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미국시간으로 설날이네요.
미국에서야 설날을 챙길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모두 모두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웨슬리는 신앙이 성장하고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 초대교회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으로
개인은 물론 공동체 기도, 말씀읽기, 성만찬, 금식,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2) 상황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은총의 수단은
선을 행하는 것(to do good)과
나쁜 것을 피하는 것(to do no harm)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신앙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이외에도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경제적 나눔, 시간의 선용,
사랑의 식탁나눔(애찬), 찬송, 영적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이러한 은총의 수단들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성도의 삶이 풍성해지며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어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사순절마다 첨부해 드리는 자료를 꼭 읽어보세요)

올해 사순절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하루에 세가지 감사 제목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록해 놓으면서
삶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감사 제목들이 생길 수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이 그냥 감사할 수도 있고
또 특별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가지 이상을 적으셔도 되지만
40일 동안의 지속해야 하니
하루 중 가장 감사한 일 세 가지씩만 정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이 더 가시면
주보 위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 말씀을 갖고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신 후
짧게라도 경건의 일기를 쓰시는 것입니다.

영적 일기를 쓰면서
삶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신앙 가운데 차분히 앞 길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여정을 글로 남겨놓으면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임했으며
자신의 신앙이 어떤 행보로 성장하고, 변화되었는지 발견합니다.

삶에 주님의 손길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그대로 올려지게 될 것입니다.

3.
사순절 기간 동안
영적 일길를 쓰시는 것은 선택사항이고 (물론 강력히 추천합니다)
하루에 세가지 감사의 제목을 기록하시는 것은
참빛 식구들께 교회에서 드리는 숙제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속회나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에
감사의 제목들과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시면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것 입니다.

하루 세 가지 감사 –
꼭 부탁 드립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19 이-메일 목회서신)

창세기 요셉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눴다면
성경의 첫 번째 말씀인 창세기의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말씀은 독특합니다.
요셉은 성경의 여느 인물들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행동이 사뭇 적습니다.

대신에 요셉에 대한 말씀 속에는
본문의 해설자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난 주에 살핀 열일곱 살 요셉은
자랑하고, 교만해서 우쭐했지만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어진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인으로 빚어집니다.
그의 삶이 곧 예배였고,
그런 요셉과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2.
눈에 띠는 특별한 일을 한 두 번 잘할 수는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작은 일에 충성했다”며 칭찬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오스 기니는 그의 책 <소명>에서 오스월드 챔버스의 글을 인용해서
일상적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발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충동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은 쉽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마른 땅 위를 걷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가기 위해 물 위를 걸었지만 땅 위에서는 멀리 떨어져서 그분을 쫓았다…… 우리는 상당한 긴장에 놀랄 만큼 잘 대처한다. 그러나 매일 24시간 동안 성도답게 사는 것, 제자로서 단조로운 일을 해내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고, 무시된 존재로서 사는 데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평범한 일에서 특별해야 하고, 더러운 거리, 비천한 사람들 중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은 5분 내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14쪽)

또한 2세기 기독교 변증가이자 순교자였던 유스티누스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갈릴리에서 자랐는데 그가 어렸을 때
나사렛 목수 예수님께서 만드신 쟁기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답니다.

오스 기니는
예수님께서 목수시절에 만드신 쟁기와 멍에가 오랫동안
갈릴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그 분이 만드신 쟁기와 멍에가
그렇게 오래 사용될 정도로 탁월한 물건이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314쪽)

3.
힘차게 시작했던 2015년도 어느덧 첫 달이 지나고
두 번째 달도 중순으로 향합니다.
엊그제가 입춘이었다니 시간의 흐름이 실감납니다.

