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8): 로마서 3장 29-31절
Category: 말씀과삶
그리스도의 복음 (8)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밖에서 세상에 찾아온 낯선 의(alien righteousness)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구원자가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량, 칭의, 화목이 성취되었고,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마련해 놓으신 구원입니다. 우리는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 프로젝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세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것을 두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몸에 할례받은 것이 그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놓고도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위에 있고 싶었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사람과 차별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9)고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구원에 인간의 업적이 없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앞세우고 싶어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자칫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구약의 율법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규범입니다. 구약 시대의 문화를 갖고 있지만, 그 정신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존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河-
2026년 7월 1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7): 로마서 3장 27-28절
그리스도의 복음 (7)
기독교를 대표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믿음, 사랑, 은혜, 선물, 구원, 십자가, 부활 등입니다. 이 모든 표현의 한가운데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주도하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약속에 기초합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 뿐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요3:16).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속량, 칭의, 화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동안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계를 없애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물이고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우리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시고 초대하시는 구원에 ‘믿음으로’ 화답하면서 들어갑니다. 구원은 절대 우리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구약의 율법도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구원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구원을 놓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우리의 자랑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 속에 우리의 자랑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구원받았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심지어 믿음에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업적을 앞세우게 합니다. 우리가 선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물이 대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을 받고 누릴 뿐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함으로 예배할 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자랑입니다.-河-
그리스도의 복음: 속량 칭의 화목
지난 6주에 걸쳐서 로마서 3장 21-26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제로 공부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밖의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 제국에 속했다는 교만함이 세상에 팽배하였습니다.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서 토라를 공부하고 구약의 하나님을 믿었지만, 대부분의 이방인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낯설었습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그 무엇’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세 가지 용어를 갖고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속량(redemption)입니다. 속량은 로마는 물론 각 지역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특히,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값을 지급하면서 소유권이 이양되는 절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내주시고 우리를 사 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칭의는 당시의 법정에서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던 법적 용어입니다. 무죄 판결을 받으면 법적인 문제에서 해방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을 때, 우리는 법적으로 완벽한 의인이 됩니다.
셋째는 화목(reconciliation, propitiation)입니다. 화목은 구약의 속죄 제사에서 비롯된 성경 즉 교회의 용어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속량, 칭의, 화목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각각의 관점에 맞춰서 당시 교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용어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완성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하고, 복음이 능력이 우리 안에서 일할 것입니다.-河-
2026년 6월 3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6): 로마서 3장 25-26절
그리스도의 복음 (6)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신실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 주역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실하고 완벽하게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준비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당시 노예 시장에서 사용되던 “속량(redemption)”이라는 용어를 갖고 설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값을 치르셨습니다. 소유권이 바뀌었습니다.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지위가 놀랍게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칭의(justification)”는 법정 용어입니다. 재판장이‘무죄 판결’을 내리면, 무죄가 확정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적당히 죄를 덮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죗값을 모두 치르셨기에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공부할 로마서 3장 25절에”화목제물(Propitiation)”이라는 중요한 용어가 등장합니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화목제물을 속죄제물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속량이 시장에서 사용되던 상업 용어이고, 칭의가 법정의 법률 용어였다면, 속죄는 구약부터 내려오는 속죄의 제사와 관련된 신학(교회) 용어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서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day of atonement)로 지켰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의 속죄소(언약궤 덮개)에 피를 뿌려서 죄를 사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막혔던 장막을 거둬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이 화목(속죄)제물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중요한 것도 구약의 제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더 이상 매년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지 않습니다(히7:27).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우리를 받아 주시고 사랑하시는 데 문제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河-
2026년 6월 2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5): 로마서 3장 23-24절
그리스도의 복음 (5)
우리가 로마서 3장을 공부하면서, 생각할 것은 ‘종교의 일반적인 요소들’과 ‘기독교만의 특수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도 기복주의로 대표되는 종교의 일반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왕 예수님을 믿었다면 잘되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세상에서 나름 꿈을 이루고,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기도합니다. 권사님들의 경우 육신의 건강과 가족의 평안,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세상의 대부분 종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이 종교의 일반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로마서 3장이 이것을 자세하게 안내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삶이 모든 것이 아님을 깨우쳐줍니다. 세상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정도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둘째로,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안에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밖에서 누군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로마서 3장 21절에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마틴 루터는 물론 자신의 죄를 놓고 씨름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셋째로, 죄를 해결하는 방식도 특별합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한 모든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홀로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노력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련해 놓으신 구원의 집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구원의 집의 현관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현관을 통과해서 구원의 집에 들어가는 문(열쇠)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 놓으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의 집을 세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을 만들어내는 힘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초청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배우는 “칭의(justification)”와 “속량(redemption)”으로 우리와 세상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분하게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구원의 집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요 선물입니다. -河-
2026년 6월 1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4): 로마서 3장 23-2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