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마음속에

촛불 세 개 밝히고

대강절(Advent) 셋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교회사에서

첫 번째 절기이니,

우리는 새해를 한 달 먼저 맞은 셈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매 주간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립니다.

어두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2.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계속되고

헤롯왕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 싸움을 일삼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신적으로(신앙적으로) 피폐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다윗의 자손 메시아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는 물론 악한 세력들을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 왕국을 새로 건설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3.

그때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특별했기에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못된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까지 실망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완전히 신령한 몸(부활체)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로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까지 경험한 제자들은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서

목숨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4.

종종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조의 재건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로마를 무너뜨리는 대신 도리어 그들의 손에 죽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다윗 왕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아침에 읽는 에베소서 말씀에 있듯이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계획, 뜻)이었습니다.

그 경륜을 깨닫고, 믿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계속되고

행여나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현실이 펼쳐져도

하나님의 경륜을 믿고 그 안에서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말입니다.

 

기다림에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끝은 결국 해피 엔딩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되시고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 8:28)

 

하나님 아버지,

기다림의 여정을 걷는

참빛 식구들이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19 이-메일 목회 서신)

 

 

한 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1.

2019년이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해여서인지

올 한해는 유독 빠르게 지났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운 일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들이 흐지부지 되었거나,

나름 열심히 준비한 일들에 열매가 없을 때 찾아오는 아쉬움입니다.

 

감사한 일도 있습니다.

연초에 참빛 식구들께서 주신 기도 제목을 읽고 있으니

바라던 것들이 이뤄진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들 인생의 고삐를 잡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서 감사하고,

가족들, 교회 식구들 그리고 친지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힘든 일도 마주쳤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것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함께 한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감사하기 원합니다.

 

2.

한 해를 보름여 남겨둔 지금,

“한 가지”를 정해서 그것을 착실하게 실천하면 어떨까요?

 

저도 한 가지를 선택하려니

욕심이 발동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성경 통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그동안 마음 먹었던 책 몇 권 읽기,

기도 시간을 조금 늘려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요즘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람들 사이에 벽이 높아지고 있는데 세상의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기,

한 해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던 친지들에게 성탄 인사하기,

도움이 필요한 이웃 찾아가기, 등등

 

3.

새해에 여러 가지 일을 계획했다면,

보름 남은 연말에는 꼭 하고 싶거나, 중요한 일

“한 가지”만 정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참빛 식구들께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보여주시고,

이뤄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편119:49)

Remember your word to your servant, in which you have made me hope.(Ps 119:4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마음먹은

“한 가지”를 꼭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12 이-메일 목회 서신)

 

 

 

 

 

 

수요예배에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는

샌프란에 사는 어르신들께서 주로 참석하십니다.

 

조촐한 모임이지만,

매 주일 성경을 한 장씩 읽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창세기 50장을 완독했습니다.

작년에는 예레미야 52장을 독파할 정도로 끈기 있는 모임입니다.

 

이제 신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남았습니다.

구약은 아직 읽을 부분이 많지만,

열두 권의 소예언서, 잠언, 전도서, 예레미야, 창세기를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구약 성경이 지루하고 어렵기에

신약과 구약을 번갈아 읽어갈 계획입니다.

 

목요서신에

수요예배 교재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여도

교재를 참고해서 성경 본문을 함께 읽어 가시길 부탁드립니다.

 

2.

지난 모임부터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세리 출신인

마태(혹은 레위)가 기록한 말씀으로 매우 꼼꼼하게 구약을 인용하고

1장의 족보에서 알 수 있듯이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1:1)로 소개합니다.

이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한가운데 다윗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다윗 왕조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까지

14대씩 3 기간으로 족보를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14대는 완전수 일곱(7)의 두 배이니

완벽함을 뜻하고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의 라합, 모압 여성 룻,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이자 훗날 다윗의 아내가 된 밧세바입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특별합니다.

그것도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여성들입니다.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갖게 되는데

행여나 그것을 책잡을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흠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족보에 들어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리아를 빼고 나머지 다섯 명의 여성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민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3.

구약성경이 말라기에서 끝납니다.

400년의 공백을 끊고 등장한 마태복음은

구약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신약성경 맨 앞에 위치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입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 하셔도

첨부한 교재와 교회 안내 데스크에 마련된 복사본을 참고하셔서

함께 마태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고 있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마태복음 1-2장이 더욱 뜻깊습니다.

