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 (8): 승리자 다윗
사무엘상 17 (8): 승리자 다윗
사무엘상 (7): 물맷돌 다섯 개
교회를 처음 방문하신 분들이 교회에 정착하는데 첫 번째 인상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심지어 처음 10분 동안 갖게 된 느낌이 교회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마음이 느껴지면 저절로 발길이 머물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임원회에서 교회의 사역을 의논하면서, 우리 교회에 방문하시는 발걸음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전도하는 편이 아닌데도 교회를 찾아주시니 더욱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회에 마음을 두고 등록하기까지 강권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처음 오신 분들께 무심하게 보일 수가 있다는 지적이 임원회에서 있었습니다.
크게 강요하지 않더라도 따뜻하게 맞이하고 예배 중에 인사하는 시간이나 친교 시간에 친절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방문하시고 새로 참빛 식구들이 되신 분들께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진심으로 환영하기 원합니다. 조그만 관심과 친절이 감동을 주고 처음 오신 분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환영팀이라는 마음으로 새로 오신 분들을 안내하고 환대하기 원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는 일곱째 시간입니다. 드디어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싸우러 나갑니다. 사울이 입혀주었던 군복과 갑옷 그리고 놋 투구와 칼은 다윗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일상복을 그대로 입었습니다. 양을 지킬 때 사용하던 방식대로 시냇가에 가서 물 맷돌 다섯 개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을 향해서 나갑니다.
분명히 다윗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물 맷돌 다섯 개를 골랐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골리앗을 맞춰서 쓰러뜨려야 합니다. 골리앗이 워낙 커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물 맷돌로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음을 누구보다 다윗이 잘 압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은 철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 즉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다윗 자신도 무척 긴장했을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길이지만 골리앗은 강합니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건져 주실 것을 믿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골리앗에게 나갑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갑니다. 전쟁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믿고 나가는 다윗의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할렐루야!-河-
“자기 멋대로”라는 말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웬만한 유혹이나 세상 풍습에 흔들리지 않고 줏대 있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예의가 없는 모습입니다. 후자라면 문제가 있지만, 주관과 소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박수를 보낼 만합니다. “멋”이라는 말이 주는 여유도 느껴집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배웠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좋은 의미에서 나름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자기 정체성, 같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공동체의 삶, 세상 속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선을 행하고 약한 자를 돌보는 선교적 삶까지 독특하고 멋있는 생활방식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멋”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자주 오는 것보다,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둘째로, 교회 사역을 놓고 강권하거나 꼭 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지 않아서 소외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손길이 부족하면 자원하시는 분이 생길 때까지 뒤로 미루거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그냥 넘어갑니다. 셋째는, 자원하며 섬기는 손길로 교회가 세워지길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새로운 사역을 제안해서 주도권을 갖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갖고 있는 은사를 알려주시면 교회를 세우는데 잘 활용하도록 돕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더 하나님 마음에 맞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다윗과 골리앗의 말씀에서 다윗이 사울 앞에 가서 양을 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도록 허락하면서,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까지 입혔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옷이 다윗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추장스러웠습니다. 다윗은 갑옷을 벗고 일상복 차림으로 골리앗과 싸우러 나갑니다. 역시 다윗은 일상에 강했습니다. 양을 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모습 그대로 골리앗을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했던 방식대로 각자의 골리앗을 마주합니다.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河-
사무엘상 17장 (6): 하나님 방식으로
사무엘상 17장 (5): 일상속의 체험
처음이 좋아도 끝이 흐지부지하면 그동안의 모든 과정이 수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에서 신앙을 달리기에 비유하는 것도 중간에 열심히 달려서 마지막 결승점에 도착하지 않으면 상을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은 그만두고 결승점을 통과해야 기록이 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은 키가 보통 사람보다 어깨만큼 컸던 그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했습니다. 왕으로 제비 뽑히자 그의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레바퀴 뒤에 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후에 자리가 잡히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했습니다. 아말렉을 칠 때,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좋은 것을 숨겨놓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생각이었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사소한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았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사울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그를 기름 부었던 사무엘 선지자는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왕은 다윗입니다. 그 다윗이 지금 전쟁터에 온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40일 동안 골리앗을 향해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출동과 후퇴만 반복하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해서도 분노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 불려갑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을 본 사울 역시 그가 골리앗을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골리앗과 맞서 싸울 사람이 없으니 다윗을 예사롭게 넘길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을 칠 때 경험했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사자와 곰을 쳐서 이겼으니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도 쉽게 이길 것이랍니다. 짐승들로부터 자신의 양을 구한 것처럼 골리앗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다윗이 다시 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을 언급합니다(36절).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골리앗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이 있었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지만 그 경험을 골리앗과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체험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졌고 골리앗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윗을 통해서 배웁니다.-河-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씀이 흥미진진하기에 말씀 속에 쉽게 빠져들고 자기도 모르게 다윗이 되어서 앞에 마주 선 골리앗을 대항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골리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우리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두려움”과 “주춤거림”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두려움은 골리앗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로부터 찾아옵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골리앗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폭풍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뢰라고 했습니다. 삶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안팎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으로 크고 작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골리앗으로부터 생긴 것이라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주춤거림은 우리 스스로 불러온 문제입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나타나서 겁을 주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역시 전쟁터에 나갔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할 뿐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 상황에 길들여졌습니다. 서로 미루며 합리화하고, 방심하면서 주춤거리는 것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골리앗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골리앗이 우리 앞을 막더라도 당연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분노”입니다.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윗에게 골리앗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삼상17:26)에 불과합니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노하는 다윗을 본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양이나 치라는 식입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분노해야 할 형들은 다윗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릇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백성을 무시하는 골리앗 앞에서 형들은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처럼 분노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엘라 골짜기의 판세를 바꿔 놓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갖고 있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분노였고 용기였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의 형들이 보여준 그릇된 분노가 아니라, 다윗이 갖고 있던 의로운 분노로 세상과 삶을 변화시키고 주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河-
사무엘상 17장 (4): 분노
사무엘상 17장 (3): 골리앗 앞에서 – 주춤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