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 식구들의 일주일

자기를 돌보는 삶에 대해서 살펴볼 때, 로마서 12장 1절을 함께 나눴습니다. 우리의 몸(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자기 돌봄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매주 모이는 주일예배와 더불어 가정과 세상 속에서 보내는 6일간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우리 교회에 모임이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서로 격려하며 친교한 후에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이 좋은 것과 교회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혼동했습니다. 주일이나 주중에 교회에 와서 살고,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 교회 활동하는 것을 신앙이 좋다고 했고 그런 교회를 두고 성령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교회 활동에 익숙해서 우리처럼 예배 후에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뭔가 활동을 해야 할 것 같고 신앙의 열심이 식은 것 같은 느낌이 들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교회 활동을 줄이고 가정과 세상에서의 삶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신앙이 미지근해지거나 우리 교회 방식에 길들어서 여유시간을 헛된 곳에 쓰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우리 교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6일을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올 한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 주간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은 참빛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예배입니다. 조용한 기도부터 마지막 축도와 식사 기도까지 모든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지혜, 주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하기 원합니다. 친교를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할 제목을 찾아내고,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메시지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매일의 말씀을 참빛식구들 각자에게 맞게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수요일에는 저녁 예배에 오실 수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목요 서신을 통해서 세상에서의 삶을 점검하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시간입니다. 첨부한 주일 설교를 들으시고, 수요예배 교재까지 읽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보의 생명샘을 읽으시면서 지난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는 것도 도움이 되십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새벽 기도회가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성도님들의 참여를 권합니다. 무엇보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삶을 마무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쪼록 참빛 식구들께서 일주일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세상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河-

돌보는 교회 (4)

돌봄은 관계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가정이나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 속에서의 돌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자신을 한 발짝 멀리 뛰어 놓고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돌봄의 대상인 타인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잠언에서도 마른 떡 한 조각을 갖고 화목한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미움과 갈등,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지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기쁨이 사라지니 관계가 깨진 곳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돌봄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돌봄은 서로 지체 의식을 갖고 은사를 따라서 행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과 은사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 공유할 때, 교회를 소중히 여기게 되고 온 힘을 기울여서 공동체를 세워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롬12:9-13)은 공동체를 세우는 구체적인 원리와 태도를 알려줍니다.  그 한가운데 “사랑”이 위치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돌보는데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교훈은 교회뿐 아니라 가정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교제까지 확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거짓 없는 사랑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거짓없이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형제자매를 살리는 선함을 사랑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말 그대로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미움과 갈등을 삼가야 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랑해주고, 관계를 개선하며, 존경해 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돌봄은 받는 것보다 베풀 때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를 섬겨야 합니다. 행여나 이웃을 섬기다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하는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구체적인 돌봄입니다. 이렇게 주를 섬기며 이웃을 돌볼 때, 우리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河-

돌보는 교회 (3)

자신을 돌보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최종 목적입니다.

 

돌봄의 범위는 자신을 넘어서 공동체로 향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이 돌봄의 범위를 공동체까지 넓혀줍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로마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국의 수도였기에 교회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과 헬라 출신 교인들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에베소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단지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핏 값을 치르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행20:28).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팔과 다리와 같은 지체없이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각 지체가 몸에 분리되어도 안 됩니다. 지체가 몸을 구성하고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지체인 성도들로 인해서 세워집니다.

 

12장 3절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로 시작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기초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이 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각 사람”에게 권면합니다. 일일이 모든 성도에게 권면하는 것이니 바울의 권면에서 면제될 사람이 없습니다.

 

제국의 수도 로마에 세워진 교회였으니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서로 옳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안고 있는 분열의 씨앗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마음에 품지 말라고 합니다. “겸손”을 뜻합니다. 빌립보서 교회에 권면했듯이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분량은 우리에게 믿음의 크고 적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갖고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각 성도에게 은혜를 나눠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사는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입니다. 성도들은 받은 은사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뿐입니다. 은사대로 섬긴다고 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두루 섬겨야 합니다. 우리 안에 교회를 돌보는 기쁨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河-

돌보는 교회 (2)

돌봄은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영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돌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은 위로자와 상담자이십니다.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와 세상을 돌보시는 보혜사가 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돌봄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구원하실 만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만큼 귀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알기 전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혹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다르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기독교 교리(doctrine)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는 서두입니다. 로마서 전체 문맥에 따르면 앞에서 사도 바울이 소개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요약한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응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리 위에 임한 하나님의 모든 긍휼과 사랑입니다. 12장 이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물론, 교회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돌보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돌보는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는 이 세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순응(conform)하지 않고, 대신 변화를 받아서 (transform)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롭게 된 온전한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변화된 자신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돌봄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완전한 변화를 지향합니다. 새롭게 된 자신이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 떠나는 신앙 여정입니다. -河-

돌보는 교회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돌보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홀로서기라는 표현은 근사하지만, 실제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안타까우셔서 그에게 동역자 이브를 주시면서 에덴 동산를 가족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이브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과 교제하셨는데도 이브를 만드신 것을 보면 홀로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받기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면서 돌봄을 받기보다 돌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돌봐야 할 영역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돌봄이라고 했을 때 지나치기 쉬운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도 돌봄의 영역입니다. 가정을 비롯한 공동체를 돌봐야 합니다. 가정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브를 주신 것과 같은 신앙과 인생의 동지입니다. 이웃도 돌봐야 합니다. 우리의 돌봄이 자신과 가정 또는 공동체에 그친다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돌봐야 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차례로 살펴볼 주제입니다.

 

오늘은 자신을 돌보는 신앙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 신앙하면 자기희생을 떠올립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눅14:27)라는 예수님 말씀이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바울의 고백(고전9:27)이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신 것은 신앙이나 인생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돌봄만 받으려는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길 원했습니다. 바울의 특별한 소명이며 열정입니다. 무심코 따라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사랑을 명령하실 때도 “네 몸과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몸만 챙기는 본능을 지적하신 말씀이기보다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을 전제로 이웃 사랑을 부탁하신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첫째로 육신을 돌보는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인생은 물론 신앙생활에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두워지거나 뚝-떨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삶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오늘 본문에서 “몸”이라고 불렀고 육신을 포함한 삶 전체를 뜻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자기 돌봄의 목표입니다. 올 한해 우리 몸을 멋지게 돌봄으로 삶 전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