 

말씀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시고, 새해를 계획하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2)

All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the Lord had spoken by the prophet. (Matthew 1:22)

 

하나님 아버지,

수요 예배는 물론 참빛 식구들 안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5 이-메일 목회 서신)

잠시 쉬어 가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최고의 명절입니다.

미국에 가족이 계신 분들은

거리 불문하고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의 추석 명절에 버금가는 휴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곧바로 연말 모드로 전환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간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사셨습니다.

 

일상(ordinary life)이라고 쓰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특별했고 치열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날들도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은혜로 한 해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 기도만 들어주지 않으실까,

나를 미워하시나, 하나님 믿지 않아도 다 잘 될 아니었나”하는

믿음 없는 생각이 들 때도 솔직히 있었는데,

감사의 절기를 맞아서 한 해를 돌아보니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 믿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즈음입니다.

 

2.

열심히 사신 참빛 식구들이시니

추수감사절 주간을 맞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셔도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쉼은 어때야 할까요?

 

1) 여유를 갖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한해를 돌아보고 이른 감이 있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한 책 (예: 마태복음, 빌립보서 등)을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2) 그동안 못했던 독서, 비디오 시청(영화 등), 운동, 만남을 갖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매일 기도하고 말씀만 읽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이고 (ㅎㅎ)

바쁘게 사느라 소홀했던 일, 꼭 하고 싶었던 일이나 사람을 챙기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창조하신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처럼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집안에만 있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4) 가족과 소홀했다면, 진하게 패밀리 타임을 갖습니다.

잠시 일을 내려놓고 가족과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그냥 멍하니 편안하게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말하면

침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는 시간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에 감사하고

한해 동안 함께 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사하고

바쁜 일상이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절로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Grace to you and peace. (1Thessalonians 1:1)

 

Happy Thanksgiving!!!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잠시 삶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쉼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28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의 증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와

아침마다 나누는 요한 계시록에는

신앙에 올인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신앙의 터를 잡았습니다.

믿음에 역사(행함), 사랑에 수고, 소망에 인내를 더한

그들의 신앙을 본 바울은 더 할 말이 없다고 감격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닥친 어려움을 기쁨으로 이겼습니다.

핍박과 어려움을 능가하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눈 요한 계시록 말씀에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담대히 고백하고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은 성도들입니다.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는 “순교”라는 뜻도 있으니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2.

데살로니가는 당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천혜의 항구요 무역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방

그것도 시골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상에서 누리는 혜택은 별로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서

가족 또는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고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심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3.

과연 우리가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었다면

로마 황제 숭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예”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출세하거나

마음과 몸이 건강해지는 형통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도리어 어려움이 찾아오고, 손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목숨을 걸고 신앙의 길을 갔을까요?

 

 

예수 안에서 “생명”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 것과 바꿀 수 없는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믿었기에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의 길을 갔을 것입니다.

 

 

4.

우리들 각자의 신앙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참빛 식구들 안에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살전 1:5)

Because our gospel came to you not only in word,

but also in power and in the Holy Spirit and with full conviction.(1Thes 1:5)

 

하나님 아버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21 이-메일 목회 서신)

요한 계시록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나누는 아침 메시지는 요한 계시록입니다.

12월까지 계시록 22장을 모두 읽게 될 것입니다.

 

지난달 레위기에 이어서

계시록 말씀을 읽으려니 버겁습니다.

 

레위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삶의 기준, 방식,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하라는 요청입니다.

 

남쪽에 이집트, 북쪽에 바벨론과 앗시리아,

주변의 크고 작은 민족들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잊지 말고

거룩한 백성, 거룩한 민족으로 우뚝 서라는 부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요청을 무시하고

가나안 땅의 우상과 관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거룩함을 상실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했고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소아시아에 세워진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신앙의 길이 어려웠습니다.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언제까지 어둠이 계속될지,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기다릴 뿐입니다.

 

특히, 악이 판을 칩니다.

신앙을 갖고 있지만 무력해질 때도 많고

하나님은 두 손을 놓고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중해 한가운데 밧모섬에 귀향 간

사도 요한을 통해서 교회에 주신 말씀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3.

