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현재 바이러스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이태리입니다.

시신을 실은 군용 트럭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못해 먹먹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를 새롭게 발견했고

기도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는

<Christianity Today>의 기사를 요약해서 나눕니다.

 

1) 탄식의 기도/ Prayers of Lament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눈물로 침상을 적시거나,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를 눈물로 구하는 시편의 탄식시를 읽으면서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누군가의 기도라고 건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편의 탄식시들이 마음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away?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he times of trouble (Ps10:1)

 

성경 속의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나” “우리”의 기도로 변했습니다.

 

2) 이웃과 세상을 위한 기도/ Prayers of Intercession

그동안 우리 기도는 내 마음과 내 삶에 머물렀습니다.

종종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은 적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이태리]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몸 바쳐 일하는 의료진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가족들,

연구진들, 교회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우리를[이태리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기도 속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3) 고요한 기도/ Prayers of Silence

아직 희망적인 뉴스는 없습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휩싸여 있고 깜깜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말문이 막혀서 침묵이 흐릅니다.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막막해서 외마디 기도가 나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

 

예전에 기도할 때 생각났던 수많은 단어와 말이 아니라

말없이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뢰할 뿐입니다.

 

2.

우리도 언제나 다시 만나서 함께 예배하고,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잡히고 말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기도의 언어들이 하나님 뜻에 합하고

더욱 순수하고, 확신있으며, 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1)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Ps 18:1)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더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 이-메일 목회 서신)

 

 

어그러진 일상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루 아침에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서 집에 있습니다.

휴가도 아닌데 온 가족이 집에 머뭅니다.

직장도 학교도 우리의 바깥 세상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루 세끼를 온 가족이 해결합니다.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삐꺽하는 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쇠가 부딪치듯이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가고 싶은 인앤아웃 버거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필수품을 사러 나가면,

텅 빈 진열대만 바라보다가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그나마도 사람들과의 접촉이 두려워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가족들이 언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될 날이 과연 올지

사람들과 허물없이 “하이” 인사하고 악수하는 때는,

무엇보다 우리 참빛 식구들 모두 모여서 예전처럼 예배하는 때는

– 현재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그래프가 민둥산처럼 커브를 그리고

내리막을 걷기를 기대하면서 온 국민이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2.

어쩌면 일상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여기던 것이 특별했고

답답하고 외롭고, 온 가족이 뒤섞이고

종종 불안이 엄습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는 일상은 ‘어그러진’ 일상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감 시간이 있는 일상이니

가능한 어그러진 일상을 지혜롭게 관리하기 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가능한

창조적 시간(카이로스)를 찾아내고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훗날 돌아볼 때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닙니다.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온 세계적 고난의 시간입니다.

견뎌야 합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찾아온 일상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성령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편 119:49)

Remember your word to your servant,

in which you have made me hope.(Psalms 119:49)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26 이-메일 목회 서신)

한계

좋은 아침입니다.

 

1.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가 무색한 요즘입니다.

 

일어나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몇 명인지

언제쯤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을지 뉴스를 검색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온 가족이 온종일 붙어 있어서 친밀하고 좋지만,

반대로 가정마다 힘겹고 낯선 일도 벌어질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도 꺼려지고

생필품을 구하러 마트에 가지만

텅 빈 진열장만 구경하고 올 때도 많습니다.

 

바이러스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겠지요.

행정당국이 명령한 자택 격리를 솔선해서 지켜야 합니다.

 

2.

중국과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미국은 손 놓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속수무책처럼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서 도시를 닫고 나니

곧바로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여행사, 호텔, 항공업계는 물론

식당을 비롯한 소매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가

힘없이 녹아 내리는 느낌입니다.

 

3.

과학과 인류 문명이 발달해도

전염병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마치 구약 시대로 회귀한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습니다.

