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좋은 아침입니다.

 

휴가를 얻어서

가족과 함께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습니다.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으로 오는 길에

그랜드 캐년을 들렸으니

11년 만에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때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어느 덧 50대 중반이 되었고요.

 

11년 만에 다시 찾을

그랜드 캐년이 어떤 모습일지

떠나기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큰 기대를 갖고

한국에서 오신 누님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랜드 캐년 진입로에 들어서니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공원에서 점심을 해 먹고,

일몰을 보겠다고 저녁 늦게까지 버텼지만

막판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허탕쳤던 생각도 났습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캐년(“협곡”이란 뜻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그랜드 캐년이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자연의 거대함, 아름다움, 신비로움

그리고 다양함까지

감히 우리 인간이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 웅장합니다.

 

아이들도 크고

우리 부부도 조금 나이가 들어서 변한 보습으로 다시 찾아왔지만,

그랜드 캐년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고

아니 아주 천천히 변하는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하고 왜소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웅장한 자연 앞에서 감탄할 것입니다.

찾는 사람들은 바뀌어도

그랜드 캐년은

언제나 그곳에 웅장하게 서있겠지요.

 

지난 11년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그곳에 계실 우리 주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찬송이 나왔습니다.

 

자연처럼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처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제가 되고 참빛식구들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Psalms 8:9)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29 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 둘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는

20년 동안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프로 농구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열일곱 살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지난 20년 동안 3만 점이 넘는 골을 넣었고

중간에 못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어제 경기에서 혼자 60점을 넣으면서

그의 농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팀을 옮기지 않고

20년을 한 팀에서 지낸 것도 대단하고

틴 에이저에 프로선수가 되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2.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전도서 7장에는

시작보다 끝을 강조하는 말씀이 연거푸 나옵니다.

 

출생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을 중시합니다.

 

7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서 “이것”은

<만사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될 것 같은 어려움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의 시작이

저녁의 감사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5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교회력으로 부활절 둘째 주일입니다.

 

강단 색깔은 흰색이고,

오순절(50일) 성령강림전까지

부활 절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두려움과 실의에 가득 차 있던 제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셨고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세상에 계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오순절에

약속대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2.

부활절 이후, 한 달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간입니다.

 

“평안하뇨”라고 인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 부인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그를 회복해 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절기를 보내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답하고

다시금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에

예수님과 가까워졌다면,

부활절 이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부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기가 오순절까지 계속되는 교회력을 따라서

부활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생명을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 21:15)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He said to him, “Feed my lambs.”(John 21:15)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You know that I love you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우리가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 이-메일 목회 서신)

고난 주간에

1.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각자 정한 대로 경건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금식이 보편적입니다.

육신에 즐거움을 주는 식욕을 억제한 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세상 것들에 매이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교만과 고집스러운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기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2.

영어로 성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답니다.
그래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Good Friday를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아니 온 세상을 향한
“선한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야 말로
악을 선으로 이긴 최고의 사건입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입니다.

 

은혜가 임하고 힘이 생깁니다.

 

3.

올해 성금요일에는

지난 월요일

벨기에 폭탄테러에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을 마음에 품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보내도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 세계가 하나님 앞에서 화해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올해 부활주일에는

성만찬과 세례예식

찬양대가 준비한 특별찬양,

찬양팀과 온 성도님들이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은혜를 묵상하면서

고난 주간을 마무리합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Isaiah 53:5)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임했음을  깊이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25 이-메일 목회 서신)

봄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베이지역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참 좋습니다.

 

올겨울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비가 충분히 왔기에

어느 해보다 만물에 생기가 돕니다.

 

아기 손처럼 연두색으로 나온 새싹들을

손끝으로 만져보면 촉촉한 생명의 기운을 느낍니다.

 

저는 사계절 가운데

봄을 참 좋아합니다.

 

겨울잠을 깨고

새싹이 돋고, 새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살아 있었구나”라는 탄성과 함께

생명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낮과 밤이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번째 보름까지 지난 후에

맞이하는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창문 틈으로

맑은 밤하늘에 반을 조금 넘긴 달님이 보입니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도 봄이 주는 축복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절이 봄에 있다는 것이

커다란 은혜입니다.

 

3.

