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4): 인도자/ 요한복음 16장 13-15절
Category: 말씀과삶
성령 하나님 (4)
– 인도자
성령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소개하는 성경 본문은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요한복음 14장과 16장 뿐입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며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우리말 보혜사(保惠師)는 성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입니다. 한자어의 뜻은 우리를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은혜를 베푸시는 성령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보혜사 성령께서 그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생각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보혜사에 해당하는 영어 번역은 다양합니다. “위로자(comforter)”라고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곁에 계시면서 위로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변호인(advocate)”이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변호해 주시고 보증하십니다(롬8:16). 항상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 탄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롬8:26).
“돕는이(Helper)”라는 번역도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이번 기회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친밀함이 더 해지길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을 “상담자(counsellor)”라고 번역한 영어 성경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민과 질문에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제자들에게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상담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니 제자들에게 훨씬 유익이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동안 배웠듯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지만, 다른 제자는 산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몸이 하나이시니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시에 상담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깨우쳐서 생각나게 하시고, 심지어 장래 일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장래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가야할 길을 제시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한 주간도 각자의 자리에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河-
2020년 6월 1주 말씀
성령 하나님 (3): 진리의 영/ 요한 14:26-27
성령 하나님 (3)
진리의 영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셨던 예수님 대신 우리 안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하시길 첫 번째 시간에 제안했습니다. 성령을 지나치게 영적인 존재 또는 이성과 반대되는 감정적인 형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표현인 강력한 바람과 불로 그곳에서 기도하던 제자들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을 바람에 비유했듯이 세상은 성령을 볼 수도 없고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주의 제자들은 성령을 느끼고 성령과 더불어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하셨듯이 성령 하나님도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으로 오실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길이 되심을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로 부르시고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처음 시간에 배웠듯이 예수님과 같은 분임을 뜻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절대 진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준이 모호해져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다원화된 세상이 조화를 이루며 화합을 하면 좋지만, 수많은 진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듯해서 혼란스럽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사21:25).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쫓는 사람들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 속에서 진리를 찾고, 그것이 드러난 성경 말씀을 기준 삼아서 신앙의 길을 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길이 되시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보여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 원합니다.-河-
2020년 5월 5주 말씀
성령 하나님(2): 오순절 성령/ 사도행전 2:1-4
성령 하나님 (2)
오순절 성령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120명의 제자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10일 후 오순절(유월절에서 50일째 되는 절기)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은 보리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후대의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강렬했습니다.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제자들이 있는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니 모여있던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푸뉴마”는 모두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숨결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른 뼈로 가득했던 에스겔 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오니 뼈들이 살아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 예수님께서도 성령으로 난 자를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요3:8). 하늘로부터 내린 급하고 강한 바람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임을 확실히 알려줍니다.
불은 성경에서 심판의 상징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이 되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를 기념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올라가 있던 산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았습니다(출20:18).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다른 민족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에 온 많은 민족에게 각자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창세기 바벨탑에서 각각의 언어로 분열되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같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오순절 성경 강림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확신을 갖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했듯이,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 충만해야 함도 깨닫습니다. 우리 위에 임하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한 주간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우리 마음에 삶에 성령의 임재를 구합시다.-河-
2020년 5월 4주 말씀
성령 하나님 (1): 보혜사 성령/ 요한 14:16-17
성령 하나님 (1)
보혜사 성령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십자가 십자가>로 시작해서 지난주 까지 <부활 그 이후> 이제 오늘부터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성령강림 주간을 맞으면서 <성령님 우리 성령님>이라는 주제로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주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신 사역이고, 성령은 3년 공생애를 마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던 모든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에 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실체 즉 육신을 입고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반경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100마일 정도에 그쳤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으니 그것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나님 부재(不在,absence)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 노아 홍수 이전의 타락한 인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빛으로 특별히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배신까지 인간은 언제나 청개구리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완성하고 거친 세상에 남겨진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靈, spirit)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표현 그대로 영이시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는 바람 또는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와 위력을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온화한 봄바람처럼 임하시고,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치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군사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을 느끼고 성령과 동행하는 신앙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성령에 대해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배우고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河
2020년 5월 3주 말씀
부활 그 이후 (5): 부활이 없으면/고린도전서 15:9-11
부활 그 이후 (5)
부활이 없으면
사순절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동안 <십자가 십자가>라는 주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묵상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상이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 앞에 주어진 어려움도 능히 이기고 그 깊고 큰 은혜에 잠기길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을 이룬 십자가, 하나님께 버림받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세상의 형틀을 승리의 상징으로 만드신 십자가의 능력을 차례로 배웠습니다.
부활 주일을 보내고 교회력에 따라 부활 절기를 지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함께 걸으며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니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현장에 없던 도마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의심이 많기보다 집요한 신앙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아오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도마는 눈으로 확인하고 믿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 믿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말씀도 기억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지만, 여전히 죄책감에 쌓여서 갈릴리 어부로 돌아온 베드로와 몇몇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양을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확신과 장차 가야 할 인생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을 한마음과 간절한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 안에서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끝에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 부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기득권을 버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부활 신앙의 힘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길을 걷고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