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1-3
찬양: 참된 응답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1-3
찬양: 참된 응답
2020년 새해 첫 번째 신년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새해 첫 주일이라고 하니 예배하는 마음가짐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상을 사는 교회입니다. 새해를 맞아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같은 것들의 반복입니다. 매년 드리는 새해 기도제목 신청서도 촌스럽고, 주보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최소화하지만, 우리 각자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면서 진정으로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보다 가정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비공식적인 만남은 활성화되어 있지만, 공식적인 교회 행사나 모임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가정을 세우고,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함께 모이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 주일예배와 예배 후 친교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좀더 적극적인 예배자가 되어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설교 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처음 조용한 기도부터 축도까지 모든 예배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 후의 애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서 예배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 가운데 성령의 지혜, 위로,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보에 광고하듯이 함께 부르고 싶은 찬양이 있으면 찬양팀에, 듣고 싶은 찬양은 찬양대에, 원하는 설교 주제는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희 예배팀에서 참빛 식구들의 제안을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교회 사역에 대한 좋은 의견도 안내석 제안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모두 적극적이고 간절히 사모하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쿠미/오리>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라는 하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새해는 물론 2020년대를 맞으면서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서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모두 빛으로 사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그가 친히 이루시리라”/ 살전 5:23-24
데살로니가전서 (10): 기쁨, 기도, 감사/ 살전 5:16-18
찬양: 주는 백합화요
꼭 필요한 세 가지
2019년 마지막 주일이고 그동안 살펴보았던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면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참빛 식구들과 매 주일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섬겨주신 찬양팀, 찬양대, 영상팀, 예배통역 그리고 환영팀과 예배를 담당해 주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드립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전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습니다. 함께 데살로니가 전서를 읽고 쓰신 성도님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눌 말씀이 있기에 중간을 건너뛰고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믿음, 사랑, 소망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탱하는 토대였습니다. 믿음에 역사(행함)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강력한 믿음은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사랑에 수고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돕고, 격려하고, 바르게 권계하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대신, 오래 참으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릴 것을 부탁했습니다.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환난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부활해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 소망도 어려움을 견딜 힘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번째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세 가지 신앙의 덕목을 배웠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이었습니다. 능력은 힘입니다. 확신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믿음에 확신을 더하십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또 다른 세 가지 덕목을 살펴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쁨, 기도,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면 꼭 갖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DNA입니다. 앞에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믿음이 과거이고 소망이 미래라면 가운데 있는 사랑은 현재입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에서 가운데 위치한 성령이 능력과 확신을 가능케 합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서도 기도가 항상 기뻐하게 만들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들이 우리 안에 확실하게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고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
데살로니가전서 (9): 능력, 성령, 확신/ 살전 1:4-10
찬양: 서둘러 가자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800여년 전에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꼭 맞는 예언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니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축제의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밝게 맞이할 절기입니다. 탄생의 기쁨으로 성탄절을 가득 채우기 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예배로 따로 모이지만,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 관계로 성탄절 전 주일을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여전히 죽음이 판을치고 영원한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밤과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살전5:5).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예고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도둑처럼 오신다고 하셨지만, 빛에 속하고 낮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늘의 능력과 힘이 임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뀝니다. 추구하며 쫓아가던 대상이 바뀝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유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죽음도 뛰어넘었습니다. 그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토대로 충만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갔던 믿음의 길을 우리도 걷기 원합니다. -河-
데살로니가전서 (8): 택하심/ 살전 1:4-10
찬양: 경배하리
– 택하심
데살로니가전서는 인사말에 이어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교회가 그 세 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그대로 자라간다면 바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기도는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너희를 기억함은”이라는 말씀은 바울의 생각과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또는 머리에 떠오르는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현저히 드러나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갖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씩 살펴본 신앙의 토대가 되는 덕목들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있었고, 확신을 갖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에 대해서 더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간 사랑하는 성도들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서 준비할 것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 복음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같은 사랑과 계획으로 선택하셨습니다(신7:7-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의 선택은 자랑거리입니다. 자신만 선택되었다는 경쟁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차별이 없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더불어 선택 이후도 중요합니다. 선택 이후에 복음으로 살고,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에 드러나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고 싹이 났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로만 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역사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동시에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자신들이 속한 마게도냐는 물론 아가야 지방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믿음의 교회였기에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