늘 그렇듯이

분주한 일상에 빠져있으면

봄이 우리 곁을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내서

베이지역의 봄을 만끽하시면 어떨까요?

 

봄 길을 걸으면서

자연 속에서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입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저는 이 시를 읽으면

예수님이 생각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봄길을 걸으시는

참빛 식구들을 눈에 그려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You mak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in your presence there is fullness of joy;

at your right hand are pleasures forevermore. (Psalms 16:11)

 

하나님 아버지,

봄 길을 걸으면서

부활의 주님을 묵상하고

우리 안에 생명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17 이-메일 목회 서신)

사는 동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이틀 동안,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AI)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와

지난 10여 년 정상을 지켜온 한국의 이세돌 9단과의 바둑 시합이 있었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가 두 번 모두

대국에서 승리했습니다.

더욱 속상한 것은

앞으로 남은 세 번의 대국에서도

이세돌 구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두 번 모두 패하면서

이번 대국 자체에 대한 반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됩니다.

거대자본 구글이 지원하고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거의 모든 바둑의 기보를 학습시킨 알파고를

이세돌 구단 혼자서 대항하는 것은 불공평한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알파고(Alpha-Go)라는 이름대로

이제 “첫 번째로 시작하는 바둑”이라면

앞으로 어떤 인공지능의 시대가 펼쳐질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듯이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 같아 염려되고,

앞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의료는 물론 지구환경과

세계평화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니 기대도 됩니다.

2.

호기심에

국내외 기사를 검색해보니

아직은 그리 위험할 단계는 아니랍니다.

게다가

기계는 사람이 장착해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그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갖고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드는 것은 금지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되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 실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로봇까지 뛰어들어서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거기서 생기는 수입을 고스란히 로봇의 주인들인 초대형 회사들이 가져간다면

서민들의 삶은 한없이 피폐해 질것입니다.

직업윤리는 물론

부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원칙들도 세워놓아야겠습니다.

이런 일에도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많은 묘책을 만들어낼 수 있겠네요.

3.

어제 수요예배에서 전도서 3장을 읽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으니 때에 적합하게 행동해야 하고

세상일은 수고의 연속임을 인정하고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전도서 3장 1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

(Ecclesiastes 3;12)

앞으로 과학 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악이 아니라 선을 베푸는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늘의 기쁨을 마음에 간직하고 (be joyful)

선을 베풀면서 (do good)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본분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 살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꼭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10 이-메일 목회 서신)

영감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대학 농구 지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ESPN과 인터뷰하면서

두 가지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즌 초에 약팀에게 지면서

코치는 물론 선수들까지 싸잡아서 비난을 받았지만

팀이 점점 좋아지더니

결국 훌륭한 성적으로 우승했습니다.

팀이 잘 준비되어서 우승까지 왔다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준비해 놓으면

언젠가 열매가 있겠지요.

열매가 없어도

최선을 다했으니 자신에게 아쉬움이 적을 것입니다.

둘째는,

코치가 자신에게 아주 큰 영감(huge inspiration)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포지션별로 경기를 철저하게 분석했고

코트 안에 들어가면 자신 있게 경기할 수 있도록 격려했으며

무엇보다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동시에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읽고 있는 욥기가 생각났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영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욥을 깍아 내렸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영감 또는 친구를 향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2.

성경에서 영감(inspiration)은

하나님의 숨결(God-breathed)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숨결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깃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읽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도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야말로 “영감”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영감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삽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요!

3.

인터뷰한 농구선수는

코치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참빛 식구들께 영감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가슴설레는 목회가 되겠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빛 식구들께서

서로 서로에게 “큰 영감(huge inspiration)”을 주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정말 훌륭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감은

깊은 기도와 말씀 묵상에서 나옵니다.

아니, 서로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영감이 저절로 임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영감을 구합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열왕기하 2:9)

Elijah said to Elisha, “Ask what I shall do for you, before I am taken from you.” And Elisha said, “Please let there be a double portion of your spirit on me.”(2Kings 2: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 위에

성령의 영감이 갑절로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3 이-메일 목회 서신)

오히려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부터 새롭게 시작된

6주간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 욥기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욥과 세 친구들과의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학적인 이론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엘리바스는

욥이 고난받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의인은 절대로 고난받을 수 없다는 자신의 신앙을 고집합니다.

