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해설(12)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엊그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2025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부터 지켜오던 전통입니다. 사순절은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 기독교인이 되는 첫 관문인 세례가 그만큼 엄격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금식하며 경건의 훈련을 했습니다. 금식해서 절약된 양식과 재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2025년 사순절은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올해 사순절도 특별한 기간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금식과 절제를 통해서 신앙을 돌아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하는 사순절로 만듭시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의 배경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관점에서 쓰인 찬송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이 지난 안식 후 첫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동산으로 가는 길옆에 핀 장미꽃에는 아침 이슬이 맺혀 있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도착해보니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이 옮겨졌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감히 무덤 안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 하고 서둘러 내려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가 무덤으로 뛰어갑니다. 또 다른 제자는 요한으로 보입니다.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와 수건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미처 생각하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을 들여다봅니다.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이 누우셨던 머리와 발에 앉아 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묻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누군가 훔쳤고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마리아는 “랍오니 (선생님)”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치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을 지은 오스틴 마일즈(Austin Miles)는 요한복음 20장 말씀을 읽고 감동해서 이 찬송을 지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듯이 묘사했기에 더욱 은혜롭습니다.-河-

기도의 힘 (4)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를 크게 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다양한 방식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을 때, 우리의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따른 이번 연속 설교에서는 특별히 회개(참회)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바르게 정돈하는 과정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이야기하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뜻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자기 성찰을 위한 22가지 점검 리스트를 만들어서 속회는 물론 감리교인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나눕니다:

1. 나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실제보다 훨씬 낫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쓰지 않는가? 즉, 나는 위선자인가?

2. 나는 모든 행동과 말에 정직한가, 아니면 과장하는가?

3. 나는 비밀을 지켜주기로 하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가?

4. 나는 신뢰할 만한가?

5. 나는 옷, 친구, 일, 취미의 노예는 아닌가?

6. 나는 자의식, 자기 연민, 혹은 자기 합리화가 빠지지 않았는가?

7. 오늘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있는가?

8. 나는 매일같이 성경이 나에게 말할 시간을 주고 있는가?

9. 나는 기도를 자주 하는가?

10. 나의 신앙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것이 언제인가?

11. 나는 내가 쓰는 돈에 대해 기도하는가?

12.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가?

13.나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14. 내 양심이 불편해하는 일을 고집하며 행하지는 않는가?

15. 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가?

16. 나는 질투심 많고, 불순하고, 비판적이며, 짜증을 내고, 예민하거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17.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18. 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가? 지나친 자만심이 있지 않은가?

19. 나는 다른 사람, 특히 세리를 멸시한 바리새인처럼 내가 다른 사람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 않은가?

20. 내가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의절하거나, 비판하거나, 원망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21. 나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며 불평하는가?

22. 나에게 그리스도는 실제적인가? -河-

기도의 힘 (3)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죄와 허물로 막혀 있다면, 기도는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이듯이, 우리 역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 막힘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냈습니다. 말씀을 갖고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마음속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고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성찰, 회개는 안으로 향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대조됩니다. 특별히 회개는 우리를 속속들이 통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한 기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때, 성령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흰 눈같이 정결하게 됩니다. 회개에 이은 죄사함, 용서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창조의 시간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광야 40년,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쫓은 왕조시대를 성찰했습니다. 결국 나라와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7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 잃은 백성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지날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불만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부족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실하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습니다. 백성들은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河-

기도의 힘 (2)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기에 참빛 식구들께는 익숙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난주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식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기도입니다. 매우 신비로운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외롭습니다. 주변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웃이 있지만, 때때로 군중속의 고독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도 많습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때로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외로운 실존이 겹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쫓으면서 우리의 신앙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친밀하게 기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은 물론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에서 중요한 덕목이 바로 회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회개합니다.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는 민족의 회개입니다. 우선,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인 사무엘 선지자 시절에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던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먹을 것을 중단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입니다.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로 몸을 덮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개인은 물론 민족이 회개할 때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난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욥 42:6). 티끌은 재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했습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에는 여러 민족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이방 민족들이 사마리아에 강제 이주했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과 절교하고 거룩함(구별됨)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와 조상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는 개인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회개 없이 거듭남도 없습니다. 회개 없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 신앙의 필수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민족의 회개, 공동체의 회개까지 나간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고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원합니다.-河-

기도의 힘 (1)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1월에는 말씀에 관해서 공부했고, 2월에는 기도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견디는 중심축입니다.

 

말씀은 말 그대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식사하는 것이 우리의 몸에 영양분이 되듯이, 하나님 말씀이 신앙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매일 같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가까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곱씹고 묵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을 나침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이 북극을 가리키듯이, 성경은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임하는 말씀의 은혜가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여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성경은 쓰여진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한다면,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음성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매우 신비로운 신앙 행위입니다.

 

지난번 주일학교 설교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기를 바랐습니다. 공부하다가 막힐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길 원했습니다. 속이 상할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면서 마음고생을 풀어나가길 원했습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도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설거지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일을 하다가 막힐 때도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마음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은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느헤미야 9장은 백성들이 다시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 쓰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경험했다면, 백성들이 다시 함께 모여서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잘못한 것을 회개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개를 넘어서 민족 전체가 참회의 집회를 열고 함께 회개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물론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것이 특별해 보입니다. 이방인과 교제를 끊은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기도에는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낱낱이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