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와 숨표

좋은 아침입니다.

1.

2007년 8월,
한국일보 종교란에 실었던 컬럼입니다.
어느덧 그 이후로 5년이 지났고,
2012년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신 없이 달려온 올 한 해였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그 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표와 숨표

저는 노래를 부를 때 박자를 잘 못 맞춥니다. 쉽게 말해서 “박자 치’인 셈입니다. 한번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웅장한 음악과 감미로운 선율도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심벌즈 연주자의 동작에 제 눈이 고정되었습니다. 저처럼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에게는 한 참을 쉬고 있다가 이따금씩 박자에 맞춰서 심벌즈를 울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저는 찬양을 하면서 손뼉을 쳐도 조금만 지나면 옆에 분들과 박자가 맞지 않아서 어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바로 쉼표 때문입니다. 음정은 비교적 잘 잡습니다. 음표의 길이도 적당히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쉼표가 나오면 속수무책입니다. 속으로 ‘하나, 둘’을 세어도 번번이 들어가는 박자를 놓칩니다. 못 갖춘 마디로 시작하면 여지없이 두 번째 가사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노래하다가 쉼표가 나오면 편안히 쉬지 못하고, 피아노 반주자나 옆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노래에서 쉼표뿐만 아니라 숨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숨표에 따라서 숨을 쉬어야 노래의 가사가 제대로 전달된답니다. 합창을 할 때는 함께 숨을 쉬어야지, 숨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숨을 쉬면 다른 사람과 호흡이 맞지 않습니다. 그때도 호흡이 짧은 저는 틈틈이 숨을 쉽니다. 그러다 보면 박자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음악뿐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쉼표와 숨표”를 지켜야 합니다. 쉴 때 쉬지 않으면 나중에 피곤이 몰려와서 집중력을 잃기 쉽습니다. 인생길의 쉼표를 지키지 않고 일만하다가 중한 병에 걸리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숨쉴 틈도 없이 바쁘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심호흡을 하고 나면 마음이 상쾌해 집니다. 숨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산다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함으로 “쉼”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의 “안식”은 세상일의 중단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집안의 종들까지 일손을 멈춰야 합니다. 세상일을 접고 온전히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에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곱째 되는 날은 세상일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모드 전환입니다.

현대인들이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루를 쉰다고 해도 그 동안 밀린 일들을 해야 합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이민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직장과 사업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쫓겨서 살아갑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쉬는 법을 터득할 만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이제부터 조금 쉬어갑시다. 인생의 쉼표와 숨표를 지키면서 살아봅시다. 하루를 온전히 쉬지 못한다면, 일주일에 단 몇 시간 또는 몇 분이라도 세상 일을 내려놓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하늘나라의 삶을 연습해 봅시다. 그래야 인생의 엇박자를 막을 수 있습니다.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07.8.23)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늘 바쁜 일로 쫓기며 살지만
주님 안에서
쉼표와 숨표를 지키는 여유를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1.1 이-메일 목회서신)

스윙 스테이트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대통령 선거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통령 후보 토론도 끝이 나고
이제는 두 대통령 후보가
막판 선거유세에 한창입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누가 대통령에 선출될 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박빙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 때마다
주목을 받는 곳이
바로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고 불리는
오하이오입니다.

오하이오에서 누가 이기는가에
따라서 선거의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역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오하이오에서 지고
대통령이 된 경우가 한번도 없답니다.
민주당도 지난 70년 동안
오하이오에서 패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경우는
케네디 한 명뿐이라니 오하이오가 주목을 받을 만 합니다.

이것은 오하이오가
미국의 축소판처럼 미국인들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인구 분포를 갖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도
오하이오가 스윙 스테이트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낼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2.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주)

–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 가운데도 경합을 이루는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있어서
신앙의 승패를 가늠하는
어떤 영역, 생각, 행동 등등입니다.
(예; 큐티, 골방기도, 예배참석, 새벽기도, 전도, 사랑 베풀기 등)

여기서 무너지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서
이름도 바뀌고, 바벨론 문화도 습득하면서 지냈지만
한 가지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왕의 산해진미를 먹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방 신전에 제물로 드려진 부정한 음식들이
자신의 몸을 더럽힌다고 믿었습니다.

뜻을 정해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많은 삶 가운데
먹거리만은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합지역!

하나님의 생각과 세상의 생각이 경합을 벌이는 영역입니다.
여기서 신앙을 양보하거나/무너지면
큰 일입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오하이오에서 지는 것은 양보할 수 없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라면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저의 경우는
아침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시간(경건의 시간)입니다.

큐티 시간이 무너지면
제 삶 전체가 흩으러 짐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큐티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애를 씁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신앙과 세상이 경합을 벌이는 영역,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 경합지역에서 승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루 하루 주어진 신앙과 삶의 경주를

근사하게 마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홧팅!!!

