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 (2)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의 길입니다. 오롯이 우리 힘으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성화의 길에 동행하시고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리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님을 믿고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칭의(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와 배우고 있는 “성화”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빌 2:12).

 

지난주에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성화의 여정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했을 때, 하나님 사랑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예배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배자”가 되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서 삶으로 예배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 예수님을 믿은 모든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드릴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말씀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선,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면서 서로 섬길 것을 교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은사를 각 그리스도인에게 나눠 주십니다. 각자의 은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면 됩니다. 서로 경쟁하거나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에서 사랑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이웃 사랑은 성도들 간의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이 요청됩니다. 사랑하는 척하거나, 이익이나 인기를 얻기 위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도 간의 사랑에 악은 없고 선만 존재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다른 교인들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자세로 성도를 섬깁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을 함께 견디고, 기도에 힘쓰면서 구체적으로 성도를 돌보는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은 이처럼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를 세워갑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삶 (1)

로마서 3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슨 의미인지 지난 두 달여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롬3:22)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었습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불리는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교리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우리가 주체가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롭게 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믿음이 우리의 업적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헬라어 본문을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주어를 바꿔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실하고 완벽하게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의롭게 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에 참여하는 열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지,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은혜로 값없이 입장했지만, 구원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거룩함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설교 제목을 지난번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붙였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 것과 연결하면 “은혜로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구원을 준비해 놓으셨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 가야할 삶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장 1-2절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11장까지가  의롭게 되는 “칭의”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12장부터는 거룩의 길, 즉 “성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리로 시작한 로마서는 이처럼 성화 즉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의무와 특권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의 신앙, 인격, 삶,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위해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河-

그리스도의 복음 (8)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밖에서 세상에 찾아온 낯선 의(alien righteousness)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구원자가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량, 칭의, 화목이 성취되었고,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마련해 놓으신 구원입니다. 우리는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 프로젝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세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것을 두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몸에 할례받은 것이 그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놓고도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위에 있고 싶었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사람과 차별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9)고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구원에 인간의 업적이 없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앞세우고 싶어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자칫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구약의 율법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규범입니다. 구약 시대의 문화를 갖고 있지만, 그 정신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존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河-

그리스도의 복음 (7)

기독교를 대표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믿음, 사랑, 은혜, 선물, 구원, 십자가, 부활 등입니다. 이 모든 표현의 한가운데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주도하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약속에 기초합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 뿐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요3:16).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속량, 칭의, 화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동안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계를 없애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물이고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우리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시고 초대하시는 구원에 ‘믿음으로’ 화답하면서 들어갑니다. 구원은 절대 우리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구약의 율법도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구원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구원을 놓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우리의 자랑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 속에 우리의 자랑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구원받았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심지어 믿음에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업적을 앞세우게 합니다. 우리가 선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물이 대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을 받고 누릴 뿐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함으로 예배할 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자랑입니다.-河-

그리스도의 복음: 속량 칭의 화목

지난 6주에 걸쳐서 로마서 3장 21-26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제로 공부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밖의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 제국에 속했다는 교만함이 세상에 팽배하였습니다.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서 토라를 공부하고 구약의 하나님을 믿었지만, 대부분의 이방인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낯설었습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그 무엇’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세 가지 용어를 갖고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속량(redemption)입니다. 속량은 로마는 물론 각 지역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특히,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값을 지급하면서 소유권이 이양되는 절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내주시고 우리를 사 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칭의는 당시의 법정에서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던 법적 용어입니다. 무죄 판결을 받으면 법적인 문제에서 해방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을 때, 우리는 법적으로 완벽한 의인이 됩니다.

 

셋째는 화목(reconciliation, propitiation)입니다. 화목은 구약의 속죄 제사에서 비롯된 성경 즉 교회의 용어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속량, 칭의, 화목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각각의 관점에 맞춰서 당시 교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용어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완성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하고, 복음이 능력이 우리 안에서 일할 것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