행여나 잘못한 것이 있을까 돌아보면서

개인적으로/국가적으로 회개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물론,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속성도 알고,

행정조치도 취하고,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몇 주간

속수무책으로 구약시대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4.

21세기에 돌아보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틈틈이 인간의 약함과

세상에 목표를 둔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서 말씀도 묵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의 교만과 자랑을 회개하고 좀 더 겸손하기 원합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겨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힘을 의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어려움을 능히 극복하기 원합니다.

 

힘냅시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편 118:5)

Out of my distress I called on the LORD;

the LORD answered me and set me free.(Psalms 118:5)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19 이-메일 목회 서신)

일촌간장

좋은 아침입니다.

 

1.

일촌간장(一寸肝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한 토막의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속이 타서 녹아 내릴 정도의 안타까움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일촌간장이 봄눈 슬듯한다”라는 속담은

걱정과 두려움이 극에 달해서

봄눈이 녹듯이 속이 녹아내린다는 뜻입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한 몸, 한 가족을 지탱하기도 어려운데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통제하기 힘든 사건이 외부에서 터지면

엉거주춤을 넘어 좌불안석입니다.

잠깐 잠깐 봄눈 슬듯하는 일촌간장의 심정도 경험합니다.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기도하지만

악한 것들, 나쁜 것들은 왜 이리도 질긴지 모르겠습니다.

 

2.

성경을 읽다 보면

“두려워 말라”는 명령을 자주 만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불확실한 것들,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비가 오지않는 가뭄, 강이나 바다가 넘치는 홍수와 해일,

툭하면 발생하는 전쟁,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이 대표적입니다.

 

속수무책이었기에 전염병, 전쟁, 가뭄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나와서 온 백성이 잘못을 고하고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우리 상황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웬만한 전염병은 예방하거나 거뜬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가뭄이나 전쟁도 인류가 의기투합하면 조절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따금 속수무책의 사건이 터지니

우리 안에 내재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힘듭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경우처럼

해결할 능력이 없고, 끝을 알 수 없으면 두려움이 배가됩니다.

일촌간장이 슬어지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3.

지난 주일설교에서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를 달아 내렸을 때

“안심하라(용기를 내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합니다.

 

온몸이 마비된 채

지붕에서 내려온 중풍 병자를 보면서 느끼신

예수님의 일촌간장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간장이 녹아 내리는데

예수님은 불쌍하고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에 간장이 녹아 내리셨습니다.

단숨에 죄를 사해 주시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무겁고,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안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안타까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기 원합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친구들처럼

참빛 식구들이 힘을 합치고

두려움을 나눠 갖기 원합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1:13)

For I, the LORD your God, hold your right hand; it is I who say to you,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Isaiah 41:13)

 

하나님 아버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라” 말씀하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12 이-메일 목회 서신)

온유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성경 통독에서

모세오경의 마지막인 신명기를 마쳤습니다.

신명기는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틈만 나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불평했고, 원망했으며,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모세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 이집트를 나온 성인 남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할례조차 받지 못했던 2세들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할례를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모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할 땅들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드디어 이루실 참입니다.

 

그렇게 다 보여주고, 말씀하신 후에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34:4)

 

모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어쩌면 눈을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가고 싶은 약속의 땅입니까?

 

모세는 여전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숨을 거둡니다.

 

3.

성경은 모세를 향해서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민12:3).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청년 모세는 혈기가 앞서서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모래에 묻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숨어지내면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가장 적합한 성품을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백성들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모세가 온유한 성품을 갖추지 못했다면

불평과 원망이 일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 40년을 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라면 크게 반발했을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4.

온유(gentleness)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순종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모세뿐 아니라 예수님도 그 길을 가셨습니다.

 

세상이 많이 각박합니다. 온유함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신의 몫을 챙기고, 나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바이러스 사태처럼 어려움을 겪고 나면

서로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하나로 어울리는 세상이 되면 좋겠는데

반대로 분열과 미움, 갈등의 세상으로 변할까 염려됩니다.

