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uthor: 참빛
2020년 4월 1일 말씀
십자가 십자가 (3):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마가 15:34-37
십자가 십자가 (3)
–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억하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슥9:9)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고 성전의 본 모습을 회복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로마 정권을 뒤엎고 다윗 왕권을 회복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십니다.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결국 로마 총독 빌라도의 판결로 십자가형에 처해 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부터 예루살렘의 민심은 돌변했습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못된 죄인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의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을 들었던 제자들 마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갈릴리에서 올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만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제 6시(정오)가 되니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자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 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그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을 대신 겪으신 예수님의 구속(redemption)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바로 그 순간에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22편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대로 놓치 않으셨습니다. 힘든 길을 가시지만, 그 길이 모든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부활로 이어지는 길임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힘든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가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길이니 우리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세가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현재 바이러스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이태리입니다.
시신을 실은 군용 트럭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못해 먹먹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를 새롭게 발견했고
기도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는
<Christianity Today>의 기사를 요약해서 나눕니다.
1) 탄식의 기도/ Prayers of Lament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눈물로 침상을 적시거나,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를 눈물로 구하는 시편의 탄식시를 읽으면서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누군가의 기도라고 건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편의 탄식시들이 마음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away?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he times of trouble (Ps10:1)
성경 속의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나” “우리”의 기도로 변했습니다.
2) 이웃과 세상을 위한 기도/ Prayers of Intercession
그동안 우리 기도는 내 마음과 내 삶에 머물렀습니다.
종종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은 적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이태리]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몸 바쳐 일하는 의료진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가족들,
연구진들, 교회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우리를[이태리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기도 속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3) 고요한 기도/ Prayers of Silence
아직 희망적인 뉴스는 없습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휩싸여 있고 깜깜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말문이 막혀서 침묵이 흐릅니다.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막막해서 외마디 기도가 나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
예전에 기도할 때 생각났던 수많은 단어와 말이 아니라
말없이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뢰할 뿐입니다.
2.
우리도 언제나 다시 만나서 함께 예배하고,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잡히고 말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기도의 언어들이 하나님 뜻에 합하고
더욱 순수하고, 확신있으며, 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1)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Ps 18:1)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더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 이-메일 목회 서신)
2020년 3월 5주 말씀
십자가 십자가 (2): 화목하게 된 자/ 로마서 5장 5-11절
십자가 십자가 (2)
화목하게 된 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으뜸을 뽑으라면 하나님과의 화목 또는 화해(reconciliation)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세 가지 경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세 가지 표현이 점점 심각해 지더니 나중에는 “원수”라는 강력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심각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예수님이셨는데 자기를 통째로 비어서 종의 형체, 즉 죄의 종이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에게 종이 되었고 성경에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서 막혀 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을 “화목” 또는 “화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객관적인 사건이라면,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는 주체적인 결단입니다.
화목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탈라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따라서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지점을 꼭 붙들어 매거나 그곳에 못을 쳐서 고정시킵니다. 십자가의 한 중심에 하나됨, 화목이 위치한 것입니다. 길이가 길고 땅에 고정시키는 세로목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길이가 짧고 세로목에 매달려있는 가로목은 이웃과의 관계를 뜻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한 중심에서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화목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숴진 우리 마음도 십자가를 통해서 회복하고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외롭고 지루한 시간도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견딥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힘들기에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이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목케 하고 결국 생명으로 회복하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어그러진 일상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루 아침에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서 집에 있습니다.
휴가도 아닌데 온 가족이 집에 머뭅니다.
직장도 학교도 우리의 바깥 세상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루 세끼를 온 가족이 해결합니다.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삐꺽하는 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쇠가 부딪치듯이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가고 싶은 인앤아웃 버거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필수품을 사러 나가면,
텅 빈 진열대만 바라보다가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그나마도 사람들과의 접촉이 두려워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가족들이 언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될 날이 과연 올지
사람들과 허물없이 “하이” 인사하고 악수하는 때는,
무엇보다 우리 참빛 식구들 모두 모여서 예전처럼 예배하는 때는
– 현재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그래프가 민둥산처럼 커브를 그리고
내리막을 걷기를 기대하면서 온 국민이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2.
