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우리는

로마서 13장 8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세상의 빚은 부담이 되고

절제와 통제가 필요하지만,

사랑의 빚은 무제한입니다.

끝없이 갚아야 하고

때로는 끝없이 빌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평생 갚아도 불가능한 사랑의 빚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보다

예수님께 받은 사람을 갚아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에게 베푸는 이웃 사랑입니다.

 

2.

여기서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인데,

실제로 우리는 이기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가 많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 자신이 아니라

한때 부모가 꿈꾸던 모습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애(自己愛)를 자녀에게 적용해서

자기가 바라는 자녀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의 대상은 자녀가 아니라

아이 안에 비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내 기대를 벗어나는 순간 사랑이 식는다면,

그것은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던 상대, ‘내 그림자’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3.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사랑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과 다른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도 이유도 없는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롬 5:8).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사랑의 빚도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이어야 합니다.

 

내 의지나 바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랑의 속앓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도 필요합니다.

힘든 만큼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그 사람 안에 비친 나를 사랑하는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하나님,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참된 사랑의 빚을 지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8. 13 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인의 삶 (3)

로마서 12장과 13장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생각날 정도로 완벽한 말씀입니다. 모두 지키는 것은 버거울 수 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푯대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1-2절)로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3-8절),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관계(9-16절), 세상 속에서 특별히 원수와의 관계(17-21절), 국가와의 관계(13:1-7), 율법의 완성인 이웃 사랑(13:8-10), 마지막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13:11-14절)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입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4절).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15절).  이 말씀은 마음을 높은데 두지말고 서로 섬기라는 구절(16절)과 함께 성도간의 관계에도 해당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17절). 가능하면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직접 원수를 갚지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19절).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과 같습니다(잠25:21-22).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은 원수를 사랑해서 그로 하여금 뉘우치고 바른길로 오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준 모든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13장 1-7절은 그리스도인과 국가 간의 관계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나왔다는 말씀이 잘못 사용된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권세”를 영적인 세력으로 보기도 하지만, 문맥상 본문의 권세는 세상의 왕이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으니, 로마 황제와 관리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권력보다 위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치해야 합니다. 선한 것을 격려하고 악한 것을 징벌하는 것이 세상 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처럼 세상 권력이 그들을 세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인 세상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들에게 복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같은 안하무인의 독재자에게는 복종보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으로 저항해야 합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삶 (2)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의 길입니다. 오롯이 우리 힘으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성화의 길에 동행하시고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리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님을 믿고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칭의(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와 배우고 있는 “성화”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빌 2:12).

 

지난주에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성화의 여정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했을 때, 하나님 사랑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예배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배자”가 되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서 삶으로 예배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 예수님을 믿은 모든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드릴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말씀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선,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면서 서로 섬길 것을 교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은사를 각 그리스도인에게 나눠 주십니다. 각자의 은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면 됩니다. 서로 경쟁하거나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에서 사랑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이웃 사랑은 성도들 간의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이 요청됩니다. 사랑하는 척하거나, 이익이나 인기를 얻기 위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도 간의 사랑에 악은 없고 선만 존재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다른 교인들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자세로 성도를 섬깁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을 함께 견디고, 기도에 힘쓰면서 구체적으로 성도를 돌보는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은 이처럼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를 세워갑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삶 (1)

로마서 3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슨 의미인지 지난 두 달여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롬3:22)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었습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불리는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교리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우리가 주체가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롭게 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믿음이 우리의 업적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헬라어 본문을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주어를 바꿔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실하고 완벽하게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의롭게 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에 참여하는 열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지,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은혜로 값없이 입장했지만, 구원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거룩함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설교 제목을 지난번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붙였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 것과 연결하면 “은혜로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구원을 준비해 놓으셨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 가야할 삶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장 1-2절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11장까지가  의롭게 되는 “칭의”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12장부터는 거룩의 길, 즉 “성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리로 시작한 로마서는 이처럼 성화 즉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의무와 특권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의 신앙, 인격, 삶,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위해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河-

그리스도의 복음 (8)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밖에서 세상에 찾아온 낯선 의(alien righteousness)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구원자가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량, 칭의, 화목이 성취되었고,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마련해 놓으신 구원입니다. 우리는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 프로젝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세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것을 두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몸에 할례받은 것이 그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놓고도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위에 있고 싶었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사람과 차별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9)고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구원에 인간의 업적이 없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앞세우고 싶어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자칫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구약의 율법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규범입니다. 구약 시대의 문화를 갖고 있지만, 그 정신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존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