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기 멋대로”라는 말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웬만한 유혹이나 세상 풍습에 흔들리지 않고 줏대 있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예의가 없는 모습입니다. 후자라면 문제가 있지만, 주관과 소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박수를 보낼 만합니다. “멋”이라는 말이 주는 여유도 느껴집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배웠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좋은 의미에서 나름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자기 정체성, 같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공동체의 삶, 세상 속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선을 행하고 약한 자를 돌보는 선교적 삶까지 독특하고 멋있는 생활방식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멋”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자주 오는 것보다,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둘째로, 교회 사역을 놓고 강권하거나 꼭 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지 않아서 소외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손길이 부족하면 자원하시는 분이 생길 때까지 뒤로 미루거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그냥 넘어갑니다. 셋째는, 자원하며 섬기는 손길로 교회가 세워지길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새로운 사역을 제안해서 주도권을 갖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갖고 있는 은사를 알려주시면 교회를 세우는데 잘 활용하도록 돕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더 하나님 마음에 맞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다윗과 골리앗의 말씀에서 다윗이 사울 앞에 가서 양을 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도록 허락하면서,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까지 입혔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옷이 다윗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추장스러웠습니다. 다윗은 갑옷을 벗고 일상복 차림으로 골리앗과 싸우러 나갑니다. 역시 다윗은 일상에 강했습니다. 양을 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모습 그대로 골리앗을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했던 방식대로 각자의 골리앗을 마주합니다.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河-

다윗: 일상 속의 체험

처음이 좋아도 끝이 흐지부지하면 그동안의 모든 과정이 수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에서 신앙을 달리기에 비유하는 것도 중간에 열심히 달려서 마지막 결승점에 도착하지 않으면 상을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은 그만두고 결승점을 통과해야 기록이 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은 키가 보통 사람보다 어깨만큼 컸던 그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했습니다. 왕으로 제비 뽑히자 그의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레바퀴 뒤에 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후에 자리가 잡히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했습니다. 아말렉을 칠 때,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좋은 것을 숨겨놓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생각이었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사소한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았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사울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그를 기름 부었던 사무엘 선지자는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왕은 다윗입니다. 그 다윗이 지금 전쟁터에 온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40일 동안 골리앗을 향해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출동과 후퇴만 반복하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해서도 분노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 불려갑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을 본 사울 역시 그가 골리앗을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골리앗과 맞서 싸울 사람이 없으니 다윗을 예사롭게 넘길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을 칠 때 경험했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사자와 곰을 쳐서 이겼으니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도 쉽게 이길 것이랍니다. 짐승들로부터 자신의 양을 구한 것처럼 골리앗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다윗이 다시 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을 언급합니다(36절).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골리앗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이 있었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지만 그 경험을 골리앗과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체험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졌고 골리앗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윗을 통해서 배웁니다.-河-

골리앗 앞에서: 분노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씀이 흥미진진하기에 말씀 속에 쉽게 빠져들고 자기도 모르게 다윗이 되어서 앞에 마주 선 골리앗을 대항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골리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우리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두려움”과 “주춤거림”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두려움은 골리앗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로부터 찾아옵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골리앗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폭풍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뢰라고 했습니다. 삶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안팎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으로 크고 작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골리앗으로부터 생긴 것이라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주춤거림은 우리 스스로 불러온 문제입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나타나서 겁을 주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역시 전쟁터에 나갔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할 뿐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 상황에 길들여졌습니다. 서로 미루며 합리화하고, 방심하면서 주춤거리는 것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골리앗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골리앗이 우리 앞을 막더라도 당연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분노”입니다.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윗에게 골리앗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삼상17:26)에 불과합니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노하는 다윗을 본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양이나 치라는 식입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분노해야 할 형들은 다윗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릇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백성을 무시하는 골리앗 앞에서 형들은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처럼 분노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엘라 골짜기의 판세를 바꿔 놓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갖고 있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분노였고 용기였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의 형들이 보여준 그릇된 분노가 아니라, 다윗이 갖고 있던 의로운 분노로 세상과 삶을 변화시키고 주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河-

골리앗 앞에서: 주춤거림

지난 반년 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서를 공부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반복해서 나오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등장하니 읽는 우리도 위축되곤합니다. 그래도 구약의 예언서는 꼭 읽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우리의 모습을 대입해 보면서 신앙을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했는지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절반을 남겨둔 채, 지난 수요일부터 마가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고,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계속될 마가복음 읽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요 예배에 오시지 못해도 목요서신과 안내석의 성경공부 핸드 아웃을 통해서 함께 마가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려움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팎에 크고 작은 두려움이 매순간 밀려오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떼지않는 믿음을 갖고 골리앗과 같은 두려움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골리앗은 “주춤거림”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 등장했을 때,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수군거리고, 절망하고,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사로잡혔습니다.

골리앗이 워낙 크고 강했으니 처음에 그를 보고 두려워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겁을 주었을 뿐,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진영에도 은근히 안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분명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장수가 존재하고 블레셋에 지면 나라의 운명이 위험 한데도, 블레셋의 공격이 지연되면서 현실에 안주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면서. 아침과 저녁에 들리는 골리앗의 선전포고에 익숙해 졌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졌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춤거림이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고, 해결하지 않은 채 지내는 주춤거림입니다.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 않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춤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춤거림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골리앗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골라앗 앞에서 : 두려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긴 사건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다윗의 승리 외에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물론 다윗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본문이지만,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심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서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가족만 알고 있을 뿐 사울이나 백성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었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몹시 놀랐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에 맞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가깝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57킬로그램(126파운드)입니다. 7 킬로그램(15파운드)에 이르는 칼을 손에 들고 있으니 그를 보고 겁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안전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들을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을 때 두려움으로 발전합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골리앗 처럼 외부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 힘겨워 보입니다. 골리앗처럼 크고, 완전 무장한 채로 다가와서 위협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물리칠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서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마주친 골리앗을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무너져야 하듯이 안팎에서 생기는 두려움도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선 골리앗을 보고 떨며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담대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골리앗과 마주하고, 그를 향해 달려나가서 무너뜨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