요한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생길지

여러가지 상징(시청각) 언어로 기록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두고 이론이 분분합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생길지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다고 너도나도 주장합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은

소아시아에 흩어진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계시록의 핵심 메시지가

(마지막 심판과 구원, 다시 오실 예수님과 완성될 하나님 나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읽는 계시록 말씀이

먼 훗날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신앙과 삶을 뒤흔드는(impact) 주의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aloud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and who keep what is written in it, for the time is near. (Rev 1:3)

 

하나님 아버지

계시록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을 마지막 시점에서 점검하고 조정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14 이-메일 목회 서신)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 준 이웃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낱낱이 세면서

우리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원합니다.

 

동시에

함께 울고 함께 웃어준 이웃들,

무엇보다 가족들, 교회 식구들, 동료와 친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섭섭하고 아쉬운 것들은

쉽게 기억하는데

받은 은혜와 사랑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이웃에게 받은 사랑을

찾아서 세어 보기 원합니다.

 

2.

우리의 감사가

가까운 이웃을 넘어서 더 멀리 퍼져 나가면 좋겠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세상을 지키는 분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는 분들 등등

– 감사의 지경이 넓어지기 원합니다.

 

올해도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산불을 제압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소방관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소노마 카운티에서 난

킨케이드 산불 (Kincade Fire, Kincade st에서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은

7만여 에이커를 태웠고, 강풍과 더불어 열흘 넘게 계속 되었습니다.

그 현장에 수많은 소방관이 투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독도에 환자를 실으러 갔던 소방 헬기가 추락해서

탑승한 사람들이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악천후를 무릎 쓰고 환자를 살리려던 소방관들의 희생정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소방관들은

의레 불을 끄고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아내, 자식, 형제자매,

자나 깨나 걱정하시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그들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입니다.

 

독도 헬기 사고의 부기장 아버지는

소아 마비 장애인으로 목발을 짚고 생활하시는 분입니다.

공군에서 11년을 근무하고 다시 소방관이 된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는데

몇 년 전 병으로 잃은 둘째에 이어 이번에 첫째 아들까지 잃었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기만을 기도하면서 강원도에서 대구로 내려온

아버지의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메었습니다.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많은 분 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산불을 끄고

위급한 목숨을 구하는 소방관들께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의미부터

모든 상황과 모든 분께 감사하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갔던 이웃들, 사람들, 상황을 포착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Let u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thanksgiving;

let us make a joyful noise to him with songs of praise! (Psalms 95:2)

 

하나님 아버지

감사가 넘치는 11월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7 이-메일 목회 서신)

 

 

 

 

10월의 마지막 날에

좋은 아침입니다.

 

1.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할로윈 데이네요.

언제부터인지 할로윈 데이가

꽤 유행해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인사합니다.

 

시장에 가니

할로윈 데이 호박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대목을 기대하면서 한 해 농사를 지은 분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뜸한 것 같은데 교회에서는

할로윈 데이 대신에 할렐루야 나이트를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세상과 대항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자칫 아이들에게

세상에 적대적인(against culture)사고방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물론 할로윈 데이를 문화적인 행사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으로 중심은 잡고 가야 합니다.

세상을 대적하지 않지만, 세상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도, 단순하게 해답을 찾을 일이 아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고민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면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부탁드립니다.

 

2.

마틴 루터가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개신교의 생일인 셈입니다.

 

면죄부를 파는 등 당시 가톨릭의 그릇된 관행에 대한

마틴 루터의 저항이었습니다.

루터뿐 아니라 스위스의 쯔빙글리, 제네바의 칼빈까지

종교개혁 정신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제자리에 있으면 순식간에 뒤처집니다.

교회가 재물과 권력을 탐하면

길에 버린 소금처럼 맛을 잃고 사람들의 발에 밟힐 것입니다.

 

어쩌면 요즘 교회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감격하지 않고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개혁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3.

뜬금없을 수 있는데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한국에서 대목을 보는 가요가 있습니다.

 

<잊혀진 계절>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기고 연인과 헤어졌습니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행여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는 가사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의 신앙은 물론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꿈을 꿉니다.

매년 같은 꿈을 꾸면서 그날을 맞는데

때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인 것 같아서 슬픕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4.

