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를 바울의 마음으로 읽다 보면 저절로 신바람이 납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고 당분간 멀리 떠나있는 부모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교회에 있거나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 있든지 상관없이 빌립보 교회가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룰 것을 부탁합니다.

 

지난주에 배웠듯이 항상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신 선하신 뜻을 이루기로 결심하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높이고 배려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은 본회퍼의 말대로 예수님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지 않고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율할 정도로 감격하면서 신앙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 실천하기를 명령했습니다. 그때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여기까지 나간다면, 바울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제물이 된다 해도 기뻐하겠답니다.

 

앞으로 살펴볼 빌립보서의 세 번째 단락에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바울의 후계자인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분신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을 먼저 구할 때,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일을 우선했습니다. 바울과 끝까지 함께 하면서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와 같은 믿음직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청년이었던 디모데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두번째 인물은 빌립보 교회 출신의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는 바울을 위해서 빌립보 교회가 거둔 헌금을 갖고 로마를 방문했다가 그만 병에 걸렸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자신마저 병에 걸린 것을 빌립보 교회가 알게 될까 염려했습니다. 죽을 정도로 위급한 병에 걸렸는데도 주님의 교회를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바브라디도를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 주셨고, 바울의 편지를 갖고 빌립보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돌보지 않은 에바브로디도 역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라디도는 감히 우리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따를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 있음에 감사하고 우리도 그 길을 가기로 결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 말씀은 옥중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라는 큰 주제가 저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복음을 전하는 동기나 방법에 상관없이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만을 기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관제(제물)로 드려진다고 해도 교회가 흠없이 세워진다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기뻐할 것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의 마지막 장으로 가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부탁합니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힘을 주고 기쁨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빌립보서가 갖고 있는 말씀의 힘을 느끼고,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 속으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한편, 빌립보서를 읽다 보면 솔직히 부담감도 생깁니다. 빌립보서의 말씀을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실제적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죽든지 살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길 바라며 실제로 그런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을지요?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믿음과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에 진실로 “아멘”할 수 있을지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부탁하는 한 마음과 한뜻, 겸손으로 서로 섬기고, 자기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일을 돌보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은 물론 오늘날 시대에 동떨어진 말씀처럼 멀리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부담감을 극복하고 빌립보서에 깃든 말씀의 힘과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리길 원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혼자 그 길을 걷기가 힘들기에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그리스도의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기에 오늘 본문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거나 긴장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신앙의 길을 가라는 부탁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갈 때,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약속이 큰 힘을 줍니다. 우리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지만, 우리 안에 자신의 기쁘신 뜻을 두시고 그것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한마음이 되어서 그 길을 걸어갑시다. -河-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는 신앙의 교훈과 더불어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신앙과 상황을 간증하듯이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관심과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어떤 이들은 선한 뜻으로 복음을 전했고, 어떤 이들은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못된 의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마음과 방식이든지 복음만 전파되면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리스도와 복음만이 존귀하게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축이 자신에서 예수님과 복음으로 완전히 옮겨진 모습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길 바랐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예수님을 믿고 어떤 어려움이 밀려와도 담대하게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은 은혜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닥칩니다. 반대하는 세력도 만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부탁합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서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마음을 같이하며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빌2:2)라는 말씀이 특별합니다. 여기서 한마음은 단순히 교인들끼리 마음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한 마음이 되었어도 그 안에 예수님이 없다면 복음에 합당한 교회가 아닙니다.