이제 서서히 새해의 결심이 식고
원래의 습관과 타성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늘 특별할 수 없습니다.
기적으로 가득 채워질 수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보다
일상적인 것에서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단조로운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특별한 섭리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그때 일상이 곧 기적이 될 것이고,
요셉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사는 것이
예수님께서 목수시절 만드신 쟁기와 멍에처럼
훗날까지 가치가 있는 것이 되길 바랍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창 39:2-3, 새번역)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he became a successful man, and he was in the house of his Egyptian master.  His master saw that the LORD was with him and that the LORD caused all that he did to succeed in his hands. (Gen 39:2-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5 이-메일 목회서신)

미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거울을 보면
영락없는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거울 속에 들어있습니다.
애써 젊은 표정을 지어보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종종 제 표정이 근엄해 보일 때도 있답니다.
웃음기가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살짝 미소 짓는(smile)연습도 해봅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MSN 홈페이지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미소 지어야 하는 11가지 놀랄만한 이유:
11 surprising reasons we should smile everyday>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 미소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줍니다.
– 미소는 스트레스를 낮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 미소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게 만듭니다.
– 미소는 두뇌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 미소는 생산성을 높여줍니다.
– 미소는 창의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각각의 이유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UCSF연구진은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보다
미소 짓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더 창의적임을 밝혔답니다.

심지어 억지로 웃는 것(fake smile)도
남들에게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좋은 인상을 준다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미소(微笑)의 한자어는
“작을 미”에 “웃을 소”입니다.
<작은 웃음> 그래서 미소입니다.

영어에서 s-mile은
<에스s>발음을 하면 저절로 입이 살짝 열리는데
그렇게 미소 지으면서1 마일을 걷는 격입니다.

2.
성경에 미소라는 말이 쓰인 두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욥기 29장 24절입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그들은 새로운 확신을 얻고,
내가 웃는 얼굴을 하면 그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새번역)
I smiled on them when they had no confidence,
and the light of my face they did not cast down. (Job 29:24 ESV)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이 컸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 그런 시절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욥은 확신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보면
슬며시 미소 지어 주었습니다.
욥이 밝게 웃어주면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못했고 결국 용기를 얻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은 미소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39편 13절의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구합니다.

13절을 히브리어 그대로 읽으면
제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미소 지울 수 있도록
저의 허물에 눈길을 두지 말아 주십시오.
Look away from me, that I may smile again, before I depart and am no more!”
(Psa 39:13 ESV)

세상 일이 허무한 줄 알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치이고, 죄를 지으며 살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허물을 용서해 주시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웃음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13절의 한글성경들은 칠십인역이라는 헬라어 성경을 참고해서
원기를 회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로 번역했네요]

3.
우리가 요즘 살펴보는
요셉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봅니다.

보나마나 요셉은 늘 웃음지으면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스마일 보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물론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서 소망 없이 지낼 때도
요셉은 미소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나중에 이집트 총리가 되는데
그의 미소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들 삶이 어떠하든지
미소를 간직하기 원합니다.

종종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최고의 미소를 올려드리는 겁니다.
“스마일”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앞에서
주님으로 인해서
미소 짓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12 이-메일 목회서신)

룻기속의 사람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 성경 룻기를 읽고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각자 마음대로 행하던 사사시대입니다(삿21:25)
가나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앙적으로 바닥을 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들자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부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남편이 죽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킵니다.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도 죽습니다.

결국 모압 땅에
나오미와 두 명의 모압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에 가뭄이 그쳤다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역이민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때 둘 째 며느리 룻이 따라 나섭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고,
어머니 나라에서 어머니 곁에 묻히겠다는 것입니다.
충성심이 대단합니다. 기특합니다.

2.
나오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나오미와 모압 며느리 룻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면서 조롱합니다.

그때 나오미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기쁨pleasant]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슬픔bitternaess]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룻1:20-21)

처절한 고백입니다.
잘 살겠다고 모압에 갔는데
금의환향은 커녕 최악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가족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합니다.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룻은 생활전선으로 나갑니다.
추수하고 남은 이삭을 주우러 간 것입니다.