10월의 마지막 날을

멋진 날로 만들어 봅시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곳을 과감히 손보고

그분을 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Paul, Silvanus, and Timothy,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Grace to you and peace. (1Thessalonians 1:1)

 

하나님 아버지

깔끔하게 10월을 마무리하고

11월 새달을 맞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31 이-메일 목회 서신)

브엘세바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이-메일 서신에서는

조금 앞서가서 야곱과 요셉의 만남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은 뒤로 돌아가서 야곱이 브엘세바에 잠시 머무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브엘세바는 “일곱 개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셰바”에 숫자 7과 맹세라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터를 잡고

야곱도 이곳에서 자랐을 테니 고향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고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향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이

원주민의 왕인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은 곳이 브엘세바입니다.

수양버들과 같은 에셀나무(옮겨 심고 가꿔야 하는 나무라고 식물에 대한 설교에서 배웠음)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 역시 아비멜렉과 그의 부하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우물만 파면 그들이 와서 차지했습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있던 브엘세바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어서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고 브엘세바에 머물렀습니다.

 

2.

브엘세바는 야곱이 살던 헤브론에서 남쪽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던 야곱이

브엘세바에 들려서 밤을 지냅니다.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가족 초청 이민으로 이집트로 가는 중이지만,

야곱의 마음은 무척 착잡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내려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정도로 혼이 났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 자신이

가족을 모두 데리고 그 이집트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조국을 떠나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야곱의 마음이 십분 이해됩니다.

 

3.

야곱도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처럼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했겠지요. 주님의 뜻도 물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130세가 되었으니 젊었을 때 야곱이 아닙니다.

벧엘에서 돌 베개를 하룻밤을 보냈던 것이나,

얍복 강가의 씨름도 이제 불가능합니다.

힘이 다 빠졌습니다. 민첩함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할 뿐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창 46:3-4)

 

이집트로 향하는 야곱에게 꼭 맞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가겠고 (창46:4)

I myself to down with you to Egypt (Gen 46:4)

는 말씀이 야곱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만 내려가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기다리시는 것도 아니고

야곱에게 내려가지 말라고 말리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 가시겠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일행을 이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야곱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4.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헷갈리고 불안합니다.

 

그때, 야곱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도 듣기 원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가겠고 (창46:4)

I myself to down with you to Egypt (Gen 46:4)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주어진 인생길을 담대하게 걸어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24 이-메일 목회 서신)

 

 

수요예배에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를 1년 가까이 읽고 있습니다.

어제 46장까지 읽었으니 앞으로 한 달이면 창세기를 마칩니다.

 

창세기 요셉에 대한 말씀은

 

1) 창세기 전체에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극심한 가뭄에도 요셉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셔서

아브라함 후손의 생존을 보호하셨음을 알려줍니다.

 

2) 이어지는 출애굽기와 연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게 된 경위를 알려줍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에 관한 말씀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잇는 다리입니다.

 

3) 요셉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국 이집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성을 제시하고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2.

그동안 주일예배에서 살펴보았던

탕자의 비유는 집을 나갔던 아들을 아버지가 맞아주는 말씀이었는데,

요셉에 관한 말씀은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아버지와 가족을

요셉(아들)이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탕자의 비유와 요셉의 말씀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모두 없앤 둘째 아들을 용서했고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요셉은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안고 입을 맞추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초청으로 이집트에 온 아버지 야곱을 만났을 때

요셉은 아버지와 목을 어긋 맞추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허랑방탕 모든 재산을 없앤 실패자 둘째 아들이나

이집트에 팔려와서 소위 성공한 요셉이나

아버지 품에 안겨서 울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품이 그렇게 좋습니다.

잘못해서 돌아온 탕자나

최고의 인생을 사는 요셉이나 똑같이 아버지 품이 필요했습니다.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 수 있다면 행복한 아들입니다.

 

3.

우리도 살면서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흐느껴 울고 싶을 때입니다.

 

우리 예배가 그러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의 골방 기도 시간도 아버지 품이길 원합니다.

아니, 설거지하든지 쉼을 갖든지 일을 하든지

아버지 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는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맛보아 아는 신비롭고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8-9)

O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Oh,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hose who fear him have no lack! (Psalms 34:8-9, ESV)

 

하나님 아버지

주를 찾는 참빛 식구들을

꼭 만나 주시고 안아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1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