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

성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존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릴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열흘 남짓 지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거듭 태어났고 능력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오심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성령이 오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로 시작합니다. 앞 장인 요한복음 13장은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예고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 계명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책임지실 줄 알았는데 떠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 것을 부탁하시면서, 아버지 집으로 가지만 제자들이 있을 곳을 예비한 후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사도신경에서도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올 테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영(靈)이셔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성령을 보혜사 (헬라어, 파라클레이토스)로 부르는데 옆에 계시는 분, 위로자, 돕는 이 또는 안내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우리 안에 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시고,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거룩한 마음과 삶을 준비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가정과 일터, 교회와 세상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합니다.-河-

예수 그리스도 (7)

교회력에 따라 오늘은 부활절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적도 있고, 예고하신 대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마지막 부탁과 함께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앞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까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능력 그리고 평안을 구하며 부활절 이후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도신경에서 부활 이후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세 가지 덕목입니다. 첫째는, “하늘에 오르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거나 직접 전해들은 사도들이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일제히 예수님의 승천을 알려줍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며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성령이 임하면 그 능력을 힘입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은 물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것을 부탁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둘째로,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실까에 대한 해답입니다. 또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단순히 우리가 날마다 쳐다보는 하늘(sky)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갖고 계심을 뜻합니다. 우편은 전능함의 상징이니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같은 분임을 장소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늘로 올라가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겨 놓은 주인이 다시 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기에 예수님의 재림에 맞춰서 현재의 삶을 조율하고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죄없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궁극적인 소망을 확인하고, 그 소망을 가슴에 품고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걷는 것입니다. -河-

예수 그리스도 (6): 부활절에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면서 나누는 부활절 인사입니다. 부활절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고 드디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春分)과 보름이 지난 후 첫 번째 맞이하는 주일에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에 맞춰서 부활절을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계절에 부활절을 지키게 된 것도 의미가 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봄철에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겨우내 땅속에 있던 씨가 싹을 틔우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이 임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생명이 임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예수님 말씀과 일치합니다(요한 12:24).

 

부활절을 이스터라고 부르는 것도 봄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 “이스터”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탄절이 긴 밤이 지나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에 태양신을 섬기던 전통을 갖다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켰듯이, 부활절을 이스터라고 부른 것도 세상에서 지키던 봄의 축제를 기독교가 갖고 왔습니다. 부활절과 토끼를 연결하는 것도 북유럽 튜턴족의 이스터 축제와 관련됩니다. 토끼는 그들이 섬기던 이스터 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세상 속에 녹아 들어갔고, 세상의 풍습을 기독교 절기로 거침없이 변환시키면서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부활절 달걀에 대한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생명을 품고 있는 달걀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달걀 장수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전해 내려오는 전승일 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토끼보다 달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습니다. 부활 신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는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다. 썩어질 육의 몸이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부활을 믿기에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갑니다.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마음껏 누리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그가 사셨습니다(He is Risen)! -河-

예수 그리스도 (5)

기독교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 한가운데 모시고 신앙과 삶의 축으로 삼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세로 목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갑니다. 십자가의 가로 목을 통해서 이웃에게 나갑니다. 세로 목과 가로 목이 만나는 한 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아담 이래 모든 사람 속에 내재되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깊이 뿌리내린 악의 속성을 해결해 주신 승리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얽어 매고 있는 죄의 속박을 풀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죗값을 갚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고 했으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막혀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이어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능해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사소해 보이고,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신앙의 가치를 잊고 지낼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예수님의 목숨과 맞바꾼 값비싼 것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십자가 위에 우리의 교만한 자아와 집착하는 욕심, 시기와 질투를 못박고 예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이제는 우리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십자가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께 나갑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예배하고 기도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잔재가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가셨기에 우리의 악한 속성이 뿌리내렸던 죄에서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고리가 끊겼기에,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죽음의 세력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십자가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잡고 승리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河-

예수 그리스도 (4)

부활절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절기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이라는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셨기에 탄생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태양신의 생일로 섬기던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대체한 것이 성탄절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에 비교해서 부활절은 유대인들이 지키던 유월절과 맞물린 정확한 시간입니다. 기독교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부활절의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독교의 역사성이 확증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는 부활에 앞서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의 실명이 등장하는 것도,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음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사람이 빌라도였기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지만, 빌라도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주후 26-36년까지 유대 총독으로 있었던 실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영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려는 그릇된 시도에 대한 정통 기독교의 변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세상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도 믿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21장 22-23절에서는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을 저주받은 죽음으로 규정하고 그 날에 장례를 지낼 것을 명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형틀이었습니다. 반역이나 중한 죄를 지은 죄인들을 처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전통에 의하면 저주받은 사람이 죽는 나무 위에서 그리고 로마 시대에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제물로 드려진 어린양처럼 세상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면서 예고하신 구원에 대한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사순절 막바지를 보내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