그때 룻이 우연히 간 곳이 보아스의 밭입니다.
민첩하다는 이름을 가진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유력인사였고
무엇보다 훌륭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요즘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보아스는 자신이 고용한 일꾼들을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밭에 가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길 원하노라”고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길 원하나이아”(삿2:4)라고 일꾼들이 화답합니다.

마음씨 좋은 보아스의 밭에 간 덕분에
룻은 이삭을 많이 주워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보아스가 나이는 많아도
당시 관습에 따라 홀몸으로 돌아온 룻을 책임질
친족 가운데 한 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아스는 매우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를 만나게 해줄 생각을 합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를 만났지만
나오미는 단지 우연이 아님을 간파하는 믿음의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말대로 룻이 보아스에게 나가고
보아스는 가문의 절차를 밟아서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들에게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태어납니다.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천여 년이 흐른 뒤에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와
모압에서 온 외국인 룻 사이에서 생긴 일입니다.

3.
룻기를 읽다 보면
감정이 동합니다.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 땅에서 겪은 일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고향을 떠나서 타향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더 깊이 공감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룻기 속의 인물들은
강합니다. 따뜻합니다. 성숙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쓰셔서
이스라엘 최고왕 다윗,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뤄주신다는 말씀(롬8:28)이 생각납니다.

신앙이 무너지고,
전쟁과 가뭄, 미움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사사 시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힘을 얻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30:11)
You have turned for me my mourning into dancing;
you have loosed 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gladness, (Psa 30:11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성품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9 이-메일 목회서신)

절제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제가 홈페이지로 쓰는
MSN에 흥미로운 기사가 떴습니다.

뉴 햄프셔에서
초콜릿을 과다 복용한 곰 네 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곰이 죽은 근처에는
사냥꾼들이 미끼로 놓아둔
초콜릿 90파운드와 도넛이 있었답니다.

전문가들은
초콜릿 속에 들어있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라는
물질이 곰에게 독이 되어서 죽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과다복용(overdose)이 문제였습니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지만
저 역시 먹는 대로 체중이 늘어나는 편이기에
밖에서는 많이 먹어도
집에서는 식사량을 엄격히 조절합니다.

그런데 절식이
금식보다 사뭇 어려운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금식하기로 작정 하면
며칠이고 물만 먹고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는 음식을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절식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요.

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끝이 납니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제가 맨 끝에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절제를 위해서
그만큼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균형을 지키면서 정도를 걷고,
매사에 단정하게 행하는 것이 곧 절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자신의 욕심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것,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절제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비굴하지 않은 겸손함이
곧 절제입니다.

올 한 해
매사에 절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너무 지나치지 않길 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음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절제가 힘을 발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Gal 5:22-23 ESV)

하나님 아버지,
그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2 이-메일 목회서신)

기드온의 300 용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 성경 사사기를 읽고,
수요예배에서는

어제부터 요한복음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새해에도
기회가 되는대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강해하는 일에 열심을 내겠습니다.

구약성경의 사사기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바로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부터,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실 때
왼손잡이 예후와 여성 드보라를 세우시는 것도 독특한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르시는데
정작 기드온 자신은 “작은 자”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양털을 갖고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도 유명합니다.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고,
반대로 양털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하는 검증을 거쳐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부르셨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공격한
미디안 군대를 향해서 나갑니다.

성경에서는 미디안 군대가
메뚜기만큼, 그들의 낙타가 해변의 모래만큼 많았다고
과장법을 사용해서 알려줍니다.

기드온도 각 지파에서 군대를 모집했는데
3만2천명이 자원했습니다.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이것을 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이스라엘 자신들의 능력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러라”(7:2)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를 줄일 것을 요청하십니다.

많은 숫자로 싸워서 이기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미디안과 싸울 용사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적군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긴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2만 3천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습니다.

전력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싸우라는 것인지요!

