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구약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약성경 속의 기도는 개인을 넘어서 이스라엘 전체의 외침이었기에 우리 기도생활에 도전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 시간에는 아기를 갖지 못한 채 마음고생을 하던 한나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는 깊은 내면의 기도를 배웠습니다. 한나는 더 이상 참기 힘든 다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먼 나라로 도망가던 요나가 극적으로 구원받은 후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요나가 갇힌 물고기 뱃속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물고기 뱃속이 하나님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인 지난 주일에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외롭고 절박한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임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탄식했고, 하나님과 논쟁했고, 심지어 다시는 예언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었고 선지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기도가 아니었으면, 예레미야 역시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힘겨운 상황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의 일생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물리칠 때만 해도 다윗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10여 년을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왕의 자리에 올랐고 왕권도 견고해져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을 때, 전쟁에 나간 신하의 아내를 범하면서 다윗에게 고난이 닥쳤습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다윗 역시 기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했습니다. 시편 3편은 아들 압살롬이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서 밤중에 피난 가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 비참한 순간에 다윗 역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물고기 뱃속의 요나처럼 구원은 주님께만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번에 살펴본 네 명의 구약인물들은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나와 요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예레미야나 다윗은 그들의 일상이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남은 한해 기도로 살기 원합니다.-河-

예레미야의 기도

구약의 인물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선지자 요나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듯이 우리도 각자의 상황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대화하고 교제할 때, 다양한 방식이 있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고, 침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형식을 갖춰서 기도하고, 일상적인 대화식으로 기도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고,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기도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권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합니다. 시작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일하는 중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일을 끝낸 후에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신앙과 삶의 길을 걷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말씀과 함께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오늘 살펴볼 예레미야 선지자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무너지는 순간을 끝까지 함께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살 수 있다고 온 힘을 다해서 외쳤지만,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라와 민족이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달콤한 말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까지 득세하면서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까지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선지자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고 예언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고,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남은 5월을 기도로 마무리하고 기도로 새달을 맞이합시다.-河-

요나의 기도

구약성경의 요나는 독특한 선지자였습니다. 대부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합니다. 그것은 예언자로서 자격상실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의 반대쪽에 있는 먼 도시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배편을 알아보니 마침 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낯을 피해도 자신에게 아무 일이 생기지 않은 것에 안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배 밑에 내려가서 혼자 잠을 청한 것은 보통 배짱이 아닙니다. 그때 바다에 폭풍이 일었습니다. 폭풍이 거세지면서 선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잠을 자는 요나를 깨웠고, 누구의 잘못으로 폭풍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비를 뽑자 요나가 걸렸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폭풍이 일어난 것이 자신 때문임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먼 곳으로 도주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지자 요나에게 여전히 신앙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선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하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낯을 피하며 자신을 떠난 요나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따라가셔서 구원하시고 다시금 선지자의 자리로 부르시려는 의도입니다. 요나는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요나는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지냈던 물고기 뱃속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폭풍에서 구해졌지만, 여전히 물고기 뱃속이니 그의 앞날이 불투명합니다. 요나서를 읽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는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불안한 현실입니다.

 

그 순간 요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요나서 2장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떨어지다가 구원받은 요나의 마음과 상황,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고백으로 기도가 마무리됩니다.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요나의 기도 속에서 어느 것 하나 확실치 않은 나그넷길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한 달 동안 간절히 기도합시다! -河-

구약의 기도

앞으로 한 달 동안 살펴볼 2018년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는 구약성경 속의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로 시작해서, 다윗의 시편 기도, 요나와 예레미야의 기도를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고, 올 한해를 기도로 살기 원합니다.

 

구약의 기도가 갖고 있는 특징은 단지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약 속에 나타난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과 직접 관련되거나 이스라엘을 위해서 드린 중보 기도입니다. 양을 치는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이 꼭 필요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세상 속에서 주님의 빛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락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족들과 편안히 살고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가뭄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갔다가400동안 노예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들을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민족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그들의 삶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적으로 열강들 틈에서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고, 내적으로 가나안 땅의 우상을 받아들이면서 심하게 부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는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와 조카 롯을 위해서 기도했고,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무너지는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을 위해서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으셔서 때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 깨어있던 기도의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시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해 가셨습니다.

 

오늘 살펴볼 한나의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통곡으로 드린 기도입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갑절로 사랑했지만 남편의 사랑으로 해결되지 않았기에 슬픈 마음을 가진 한나는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깊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들 사무엘(“들으심”)을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자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을 왕으로 세운 인물입니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절망 가운데 있었던 한나에게서 이스라엘 역사에 남을 인물이 태어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누리고 맛볼 수 있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 원합니다. -河-

성도의 교제

사도 신경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우리 자신의 신앙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도 신경은 “나는 믿습니다 (credo)”라는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신경이 개인의 신앙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개인의 신앙은 매주일 예배에서 사도 신경을 한 마음과 한 목소리로 고백하듯이 교회의 신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신앙은 함께 걷는 순례길입니다. 신앙만큼 길동무가 요청되는 것도 없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서로에게 신앙의 동지가 되시길 바랍니다.

 

사도 신경은 신앙의 종착지가 아니라 첫 단추라고 했습니다. 사도 신경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덕목을 요약해 놓은 일종의 선언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신경은 신앙의 모습이 달라도 최소한 공유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진수입니다. 사도신경에 들어있는 삼위 하나님을 믿고 고백한다면, 누구든지 기독교인으로 함께 교제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네번째 부분은 우리 자신에 관한 고백입니다. 물론 삼위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가능한 고백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신앙을 공유해야 할 지 알려줍니다.

 

“거룩한 공교회”는 교회(“에클레시아”)의 의미 그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이 세상의 교회를 뜻할 수 있습니다. 사도 신경이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고백이라는 점에서 지역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입니다. 온 몸이 각 마디마다 서로 도움을 주고, 연결되고 결합합니다. 유기적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교제”는 필수적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에서는 다시 개인의 신앙 고백으로 돌아왔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못박을 때,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몸의 부활과 그 이후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 주일 사도 신경을 한 목소리로 읽습니다. 무심코 읽거나 엉겁결에 묻어가지 않고, 삼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확실히 고백하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신앙의 첫 단추를 올바로 채우시길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