하나님 아버지
신앙의 경합 지역,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갈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택하고,
신앙의 경합지역에서
멋지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0.25 이-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놓고 많이 고민하고 또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Ecclesia)”고 하는데
이것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첫 번째로 편지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사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1;2)
To the church of God that is in Corinth, to those sanctified in Christ Jesus, called to be saints together with all those who in every place call upo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both their Lord and ours;

성도들을 영어 그대로 직역하면 “성자들(saints)”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티와 주름(spots and wrinkles)이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었지만
죄성(sinful nature)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유리그릇처럼 불안할 때도 꽤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애지중지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먼저 살피고
다른 성도들을 배려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2.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the church of God, which he obtained with his own blood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라는 말씀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값을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교회 앞에서 잠잠해야 하고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 뜻에 맞도록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교회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본질과 본뜻도 와전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를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원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3)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

하나님 아버지
각처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이
거룩하고 온전히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0.18 이-메일 목회서신)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다음(Daum)을 비롯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일제히 미국의 기독교 인구가 50% 밑으로 떨어졌다는
퓨 포럼(Pew Forum)의 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48%로 집계된 기독교 인구로 보아서
미국이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48%도 많은 편입니다.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응답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했을테니까요.

지난 수요예배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그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말씀과 기도, 그리고 정기적인 예배 참석 등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적은 숫자일 것입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가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현저하게 떨어질 것입니다.
기독교 인구 자체가 10대와 20대로 내려가면
20% 밑으로 내려 갈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독교 인구는 물론
기독교의 영향력이 적어 지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것을 부탁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짧은 질문 속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뉘앙스가 깔려있습니다.

설마 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2.
동시에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점검하고
신앙의 허리띠를 졸라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종종 기독교는 종교를 넘어서
생명(生命,life)이라고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우리 안에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굳건히 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느끼고
고백하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긴밀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는
– 하나님을 기다리고/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이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의 눈이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실 때
참빛 교회 성도님들의 신실하심에 멈추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우리를 통해서 믿음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참빛 교회 성도님들의 신앙의 끈이
더욱 견고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많이 변하고
하나님을 멀리해도
저희들은 하나님을 붙잡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0.11 이-메일 목회서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날짜를 살펴보니
한달 이상 목요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숨을 돌리고
다시 일어서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목요서신을 보냅니다.^^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을 모두 끝내고
신약성경의 첫번째인 마태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했던 마태복음 8장에는
자신의 하인이 중풍으로 쓰러져서 괴로워하는 것을 본
백부장 (백 명의 신하를 둔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이 나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던 백부장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하인이 큰 병이 들어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곧바로 말씀하시지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 8:8)
I will go and heal him.

백부장은 자신의 경우를 예를 들면서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아도
말씀(명령)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8:10)
예수님의 극찬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마 8:13)
그 즉시 하인의 병이 나았다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2.
백부장의 믿음,
그는 하인의 병이 꼭 나을 것이라는 마인드콘트롤과 같은 믿음보다
하인의 병을 낫게 하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무엇이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보다
그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임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응답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이 말씀이 마음 속에 크게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삶, 가정, 학교와 일터,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오셔서
고쳐주시길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르고
백부장처럼 이미 그 능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아프고 고장 난 부분을 고쳐주실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오셔서 고쳐주옵소서.
오셔서 만져주옵소서.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자녀들을 책임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0.4 이-메일 목회서신)

바쁨

좋은 아침입니다.

1.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가운데
시간과 관련된 대표적인 것이
아마 바쁘다빨리빨리일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 동안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빨리빨리 정신이 한몫을 톡톡히 했을 겁니다.

미국생활도 바쁘기는 똑같습니다.
아니 미국 시계가 더 빨리간다는 말이 있듯이
한 주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 역시 바쁘게 살아갑니다.
시간에 쫓기고
늘 급한 일에 허덕거립니다.

2.
2천년 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바쁘게 사셨습니다.
30년을 목수의 아들, 평범한 나사렛 청년으로 사셨고
나머지 3년동안만 공생애(public life)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약 10%를 사역하신 셈입니다.
그러니 그 3년이 얼마나 바쁘셨겠습니까?
그렇게 사셨기에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는
다 이루었다”(19:30)고 선포하실 수 있으셨겠지요!

이쯤되면 예수님이야말로
시간관리의 달인이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몇가지 힌트(clues)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아무래도 해이해집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셨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시도 소홀히 허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꼭 성취해야 할 사명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하시려는 사명,
죄인들을 구하시려는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3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갖고 계셨습니다.
3년 동안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가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등
메시야로서의 삶을 사셔야했습니다.
자신의 때를 알고 계셨기에 그 때에 맞춰서 3년의 시간을
최대로 사셨습니다.

3.
매일같이 바쁜 일로 쫓기는 우리들도
예수님의 시간관리 원칙을 배우기 원합니다.

매사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일보다 주신 사명을 따라
우선순위를 매겨서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들도 제한된 시간을 삽니다.
그렇다면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어느덧 8월도 하순으로 접어듭니다.
올 한해도 3분의 2가 지나가는 셈입니다.
하루 하루
후회없이 살아갑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삽시다.