이웃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온유인데 말입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세상에서 온유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그랬듯이 어려움이 온유함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 12:3)

Now the man Moses was very meek,

more than all people who were on the face of the earth(Num 12:3)

 

하나님 아버지,

온유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넉넉한 세상이 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5 이-메일 목회 서신)

바이러스 2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폐렴 바이러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한국은 물론 당사자 중국이나 인접국 일본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태랍니다.”

 

2월 첫 주에 보내드린 목요 서신 서두입니다.

그렇게 지나갈 것 같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혼란해 빠뜨리고 있습니다.

 

치사율은 낮다고 하지만

그래도 노약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전염되는 경로와 속도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순식간에 바이러스 확진자의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미국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2.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신천지라는 사이비/이단입니다.

 

신천지의 장막 성전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으니

역사도 길고 끈질긴 조직입니다.

현재 신천지는 1984년 교주 이만희가 시작한 장막성전이 모체입니다.

전국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따서 12구역으로 나눴습니다.

해외까지 수십만의 신도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습니다.

 

교주 이만희에게 재림 예수의 영이 임했다고

그를 신처럼 받드는 사이비 단체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이 그렇듯이 요한계시록을 강조하고

소위 성경을 영적(알레고리)으로 해석합니다.

교주 이만희는 1970년 한국을 강타했던 이단

전도관에서 이단의 운영 기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추수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기존 교회에 침투해서 아주 신실한 교인 행세를 하고

나중에는 신천지 출신의 목사를 세우는 수법으로 기존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신천지 교인인 것을 가족에게도 숨기면서

활동하는 기생충 같은 이단입니다.

 

3.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밀 조직인 신천지에 붙어서

한국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

서울 대형 교회들 까지

이번 사태는 이상하게 기독교와 연관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천지의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하니

(이번 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게 되었지만)

대략 기독교 또는 교회를 비난합니다.

가뜩이나 실추된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사태를 수습해야 하니 한국의 교회들과 교인들이

보건당국의 지시를 잘 따라서 바이러스를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

사이비 신천지로 시작되었지만,

교회 또는 기독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립니다.

믿음만 앞세울 뿐

상식이나 지각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비난도 듣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런 때일수록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할 일은 없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거리에 버려서 밝힐 뿐이라는 예수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급선무는 바이러스를 잡는 일입니다.

행정당국, 누구보다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동시에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의 자리에서,

기독교인의 자리에서 이번 사태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 5: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salt has lost its taste, how shall its saltiness be restored?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 people’s feet. (Mat 5:13,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국 대한민국을,

주님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27 이-메일 목회 서신)

균형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폐렴 바이러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한국은 물론 당사자 중국이나 인접국 일본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태랍니다.

 

전염병이 돌면서 균형이 깨지니

경제도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애플 아이폰의 경우

중국 생산공장의 차질로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답니다.

 

2.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균형(balance)”이 중요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 직장과 가정의 균형,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의 균형,

건강을 뜻하는 몸의 균형,

신앙과 생활의 균형,

자녀 교육의 경우 훈육과 격려의 균형 등등.

 

평균대 위에서 연기하는 체조선수들이

균형을 잃으면 삐끗하고 평균대에서 떨어지듯이

우리도 균형을 상실하면 흔들거리거나 무너져 내립니다.

 

또한 지나치게 균형을 강조하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생활을 균형을 쫓다가

신앙도 미지근하고, 생활도 엉거주춤한 상태가 되는 경우입니다.

 

3.

어느 순간에는

<선택과 몰입>이 필요합니다.

 

곧 사순절이 다가오는데

신앙을 위해서 시간을 떼어놓고 에너지를 쏟으면서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삶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 외에 주중까지 교회 봉사에 힘쓰다가

삶이 망가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선택과 몰입을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4.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내려 주시지만

우리는 은혜와 침묵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처럼 느끼곤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손길이 눈에 보이듯이 임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때는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도 길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평균적으로 임하는 것을 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차분하게 주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연결해 주시고

궁극적으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과 확신을 갖고

우리 앞에 있는 벽과 경계를 넘어서 주님께 나갑니다.