어쩌면 일상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여기던 것이 특별했고
답답하고 외롭고, 온 가족이 뒤섞이고
종종 불안이 엄습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는 일상은 ‘어그러진’ 일상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감 시간이 있는 일상이니
가능한 어그러진 일상을 지혜롭게 관리하기 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가능한
창조적 시간(카이로스)를 찾아내고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훗날 돌아볼 때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닙니다.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온 세계적 고난의 시간입니다.
견뎌야 합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찾아온 일상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성령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편 119:49)
Remember your word to your servant,
in which you have made me hope.(Psalms 119:49)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26 이-메일 목회 서신)
십자가 십자가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생한 전염병 재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재난은 지진입니다. 지진의 공포심을 늘 느끼고 살지만, 89년이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은 가뭄입니다. 몇 년 전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자동차 세차는 물론, 사업체 화장실의 물을 조절하고, 정원에 물주는 것까지 제한했습니다.
전염병은 금세기에 처음 찾아오는 재난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지 않은데도 우리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전염병으로 수 만명이 죽고, 전염병이 닥치면 온 백성이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던 것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의술이 매우 발달했다고 믿었는데 이번 경우처럼 바이러스를 쉽게 잡지 못하는 것도 의아할 정도입니다.
어려움은 안팎에서 찾아 옵니다. 우리 자신이 자초한 어려움도 힘은 들지만,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풀어나가면 됩니다. 혼자서 밤잠을 설치며 끙끙댈 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 개인의 잘못으로 세상이 그릇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밖에서 시작된 재난은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잘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재량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겪는 어려움이기에 위로가 되지만, 그 어려움의 끝에는 각 개인이 오롯이 담당할 몫이 기다리고 있기에 불안합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찾아 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제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도 부활의 능력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셨 듯이, 우리도 각자 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 세상이 겪는 어려움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견디고, 그 속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우리가 지고 가야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고통은 견디라고 닥치는 것이랍니다. 고통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됩니다. 함께 겪는 고통입니다.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견딥시다. 부활의 생명과 은혜가 우리 앞에 있음을 믿기에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河-
2020년 3월 4일 말씀
십자가 십자가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태 16:24
한계
좋은 아침입니다.
1.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가 무색한 요즘입니다.
일어나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몇 명인지
언제쯤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을지 뉴스를 검색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온 가족이 온종일 붙어 있어서 친밀하고 좋지만,
반대로 가정마다 힘겹고 낯선 일도 벌어질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도 꺼려지고
생필품을 구하러 마트에 가지만
텅 빈 진열장만 구경하고 올 때도 많습니다.
바이러스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겠지요.
행정당국이 명령한 자택 격리를 솔선해서 지켜야 합니다.
2.
중국과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미국은 손 놓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속수무책처럼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서 도시를 닫고 나니
곧바로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여행사, 호텔, 항공업계는 물론
식당을 비롯한 소매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가
힘없이 녹아 내리는 느낌입니다.
3.
과학과 인류 문명이 발달해도
전염병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마치 구약 시대로 회귀한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습니다.
행여나 잘못한 것이 있을까 돌아보면서
개인적으로/국가적으로 회개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물론,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속성도 알고,
행정조치도 취하고,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몇 주간
속수무책으로 구약시대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4.
21세기에 돌아보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틈틈이 인간의 약함과
세상에 목표를 둔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서 말씀도 묵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의 교만과 자랑을 회개하고 좀 더 겸손하기 원합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겨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힘을 의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어려움을 능히 극복하기 원합니다.
힘냅시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편 118:5)
Out of my distress I called on the LORD;
the LORD answered me and set me free.(Psalms 118:5)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19 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