시간에 쫓기기보다
시간을 통제할 지혜를 구합시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안에서 순간순간 감사와 기쁨을 꼭 맛보기 원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전도서 3 12)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men than to be happy and do good while they live.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게 하옵소서.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지혜를 주시고
때때로 하나님 안에서 영적 심호흡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8.16 메일 목회서신)

신앙의 경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올림픽에 대한 단상이네요.

올림픽에 나오는 선수들의
똑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올림픽을 위해서 4년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반복되는 훈련을 했다는 점입니다.

엊그제 체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묘기를 발굴해서
그것을 완벽하게 연기함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공중에서 서너 바퀴를 도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묘기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말 그대로
밥 먹고 그것만 연습했을 것 같습니다.

한 레슬링 선수는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 올랐습니다.
그래도 그 선수는 끝까지 선전해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보다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룬 성과는
훈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훈련이 매우 지루하고, 포기하고 싶고,
때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할 정도로
회의가 찾아 왔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끝까지 참아가면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설령 메달을 따지 못해도
이런 훈련의 과정을 거친 모든 선수들은
챔피언들임에 틀림없습니다.

2.
어떤 면에서
신앙 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거듭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하늘나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경주이기에
우리들이야 말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훈련의 과목들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배입니다.
거기에 이웃사랑이 덧붙여지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자신 안에 내면화시켜야 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고,
삶 속에서 순간순간 기도하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산제사가 되도록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훈련도 빠져서는 안됩니다.

솔직히 아주 재미있는 훈련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배를 통한 훈련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맞을 준비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꿋꿋하게 신앙을 훈련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45:18)
The LORD is near to all who call on him, to all who call on him in truth.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지루하고,
대충 넘어가고 싶어져도
핑계 대거나 게을러지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훈련에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8.8 메일 목회서신)

귀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런던 올림픽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미국에 있어서 올림픽을 생중계로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스포츠 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영국과 미국의 시차는 물론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다 보니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상황을 수시로 살펴봅니다.

올림픽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상업화되었다고 해도
4년 마다 지구촌 전체가 올림픽 열기에 빠져드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2.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귀감이 되는 일화들이 전파를 탑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네이버 뉴스에
한국의 유도선수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유도선수로는 환갑이 넘었을
서른 다섯의 나이에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올림픽에 참석했습니다.

16강 전에서 경기를 하다가
이마가 찢어 졌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붕대로 감고 경기에 임해서 승리를 거둡니다.

8강전에서는 손톱이 부러졌습니다.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3-4위 전에서 패배해서
결국 메달을 얻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습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웃으면서 생애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무리했답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많은 언론이 이 선수를 주목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메달 리스트 이상의 귀감이 된 것입니다.

3.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값진 일입니다.

그렇다고 꼭 금메달을 따고
일등을 해야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고
급기야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무릎을 그에게 꿇게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 2:10)

물론 우리 같은 범인들이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을 닮으면 귀감이 되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사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마음과 삶이 예수님을 닮기를 애쓰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Let the same mind be in you that was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서
세상 속에서
귀감이 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8.1 메일 목회서신)

잊지 않으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동네 근처를 운전하고 가다가
한 아파트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Best Senior Apartment for 55+”
–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한 최고의 아파트랍니다.

아내가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5년만 있으면 되네…”

생각해 보니 5년만 있으면 저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치솟는 아파트 렌트비를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로 값이 싼지는 모름)
왠지 순간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 집니다.

뭐 우리 교회 어르신들 앞에서야
제 나이를 꺼낼 수도 없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염려되는 것이
약간의 건망증이 가미된 심각한 망각증세입니다.

약속 같은 것들을 메모해 놓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책을 읽고 났는데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독서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한 가지만 잊어 버리지 않으면 되겠지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붙잡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우리들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고, 덜렁대고, 실수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어르신들이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답니다.

누가복음 12 6절에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 하는도다.
Are not five sparrows sold for two cents?
Yet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페니에 팔리는 참새 두 마리 가운데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우리를 잊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까지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언제나 거기에 계십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루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새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억해 주실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26 메일 목회서신)

분복 (分福)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아모스 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풍요입니다.
6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리로다.
Woe to you who are complacent in Zion,
And to you who feel secure on Mount Samaria,
you notable men of the foremost nation.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이 통치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부의 격차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속여서 부를 챙겼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그것을 비판합니다.
재물로 인해서 마음이 든든해 지니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쫓았습니다 ( 6:4-6)

2.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는 지나친 부유함을 경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 (daily bread)를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를 연상케 합니다.

만나는
안식일 전날을 제외하면
하루 분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하루 분 이상을 거두면
어김없이 썩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하루 분 만나만 가져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불안했을 것입니다.
다음 날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3.
때때로 우리들도 더 많은 소유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창고에 쌓아놓고
안일하게, 마음 편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그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일용할 양식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만나를
하루 분 음식이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만나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신앙 안에서 적정수준입니다.
많아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적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지 않는
알맞은 수준이 곧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것을 두고 잠언 30 7-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Two things I ask of you, O Lord,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전도서 3 13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갑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That everyone may eat and drinks, and final satisfaction I all his toil
– this is the gift of God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分福, portion)에 만족하고
누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확실히 의지하기 원합니다.
주신 복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9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