이에 대한 욥의 대답을 오늘 아침에 읽었습니다.

욥기 6장입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훨씬 무겁다고 밝힙니다.

고통이 워낙 심하다보니 자신도 경솔할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라면 위로를 해주어야지

죄를 지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욥은 지금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옆에서 함께 있어줄 동지가 필요하지,

이론적인 훈수나 가르침은 욥도 모두 알고 있고

그런 교훈을 들을 정도로 몸이 편하지 않습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6:25)

How forceful are upright words!

But what does reproof from you reprove? (Job 6:25)

그렇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정죄하고

특히 신앙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상처에 초를 붓는 격입니다.

곁에 있어주고

조용히 기도해 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2.

재산과 자녀를 잃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할 상황인 욥이

6장 10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10)

But it is still my consolation, and I rejoice in unsparing pain,

that I have not denied the words of the Holy One. (Job 6:10)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히려”라는 표현 앞에서 한 참을 멈췄습니다.

지금 욥은 위로를 받을 상황이 아닌데

고난이 그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고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물론 욥기가 진행되면서 욥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기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에서

“오히려”라는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여러가지 일들이 생깁니다.

특별히 힘든 상황이 펼쳐지거나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오히려”라는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도 작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

현재 여러분들 상황에

“오히려”를 대입해 보시고

그 속에서 위로와 기쁨이 임하는 경험을 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오히려”의 말씀이 임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위로받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2.25 이-메일 목회 서신)

욥기가 없었더라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한장씩 읽어온 것이

욥기까지 왔으니

보슬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구약 전체의 메시지에서 옆으로 살짝 비껴 서 있습니다.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로 대표되는 구약성경에서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신앙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살고

의인에 길에 서 있으면

하늘의 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죄인의 길로 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명쾌하지만

우리네 인생이나 어그러진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단순할 수 있습니다.

2.

욥기로 오면

상황이 바뀝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부유했습니다.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신명기 말씀 대로 축복받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이 닥쳤습니다.

자녀들과 재산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지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예배했고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과 사단이 내기를 하신 겁니다.

사단은 욥이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까닭없이” 즉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을 것임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욥을 택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대로 잘 버텼습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욥의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3.

욥기의 진수는 3장부터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입니다.

친구들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응보입니다.

욥이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 신앙에 익숙하면

욥기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말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욥은

까닭없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의인의 고난입니다.

욥은 차근차근

또 때로는 감정에 격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욥기가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폭풍 속에서 임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밝히십니다.

욥은 재를 뒤짚어쓰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욥은

까닭없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4.

욥기는 어렵고 생소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구약성경의 주류 메시지에서 빗겨 있습니다.

하지만

욥기는 우리 인생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닥치는 고난을 두고 고민하게 만들고,

하나님 백성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알려줍니다.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까닭없이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허락하시고

욥처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길 원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고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까닭없는 고난도 받아 들이고

고난 속에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닫고

고난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귀로만 듣던 말씀이

눈으로 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면

아주 깊은 신앙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많이 나오지 못하시지만

사순절을 보내면서

욥기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차근차근 읽으시고 묵상하시면서

신앙과 삶을 욥기에 비춰서 재조정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께서

욥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2.18 이-메일 목회 서신)

D-13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가

13일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65일이라는 시간을 인생의 저금통장에 넣어주십니다.

365일은 그해에 모두 써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 년을 365일로 계산한 달력을 사용한 이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시간을 사용해서 나온 결과물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움이 제일 먼저 밀려옵니다.

“이렇게 해야 했는데”

“저렇게 해야 했는데”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특히 세상의 잣대를 사용하거나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쉬움은 더 크게 밀려올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어떤 마음으로/어떤 태도로 살았는지

세심하게 살피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다면,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성실한 삶을 살았다면

아니 그렇게 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합격입니다.

3.

올해 남은 13일도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 되게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3일이 지나면 2016년 새해가 됩니다.

그러고보니 새해까지 D-13입니다.

성탄과 송구영신의 계절에

착하고 충성스러운 태도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앞길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21:31)

The horse is made ready for the day of battle,

but the victory belongs to the Lord. (Proverbs 21:3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7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