남아 있는1만명 가운데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만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1만명을 물가로 데려가서
1)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마시는 사람과
2)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를 구분해서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1만 명을 데리고 시험을 해보니
손으로 핥아서 물을 마신 사람이 300명,
무릎 꿇고 마신 사람은 9,700명입니다.

수많은 미디안 군사들을 생각했을 때
당연히 9,700명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야겠지요.
그래도 미디안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300명을 택하십니다.
기드온도, 300명의 용사들도 적지 않게 놀랐을 겁니다.
난감했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 군대와 맞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군대 안에 자중지란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선물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 것입니다.

2.
기드온의 300용사
이들은 미리 정해진 정예요원이 아니었습니다.
300명을 선발하겠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적은 숫자이기에 택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셈법과
기드온과 그의 용사들,
심지어 우리들의 생각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5년의 두 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올 한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고
새해 첫 달을 살아갑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365일을 최선의 날들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셈법에
하나님의 방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을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셈법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
친히 일하심,
하나님의 방식을 많이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자랑할 것은 없고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는 탄성이
참빛 교회 식구들 가운데 울려 퍼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Look at me, and do likewise. (Jdg 7:17 ESV)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맞아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그 일을 이루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많이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8 이-메일 목회서신)

네 가지 덕목

좋은 아침입니다.

새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근사한 삶일지 종종 생각합니다.

매사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다면,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면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간다면,
하나님은 물론 사람 앞에서 겸손할 수 있다면,
나만 생각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살지만 순간순간 의와 기쁨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다면
근사한 삶일 것입니다..

지난 주일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님으로 칭찬받았던 두아디라 교회의
네 가지 덕목을 소개했습니다.

사랑, 믿음, 섬김, 인내

교회나 가정과 같은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 각자에게도
위의 네 가지 신앙의 덕목이
튼튼하게 자리잡는다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편하고
세상 어디에 있어도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love아가폐)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지요(요일 4:9-12).
그 사랑을 힘입고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faith)은
늘 말씀드리듯이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입니다(히11:6)

섬김(service)은
신앙이 생각과 말에 그치지 않고
손과 발로 옮겨진 사랑의 실천입니다.
자기를 내어놓는 것이지요.

인내(perseverance)는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
위의 네 가지 덕목을 마음에 품기 원합니다.

올 한 해는 그 무엇보다
내면이 견고하고 풍성한
참빛 교회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2;19)
“‘I know your works, your love and faith and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r latter works exceed the first. (Rev 2:19 ESV)

하나님 아버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주옵소서.
나중이 처음보다 풍성한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5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1.
2015년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입니다.

저는 앞으로 한달 동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네 교회를 설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의 모습을
여러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우리들 각자도
성령의 전(temple)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올 한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
어느 덧 5년이 지났는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아홉 번에 걸쳐서 연속해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눴던 덕목들을 소개합니다.

1)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쓰십니다.
어부, 세무서 직원, 갈릴리 시골 청년들로 구성되었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대표적입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믿고 마음, 생각, 그리고 삶이 변화된 사람을 쓰십니다.
요즘 말로 하나님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변화(transformation)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세상 속에서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쓰십니다.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이거나, 소위 신앙만 좋아도 안됩니다.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빛과 소금으로 살면서 삶 자체가 예배인 사람을 쓰십니다.

4) 감사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자기 마음대로 일이 안된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하나님께서 쓰시기가 힘들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마음껏 두루 사용하실 겁니다.

5)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을 쓰십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온유함이 배려라면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함은 겸손과 순종입니다.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적합한 성품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풍조와 함께 가지 않습니다.
인내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는 하나님 안에서 끝을 보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믿음의 척도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쓰십니다.
충성은 한 가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갖거나, 양다리를 걸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충성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적합한 성품입니다.

8)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힘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쓰실 것입니다.

9)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덕목인데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꿋꿋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을 쓰십니다.