 

삶에 밀려오는 폭풍우를 막아낼 힘과

벽을 뚫고 나갈 용기와

삶의 균형을 이룰 하늘의 지혜를 구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고후 8:13)

I do not mean that others should be eased and you burdened,

but that as a matter of fairness (2Cor 8:13)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균형을 회복시켜 주소서.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고, 균형을 이루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20 이-메일 목회 서신)

있는 그대로

그럴수록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처럼,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마음과 상황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진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 앞에 진술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임하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우리 마음속에 평안, 위로, 소망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But I, O LORD, cry to you; in the morning my prayer comes before you (Ps 88:13)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드리는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13 이-메일 목회 서신)

 

바이러스

1.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한국 뉴스를 보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서도

대부분 바이러스 얘기입니다.

동기 모임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공지도 뜹니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 왕래가 잦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니

전염될 가능성이 훨씬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은 그에 비하면 아주 한산한 편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제 코스코에 갔다가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도 서로 조심하는 것이 역력합니다.

 

지난 월요일 날 우체국에 갔는데 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저를 주시했습니다.

동양 남성이 기침을 했으니까요.

 

2.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참에 외출해서 돌아오면

손을 오랫동안 깨끗이 씻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번에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게 센 놈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말과 올해

독감(flu)으로 만 명이 넘는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사고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차분하게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분들이 얼른 일어서길 기도하고,

무엇보다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각국의 보건당국이 현명하게 대처하길 기대합니다.

 

주일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또한 지나갈 일입니다.

 

3.

그래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은

공기를 통해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일정 기간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노약자의 경우 바이러스의 침투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어디 바이러스만 그럴까요?

우리 안에 슬며시 들어와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 말한 “죄”가 그렇습니다.

욕심, 염려, 불안, 두려움, 우울, 무력감, 절망, 소외, 연약함, 자기 연민 등등

우리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바이러스들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철저하게 위생을 관리하듯이

우리 신앙과 마음에 파고드는 악성 바이러스들도 몰아내야 합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예수님, 우리 예수님> 연속 설교 본문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합니다.

 

차분하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갑시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8:3)

And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saying, “I will; be clean.” And immediately his leprosy was cleansed.”(Mat 8:3)

 

하나님 아버지,

어지러운 세상에 평안(샬롬)을 주시고

세상을 사는 참빛 식구들과 늘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6 이-메일 목회 서신)

 

 

 

 

인생길

1.

새해 벽두부터

중동발 전쟁의 기운,

호주발 산불,

중국발 신종폐렴까지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경자년 새해는 흰쥐띠 해라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대했건만

세계정세가 아직은 잔뜩 흐림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주일에는 NBA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세 살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여덟 살이 된 1996년에 자신이 좋아하는 LA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2016년까지 20년 동안 다섯 번이나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농구선수가 되려는

열세 살 딸과 함께 자가용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다가

짙은 안개에 시야를 잃으면서 헬기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불혹을 넘긴 41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스포츠 스타의 죽음을

많은 사람이 추모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 전체가 그와 딸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합니다.

 

2.

새해 첫 달에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Arise and shine”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올 한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전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유별나고 큰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일이 되길 바랐습니다.

 

깜깜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동화 같은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로 눈을 돌리면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크고 작은 폭풍우가 밀어닥칩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3.

겸손하기 원합니다.

차분하기 원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궁극적인 일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순간의 일’과 ‘영원의 삶’을 구별하기 원합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일에 힘을 다하기 원합니다.

지금은 그 끝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말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길을 돌아보고 재조정하고

다시 힘차게 새달을 맞읍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Isa 60: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3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