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배자 (8): 야곱/ 창세기 28장 10-22절
Category: 말씀과삶
성경 속 예배자 (8)
야곱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듯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말씀이 실제로 시작된 약속의 자녀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니, 이스라엘에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처음 도착한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벧엘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했습니다. 흉년을 피해서 이집트에 갔던 아브라함이 벧엘로 돌아오자마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조카 롯과 헤어지고 헤브론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마지막으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희생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미리 양을 준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던 이삭은, 성경에 단 한 번 하나님께 예배 드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 속이는 실수를 범했지만, 블레셋 땅 그랄에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삭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살았던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찾아오셔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재차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때 이삭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거친 인생을 살았습니다.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형을 피해서 외삼촌 댁으로 피난을 갔는데,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벧엘에서 드린 예배입니다(창28:18). 빈털터리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의 인생 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20여 년을 지내면서 두 명의 아내와 열한 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야곱을 쫓아온 외삼촌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창31:54). 에서와 화해한 야곱이 세겜에 정착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창33:20). 딸 디나가 세겜에서 어려운 일 당하고 레위를 비롯한 아들들이 세겜에 잔인하게 복수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시 벧엘로 돌아온 야곱이 하나님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단을 쌓았습니다(창35:1). 마지막 다섯 번째 제사는 흉년이 들은 가나안 땅을 떠나서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도중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이처럼 야곱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河-
2026년 부활주일에
부활을 사는 것
성서일과(聖書日課Lectionary)는 교회력에 따라 매일같이 신구약 성경을 읽는 성경통독 방식입니다. 3년 주기로 성경 전체를 균형있게 읽도록 돕기 때문에 매일같이 성서일과의 본문을 읽거나 성서일과를 따라 주일 설교 본문을 정하고 말씀을 전하는 교회나 교단도 있습니다.
성서일과를 따라서 말씀을 전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주어진 본문과 틀에 매인다는 것입니다. 네 개 정도의 본문을 정해주지만 그래도 유연함이 떨어집니다. 장점은 목사가 임의로 설교 본문이나 주제를 정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설교 속에는 전하는 목사의 의도가 들어갑니다. 대부분 섬기는 교회에 맞는 본문과 주제를 선택하지만, 목사 개인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데 성서일과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줍니다.
저는 연말 대강절(Advent)에 성서일과의 본문을 사용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절기 설교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지만, 오늘처럼 진행 중인 연속 설교를 한주 쉬고 절기 설교를 할 때는 성서일과를 참고합니다. 올해 부활절 성서일과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10:34-43; 시편 118편 1-2,14-24; 골로새서 3:1-4; 요한복음 20:1-18 또는 마태복음 28:1-10. 부활 주일을 보내면서, 성서 일과의 본문을 읽고 묵상하셔도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생명의 삶> 진도를 따라서 아침 말씀을 나눕니다. 역시 주어진 본문입니다. 중복해서 읽기도 하지만, 5년 정도 지나면 성경 전체를 통독할 수 있습니다. 3년마다 매일 성경을 깊이 읽고 통독하기를 원하시면, 개별적으로 성서일과(A, B, C유형이 있음)를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성서일과의 사도행전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고넬료가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첫 번째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식민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던 선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각각 환상을 보여주셔서 두 사람이 고넬료 집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리던 베드로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풀고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는 매우 뜻깊은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갖고 복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베드로는 물론 초대교회가 붙들고 있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부활을 살게 되었습니다.-河-
2026년 4월 1주 부활절 말씀
부활의 삶:사도행전 10장 34-43절
2026년 3월 5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7): 이삭/ 창세기 26장 1-25절
성경 속 예배자 (7)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녀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습니다.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첫 약속이 현실이 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삭은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구김살 없이 컸습니다. 이집트 출신 하갈에게 태어난 이복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웃음”이라는 그의 이름을 갖고 조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아들 이삭도 모리아 산에서 경험한 여호와 이례 하나님은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을 것입니다. 이삭이 제사에 쓸 장작을 지고 가는 것으로 보아서 그의 나이는 10대 어간이었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서 제물로 드릴 때, 이삭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힘이 없는 노인 아브라함이 청소년 이삭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제물로 바쳐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이삭도 정말 대단합니다.
“포기”와 “기대”를 통해서 믿음이 도약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브라함의 말 대로 하나님께서 양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기 바로 직전에 살아난 이삭은 평생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이 아브라함 믿음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이삭에게는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믿음의 길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삭의 인생은 예전에 설교했던 제목 그대로 “웃음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내 리브가 얻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야곱에 비하면 평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세기에서 이삭에 대한 본문은 비교적 짧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창세기에 한 번 나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흉년이 들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그랄이라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두 번째 속인 곳인데, 이삭도 똑같이 그랄에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랄에서 이삭에게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떠나달라는 그랄 왕의 요청으로 그랄 골짜기로 이주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이삭은 다툼보다 양보를 택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머물던 브엘세바에 정착하고, 우물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河-
2026년 3월 4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6):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1-19절
성경 속 예배자 (6)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다섯 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세겜에서, 벧엘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가뭄을 피하려고 이집트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회개와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네 번째는 조카 롯과 결별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걸어보고 헤브론에 정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도 아브라함이 제물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주도하신 예배였기에 이번 성경 속 예배자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아브라함의 예배는 매우 독특합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절정에서 드린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뿐인 아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멋지게 통과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자세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시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1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 땅으로 내려올 때도 하나님 약속만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곧바로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순종, 절대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 1984>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자세히 다룹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윤리적인 기준을 정지시키고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케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전사>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설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다시 주실 것도 믿었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보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다시 얻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河-
2026년 3월 3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5): 아브라함/ 창세기 13장 1-18절
성경 속 예배자 (5)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당시 이름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세겜 땅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고 약속하신 직후입니다.
세겜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벧엘에 이르렀을 때 두 번째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12:8).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뭄이 찾아오자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집트 바로에게 보상받은 재산을 갖고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벧엘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창13:3-4).
이집트에서의 실수를 회개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정착할 것을 다짐하는 결단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재산이 많아지면서, 두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협소한 곳에 두 가정이 살면서 생긴 다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서 평화롭게 서로 갈라서기를 제안하였습니다.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폭력을 사용해서 죽인 것과 대조됩니다. 아브라함은 동생도 아닌 조카 롯을 배려했고 지켜주었습니다.
가뭄을 겪었던 롯은 눈을 들어서 둘러 본 다음에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을 선택합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지경을 넘어서는 곳인데, 당장 먹고살 것이 풍족한 곳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롯은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할 때, 롯은 두 딸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아서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에게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사방을 둘러보고,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다녀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영원히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이 있는 헤브론 지역으로 이주해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