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라 : 요한 8장 12절
Category: 말씀과삶
나는 세상의 빛이라
에고 에이미 (2)
“에고 에이미(I am)” –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신 일곱 가지 “나는 누구인가?”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시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떡은 예수님의 몸(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의 몸을 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두 번째 “에고 에이미”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입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빛은 어두움의 반대입니다. 어두움은 또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음을 몰아낼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백성들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을 표적(sign)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기적 자체를 넘어서 기적이 주는 교훈을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명의 떡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셨을 때도 말씀하신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을 맞아서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에 해당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습니다. 초막절에는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서 제단에 붓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초막절이 끝날 즈음, 성전에 물을 붓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여기서 생수의 강은 실로암 연못의 물을 넘어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낮에는 제단에 물을 붓는 예식을 행하였다면, 밤이 되면, 성전에 불을 밝혔습니다. 성전의 헌금함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8:20), 성전 헌금함은 여성들까지 들어갈 수 있는 여성의 뜰에 있었고 이곳에서 초막절 불을 밝혔습니다. 초막절이 끝나니 불이 꺼졌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막절에, 제단에 물을 붓고 밤에 불을 켜는 예식은 구약 성경에 기초한 전통이었습니다(슥 14:7-8). 무엇보다 빛에 대한 성경 말씀은 곳곳에 등장합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예고한 빛이 세상에 오셨음을 예수님께서 알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두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河-
2025년 8월 4주 말씀
나는 생명의 떡이라/ 요한 6장 32-35절
나는 생명의 떡이라
에고 에이미 (1)
신약성경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신 일곱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헬라어 “에고 에이미(나는…I am)”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표적(sign)과 함께 하나님에게서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7주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설명하시는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를 한 가지씩 살펴볼 예정입니다.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출3:14)라고 하신 것과 맞물립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에고 에이미”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요 6:35)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71절이나 되는 매우 긴 말씀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표적(sign)이라고 부릅니다. 기적이 뜻하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에 이어서 기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말씀(해설)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빈 들에서 어린아이가 갖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모두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먹거리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신기한 물(magic water)을 구한 것처럼,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신기한 떡(magic bread)을 얻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뜨십니다.
이튿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을 주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그리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도 예수님 말씀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백성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 즉 세상의 물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생각 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셔서 백성들을 살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그를 믿는 자를 위해서 내주시는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河-
2025년 8월 3주 말씀
이미 와 계신 하나님: 열왕기상 19장 1-8절
안근조 교수(호서대 구약학)
강하고 담대하라 (6)
시편 27편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정확한 확인은 어렵지만, 체로키 인디언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우리 마음에는 좋은 늑대와 나쁜 늑대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쁜 늑대는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열등감 좌절을 가져다주고, 선한 늑대는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겸손함 관대함 신뢰를 선물한다고 했습니다. 손자가 두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인디언 할아버지의 현명한 대답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틈틈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지 점검했고,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면 제가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주었음을 반성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지혜였습니다.
팔로 알토에서 목회했던 존 오트버그(John Ortberg) 목사님의 <하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계십니다(God is closer than you think)>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여기서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일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재정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부자들을 질투하고 자신의 삶을 비관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어려운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냅니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고 사람들을 부려 먹습니다. 다른 사람은 동료들의 만족과 성장을 위해서 함께 노력합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오트버그 목사님은 실존 인물이었던 존 내쉬(John Nash)의 인생을 소재로 삼은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라는 영화도 소개합니다. 피해망상증을 앓았던 주인공은 있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 두려움에 떨며 살아갑니다. 수학자였던 내쉬가 국방부의 군사 작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누군가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가운데서도, 좋은 말을 듣고 좋은 생각을 하면서 이뤄낸 업적이었습니다.
오트버그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뷰티플 마인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올 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경청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답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때 마음과 생각이 변화됩니다. 우리에게 “뷰티플 마인드”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강을 누릴 때입니다(롬8:6).-河-
2025년 8월 2주 말씀
강하고 담대하라 (5): 시편 27편 14절
강하고 담대하라 (5)
시편 27편 14절
“강하고 담대하라”는 주제로 시편 27편을 공부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을 생각하면서 시편 27편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원수들과 대적들이 쳐들어와서 진을 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2절)는 구절에서 다윗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절)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시편 27편 속의 다윗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적군들이 실족해서 넘어지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군대가 전쟁을 일으켜도 두렵지 않고 차라리 태연했습니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전에 있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렵지 않고 도리어 평안하다는 확신입니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은밀히 숨겨 주시고, 적군들이 물러가면 바위 위에 세워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보다 다윗의 머리를 높이 드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소리 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8절) 하실 때에 제일 먼저 달려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행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얼굴을 숨기시고, 다윗을 떠나시고 버릴 것이 두려워서 끝까지 함께 해 주시길 애원했습니다. 부모는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든지 자기를 맞아 주신다고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신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태평양 바다만큼 크고 넓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늘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았습니다. 수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다윗의 믿음과 상관없이 그의 인생길이 어려우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3절)는 고백에 힘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행하시는 최후 승리를 믿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각자의 삶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시편 27편의 첫 구절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구절도 힘이 있습니다:“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河-
2025년 8월 1줄 말씀
강하고 담대하라 (4): 시편 27편 10-13절
강하고 담대하라 (4)
시편 27편 11-13절
과학 문명의 발달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해졌습니다. 수십 년 전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운전자 없이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누비는 자율 자동차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을 닮은 로봇도 등장했습니다. 드론이 전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예전의 삶이 더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8년 연속 핀란드가 차지했습니다. 사회복지가 잘된 북유럽 국가들이 언제나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본 소득이 보장되니 미국이나 한국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2025년 조사에서 한국은 58위, 미국은 24위를 차지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나라의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불안 지수도 높습니다. 염려와 근심을 달고 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베이 지역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처세에 대한 책들이나 유튜브 등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정신 승리를 강조합니다. 비우는 것을 강조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야망을 내려놓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솔직한 고민입니다.
그동안 함께 나눈 시편 27편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절)로 시작해서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14절)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편 27편은 강하고 담대해지는 근거를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강하고 담대할 힘이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인정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시편 27편의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3절)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길에 서야 합니다. 그때 임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를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받아주신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결국에는 높은 바위 위에 세울 것이라는 믿음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