 간청이 있지만, 그것이 기도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귐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고 소통하는 신비로운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깊이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자라 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해서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물론 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었지요.
우리가 살펴보는 시편 77편의 시인도 고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은 칠흑같은 어두운 밤입니다. 그때도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사람의 도움과 위로를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씨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는지, 은혜를 그치셨는지, 사랑을 주지 않으실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습니다. 그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은혜와 긍휼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누구나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기록했습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서 살아갈 소망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시편 77편 10절은 시인이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10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쉽지 않아서 다양한 번역이 존재하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나의 아픔, 나의 약함입니다. 그런데 지존자의 오른손이 변화시키셨습니다.”로 옮겼습니다. 개역 개정에서 “잘못”이라고 번역했는데 “슬픔, 아픔”이라는 뜻도 있고, “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에 “변화”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어려움 한가운데서 자신의 약함과 아픔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다시 한번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하고 자신의 말로 읊조립니다.
시편 기자는 변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를 변화시키고 보호하셨기에 마음에 빛이 비쳤습니다. 지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역시 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임하실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내면의 깊은 신앙으로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안누스 미라빌리스
좋은 아침입니다.
1.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라는 라틴어 표현이 있습니다.
<기적의 해(a year of miracle)>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해(wonderful year)
경이로운 해(amazing year)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아이작 뉴턴에게
1666년이 바로 기적의 해였습니다.
그때도 런던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런던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우리처럼 자택 격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뉴턴도 캐임브리지 대학이 문을 닫으면서
가족이 있는 시골로 내려갔는데,
전염병을 피해서 고향에서 지내던 2년이
그에게 <안누스 미라빌리스, 기적의 해>였습니다.
고향에 갇혀 지내는 동안
프리즘의 원리, 중력의 법칙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뉴턴이 고향집 자기 방에서 누워있을 때,
유리창의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서 반사되는 것을 보고
프리즘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답답하고 미래가 꽉- 막힌 팬데믹이
연구에 대한 뉴턴의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더 큰 업적을 내는 기적의 해가 되었습니다.
2.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긴
존 밀턴 역시 1626년 대학 1학년 때
가렛톳 패스트(bubonic plague)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돌아서
학교가 문을 닫고 런던에 있는 자택에 격리되었습니다.
밀턴은 그때 친구를 위한 시를 썼는데
훗날 밀턴의 문학에 커다란 기초를 놓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밀턴의 인생은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최고 역작 <실락원>을 쓸 때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딸에게 불러주며 대서사시를 완성했습니다.
밀턴은 실락원 속에서
비록 낙원은 잃었지만
힘을 합쳐서 다시 시작하려는 가능성의 문도 열어 두었습니다.
3.
팬데믹(pandemic)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all people”이라는 뜻의 그리스 말에서 왔습니다.
에피데믹(Epidemic)은
전염병 같은 재앙이 국지적으로 위로 솟아나듯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고
팬데믹은 모든 사람이 함께 겪는 재난을 가리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기약 없는 팬데믹을 살고 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빛이 없는 깜깜한 어둠입니다.
여행은 물론 예배와 모임의 자유까지 빼앗긴 포로 생활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의기소침하지 말고
<안누스 미라빌리스>를 살았던 선배들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뉴턴이나 밀턴에 비교할 수 없어도
각자 있는 자리에서 팬데믹 기간을
“기적의 해”로 만드는 것이지요.
갇혀 있지만 나름대로 창조적인 시간(카이로스)을 살고
훗날 교회와 세상이 다시 회복되었을 때
서로 나눌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만들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2020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요즘
하나님과의 이야기로
우리 신앙과 삶이 비옥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For with you is the fountain of life; in your light do we see light.(Ps 36:9)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에 삶에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6이-메일 목회 서신)
2020년 8월 1주 말씀
2020 기도 (2): 밤에 부르는 노래/ 시편 77편 4-9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