 

한마음과 한 뜻이 되는데 “다툼과 허영”은 금물입니다. 다툼은 서로 이기려고 힘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허영은 있지도 않은 것을 있는 것처럼 자랑하고 자신을 꾸미는 것입니다. 대신, 겸손과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섬김이 요청됩니다.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본다면 완벽한 공동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닮을 때 온전한 신앙과 멋진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닮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바울의 기쁨

지난주에는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꺾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16강에 오르길 기원했지만, 실제로 한국이 독일을 꺾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겼습니다. 축구팬들로서는 오랜만에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 덕분에 16강에 올라간 멕시코 사람들까지 “꼬레아”를 외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독일전이 열리기 전날까지 여기저기서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넘쳤습니다. 자칫 독일전에서 큰 점수차로 지거나 졸전을 벌인다면 축구팀 전체가 죄인 취급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독일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여론이 급격히 변했습니다. 비난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입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국민 여론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에도 성격은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으니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은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하지 않았어도 바울의 가르침과 바울이 전하는 소식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교훈과 말이 하나님 말씀인 셈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갖고 로마를 방문했고, 바울은 그로부터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서 바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바울의 권위는 약해졌고 각자의 신앙전통을 빌립보 교회에 도입하려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게 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보 뿐만 아니라 로마에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도리어”라는 태도로 대응합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빌립보 교회는 물론 여기저기에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그 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놓고 바울은 “도리어” 기뻐한 것입니다. 선한 뜻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복음만 전파된다면 기뻐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바울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기에 자신을 비난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찻잔 속 물처럼 요동칩니다. 그러니 세상의 인기와 평판에 얽매이면 한정없이 불안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예수님으로 중심을 잡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토대로 삼기 원합니다.-河-

사도 바울의 기도

이번주 토요일에는 남선 교회 주관으로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탠포드 근처 공원으로 야유회를 갑니다. 작년의 버클리 마리나에 이어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나들이입니다. 우리 교회는 갓 태어난 아기들부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지만 90이 넘으신 권사님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서 예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수십년전에 미국에 오신 권사님들부터 최근에 미국땅을 밟으신 식구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교인들부터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오시는 분들까지 사시는 지역과 하시는 일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들이 한마음으로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지역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빌립보 교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간직했고, 교회를 세운 사도바울은 물론 모든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함께 하시고 빌립보 교회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울이 현재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각별한 인연으로 세워진 교회였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특별합니다. 십자가위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교 교회와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역시 한결같이 바울 편에 섰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에 물심양면으로 동참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변함없이 바울을 지원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나누는 사랑과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편지의 인사말(1-11절)을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사랑 안에서 예수의 날까지 복음을 지킬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는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추구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첫날부터 이제까지

세상 속에 하나의 교회가 세워 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빌립보에 갔지만, 복음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렸고 루디아라는 최초의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계기가 되어서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두 번째 교인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믿음과 기도로 끝까지 견뎠을 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자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흐트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바울을 사용하지 않고 그가 전한 복음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바울을 깎아내리면서 그릇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옥에서 전해 들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 올바른 믿음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한시도 빌립보 교회를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것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왔고, 어려운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자라가는 빌립보 교인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쁨과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잊지 않고 복음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악한 무리들이 들어와서 유혹했지만, 바울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처럼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사는 빌립보 교인들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도 착한 일을 시작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계획하신 선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변함없는 신앙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가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담대함이요 확신입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축복 선언이 우리 참빛 교회와 참빛 식구들께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빌립보 교회

13년 전 샌프란시스코에 올 때, 베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지인들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임지로 보내신다는 믿음으로 무작정 샌프란시스코에 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보니 지역의 환경은 물론 목회 상황이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매우 달랐습니다. 저의 부족함에 낯선 환경까지 더해지니 목회가 쉽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을 믿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걸어가는 여정에서도 예상치 않은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때는 누구나 지치고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결국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믿고 걷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주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냐 왕 빌립 2세가 세웠습니다. 금광이 있고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특히,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 대제가 빌립보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에, 특별 구역으로 지정하였고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서 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는 이처럼 전통과 명성을 두루 갖춘 도시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현재의 유럽인 마게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빌립보에 도착했지만, 복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빌립보라는 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도착한 임지였는데 그만 어려움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문을 두드렸고, 염색 산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서 빌립보에 이주한 루디아라는 옷감 장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음에도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다가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 쇠사슬이 매인 채로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렵게 열린 복음의 문도 닫히고 바울과 더불어 예수님의 복음도 갇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힘차게 찬송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며 풀려나게 되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였기에 바울은 그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심정과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