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강절 (3)

복된 소망

 

대강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대강절을 보내면서 마음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빛이 되어야 할 종교는 타락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의 기대를 채워 주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로마 권력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을 새로 세울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분명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사람들은 더 훌륭한 곳에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만한 높은 지위를 갖고 오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인들의 친구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목수의 아들로 나사렛에서 30년을 사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물을 갖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성전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길 기다렸던 시므온과 안나,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고백한 주의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생명의 빛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2020년을 지내면서 예수님보다 백신을 더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보다 세상의 문명과 무엇보다 물질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빛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디도서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두 번 나타나심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2천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베들레헴의 예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언젠가 영광 중에 나타나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 중간의 기간을 살고 있습니다.  중간기를 사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경건하지 않고 세상의 욕심을 쫓는 모든 것은 “아니오(No)”로 거부해야 합니다. 대신, 신중함(절제)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선한 일에 힘쓰는 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우리에게 임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복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영광 중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河-

2020 대강절에 (3)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기다림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에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에 탁월했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자신의 편지 마지막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를 강조합니다.

 

본문 속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물론 우리도 성육신하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 사이의 중간기(interim period)를 살아갑니다.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삶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 세상이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꽤 유명한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세 가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곧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가지 명령이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개인을 넘어서 다 함께 걷는 여정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폐하지 말라는 말씀은 매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위하고 어떤 모양이라도 악을 버리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행여나 성령의 불이 꺼진다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능력이 사라질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서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언은 사도바울 당시 교회에서 선포되고 권면하는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성경이 없으니, 사도바울의 서신이나 교회에서 공인된 예언자들의 권면이 중요했습니다. 이방 풍속이나 세상 것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라는 부탁입니다. 그때, 선한 것을 분별하고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악한 것들을 정리할 결심도 섭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살고 있는 교인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팬데믹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평강이 필요합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영과 혼과 육이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서 떳떳하게 보존되길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河-

2020년 대강절에 (2)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마음속에 촛불 두 개 켜고 맞는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의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기다립니다. 좋은 날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소망과 연결되면, 우리 삶에 큰 활력을 줍니다. 언제 끝이 올지 모르면서 막연히 견디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래도 참고 견딥니다.

 

지난주에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이사야 64장 1-9절). 포로에서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기다림의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치니 옛 습관이 살아나서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도 회개하고 목자 되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이스라엘이 아직 바빌론에 포로로 있을 때 임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70년의 포로 살이가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힘겹고 막막한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당시는 나라가 크고 강하면 그들이 믿는 신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제국의 신이 최고이고 약소국이 섬기는 신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지경입니다. 만약, 바빌론에 의해서 멸망한 나라의 신은 바빌론 신 마르둑의 부하가 되는 식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약한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깊이 베어져 있었고 이스라엘도 예외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빌론의 신 마르둑에게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바빌론 포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사야서의 두 번째 큰 단원(40-55장)이 선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째 이사야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죄를 지어서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다는 죄의식과 패배감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두고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고속도로와 같은 큰길을 만들라고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실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 신을 능가하는 큰 힘으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바빌론도 무너뜨리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유일한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보호하고 먹이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린양을 품에 안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렐루야! -河-

2020 대강절에 (1)

교회력에 따르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오늘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간이기에 네 번의 대강절 주일에 촛불을 하나씩 켜놓고 예배합니다. 우리도 마음속에 또는 가정에 촛불을 밝히면서 예수님을 기다리면 더욱 뜻깊은 대강절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대강절과 성탄절 말씀은 성서일과(lectionary)에 주어진 본문을 따라서 말씀을 준비해서 나눌 계획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사야서 64장 1-9절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7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로 살았습니다. 비록 포로로 이방 땅에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는 등 이스라엘에게 바빌론 포로 기간이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국 바빌론이 페르시아와 고레스에 무너지면서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짓고 신앙 회복에 힘썼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었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빌론을 물리친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고향에 돌아온 감격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떠났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이처럼 다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죄로 찌들은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presence)가 하나님 부재(absence)로 변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 셔도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때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간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임하시길 간청합니다. 불로 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강림에 산들이 진동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제국들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벌벌 떨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신도 하나님처럼 임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깨어 있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께 나옵니다. 토기장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길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는 회개입니다.

 

올해 대강절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맞이합니다. 흩어진 참빛 식구들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하나님을 잊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고 우리 안에 능력으로 임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河-

2020 추수감사절에

오늘은 2020년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예년 같으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여선 교회가 준비한 추수감사절 만찬을 나눌 텐데, 올 해는 각자 흩어진 자리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흩어져서 예배한 지 여덟 달이 넘었으니, 새로운 일상에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주일마다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친교할 때 더욱 힘이 생기는 것을 실감한 올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뜻 깊게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환경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고 그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로 모이지 못했지만, 지난 8개월여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한 예배에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아가방에 있어야 하기에 부부가 따로 예배드려야 했는데,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집중이나 참여도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한, 집에 있으니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영상 예배의 이점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래도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못하니, 예전의 공동체 예배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직은 언제 모여서 함께 예배할 수 있을지 정해진 날짜가 없습니다. 그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다시 모였을 때 우리의 기쁨이 배가되고 더욱더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개인별로 또한 가정별로 감사할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 불평이 먼저 나오고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는 찾아서 세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 보내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시편 95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오라”로 시작되는 1절은 모든 백성을 하나님께로 초청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노래하고 즐거이 외치는 장면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부르는 승전가처럼 들립니다.

 

시편 기자가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신보다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높으신 것이 없으니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주간이길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