3.
이 밖에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들은 많이 있을 텐데
저는 아홉 가지를 정리해서 설교했었습니다.

어느 것 한가지도 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성품 한가지를 고르라면
저는 <감사>를 꼽겠습니다.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화를 소개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멕시코 관광 여행을 가셨답니다. 한 관광지에 가니 한 샘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고 바로 곁에는 찬물이 나오더랍니다. 이곳의 동네 아낙들이 나와 빨래를 하는데 얼마나 편리합니까. 더운물로 빨고 돌아서서 찬물로 헹구면 됩니다. 목사님은 이것이 전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안내인을 통해서 빨래를 하는 아낙들에게 말을 걸었습니.: “여러분, 이렇게 편리한 샘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겠지요?” 그러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더랍니다: “기왕이면 이 샘에서 비누까지 나오게 만들어 주셨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이제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5년 한 해는 감사하면서 시작하고 끝맺기 원합니다.
하루 하루의 삶에 감사가 넘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교회로/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100:4)
Enter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his courts with praise!
Give thanks to him; bless his name! (Psa 100:4 ESV)

하나님 아버지,
2015년에 우리 교회와
온 성도님들 그리고
목요서신으로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을 마음껏 사용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 설교에서는
로마서 8장을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달 동안 평일에도
로마서 8장을 꼼꼼히 읽고
묵상하시길 부탁 드렸는데 잘 하고 계시겠지요!

가능하면, 영어성경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로마서 8장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28절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 8:28 ESV)

28절 한 구절 속에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구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이 말씀만 마음에 새기고 따라 살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방향입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삶, 인생까지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맡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언약(commitment) 속에서 이뤄집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면,
우리의 상황에 상관없이
믿음의 결단/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2014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과연 올 한 해 동안
하나님께 얼마나 마음을 향했고, 드렸고,
또 하나님과 맺은 언약(약속) 가운데
거했었는 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해 주신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마음에 꼭 담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 8:28 ESV)

2015년 새해에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25 이-메일 목회서신)

머뭇거리지 않기

좋은 아침입니다.

1.
3주 연속 비와 관련된 서신을 보내는군요.
비가 그리웠었나 봅니다.

어제와 오늘 샌프란에 홍수가 났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셀폰으로 경고 메시지가 뜹니다.
근래에 없었던 폭풍우가 북쪽에서부터
밀려온다는 경고입니다.

오늘 하루는 샌프란과 베이지역의 학교들도 문을 닫았습니다.
재팬 타운에는 전기가 나갔습니다.

교회는 수요예배 후에 권사님들께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신 덕분에
약간의 역류만 있었을 뿐 아직까지 괜찮습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도로 곳곳에 물이 차고
운전자들이 쩔쩔 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와서 물 웅덩이가 생긴 곳을 만났을 때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됩니다.

마찰력의 차이로
자동차가 빙그르 돌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오던 속도로
그냥 물 웅덩이를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대신에 비가 올 때는
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모르니
속도를 많이 내면 안되겠지요.

2.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감사한 것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한 해의 여정 이곳 저곳을 돌아보니
로마서 8장 3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꽤 있습니다
“—할 껄”이라는 생각들도 꼬리를 뭅니다.

잠시 상념에 잠겨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망설이며 애를 태울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서
머뭇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숙고(reflection)는
신앙과 삶에 도움이 되지만
머뭇거림은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인생의 물 웅덩이 앞에서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은 채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엑셀레이터를 밟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전 것을 뒤로 하고
아니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서 앞으로 달려나간다고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3-14)
Brothers, I do not consider that I have made it my own.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lies behind and straining forward to what lies ahead, I press on toward the goal for the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Phi 3:13-14 ESV)

12월도 이제 반이 지나갑니다.
주님 안에서 한 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시고
새해 2015년 푯대를 향해서
힘차게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머뭇거리지 않고
푯대를 향해서 달려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11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