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물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기도회에서는

예레미야서를 끝내고 오늘부터 예레미야 애가에 들어섰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바벨론에 의해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른 조가(lament)입니다.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과

하나님께서 계시던 예루살렘 성전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던 예루살렘이 몹쓸 도시로 변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낮에는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밤에는 낮에 본 참상에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려서

예루살렘을 향한 애가를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애타게 외쳤고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지만

예루살렘 왕들과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예언이 맞았으니 더욱 당당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가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땅의 백성들, 힘없는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애가를 지은 것입니다.

 

2.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통곡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함께 애가를 부르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자고 초대합니다.

 

깜깜한 어둠입니다.

쓰고 쓴 담즙을 씹는 것과 같은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으니 더욱 절망적입니다.

 

그 순간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쏟듯 할지어다 (애가 2:19)

Pour out your heart like water before the presence of the Lord!(Lam 2:19)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내라는 말씀입니다.

잘못한 것들도 쏟아내고

어려운 상황도 그대로 쏟아내고

자신 안에 들어있는 찌꺼기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련 또는 교만,

여전히 남아 있는 특권의식과 자존심도 물처럼 쏟아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예레미야의 초청입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내야 합니다.

선별할 필요없이 물처럼 쏟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새로운 은혜로 가득 채우고

새 날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 붓고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 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애가 3:22-23)

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never ceases;

his mercies never come to an end;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Lamentation 3;22-23)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열게 하시고

아침마다 새로우신 주의 성실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24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버지니아 샤롯츠빌 사건의 후폭풍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을 지휘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두고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충돌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감싸는 듯한 애매한 발언을 하면서

미국 사회 곳곳에 이끼처럼 끼어있던 인종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느낌입니다.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뒤에서 쉬쉬하며 활동하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점점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

5년 동안 살았던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마틴스빌이라는 곳에

KKK지역본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있었던 2000년 통계를 살펴보니

약11,000명 주민 가운데 흑인은 11명일 정도로

유색인종이 발을 붙이기 힘든 도시였습니다.

 

어쩌다가 그 도시를 지나갈 기회가 생기면

왠지 기분이 언짢고 얼른 빠져나오기 위해서

서둘러 엑셀러레이터를 밟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교민 가운데 한 분은 그 도시의 약국에 근무하셨고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인종이나 피부 색깔 등에 대한 차별과

이것을 빙자한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모든 사람을 지으셨기에

누구나 존중받고 공평하게 대우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평화가 깨지고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일이기에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미국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갈라진 모든 것을 충만한 은혜로 통합시켜 주십시오

찢겨진 모든 것을 충만한 사랑으로 아물게 해주십시오

부활, 새로운 생명을 주십시오.

Unite in full grace all that is divided.

Mend in full love all that is torn.

Resurrect us, we pray.

 

우리의 삶도 만만치 않지만

잠시 멈춰서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Matthew 5:9)

 

하나님 아버지,

분열된 세상이 화합하게 하시고

찢겨진 마음들이 하나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주의 평화, 샬롬을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17이-메일 목회 서신)

세심함

좋은 아침입니다

 

뉴스를 검색하다가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시계 제작소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직접 손으로 시계를 만듭니다.

1970년부터 시계 수리공으로 일한 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JS Watch라는 브랜드와

자신의 이름을 딴 Gilbert라는 가게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시계는 정확성과 독특한 디자인은 물론

1,000m 물속에서도 방수가 된답니다.

톰 크루즈를 비롯한 인기인들도 주된 고객입니다.

물론 값은 수 천 불에 이르는 고급 시계입니다.

 

2.

5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제가 눈 여겨 본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시계를 만드는 모습입니다.

 

틀 위에 시계 원판을 올려놓고

오른쪽 안경에 덧씌운 돋보기와

핀셋을 사용해서 꼼꼼하게 시계를 조립합니다.

말 그대로 장인의 모습입니다.

 

단순히 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을 조립해 가는 듯합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엄숙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도

장인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릎 꿇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기도의 언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할 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조용한 기도시간부터

마지막 축도와 찬양대의 후주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끝까지 사모하고 실제로 경험하면서 예배합니다.

 

3.

일터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일합니다.

가정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조립하는 시계공의 모습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천사도 흠모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신앙과 삶을 세워가면

누구보다 우리 자신에게 기쁨과 자부심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 앞에서

우리의 삶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세워가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시 119:140)

Your promise is well tried, and your servant loves it. (Psalms 119:40)

 

하나님 아버지,

참빛식구들의 삶이 곧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10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읽기

좋은 아침입니다

 

8월 1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는

펜스 부통령과 법무장관을 비롯한 백악관의 주요 인물들이

매주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초대를 받았지만

참석 여부는 확실치 않고,

성경공부 모임과 인도자 목사님을 적극 지지하고 있답니다.

 

자신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비공식적이고 순수한 의도를 가진 성경공부 모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과연 그 모임에 정치적 의도나 영향력은 없는지 질문했습니다.

 

기사 밑에는

백악관의 성경 공부를 비꼬는 댓글들이 길게 달렸습니다.

 

2.

트럼프 내각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트럼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진도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백악관에서 매주 모이는 성경공부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에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약자를 위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변화를 체감할 수 없습니다.

오바마 케어를 비롯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그 높으신 분들이 매주 모여서

무슨 성경을 공부하고 무엇을 기도할지 궁금합니다.

신앙이 좋고 순수한 분들이라고 기사에서 소개했지만

과연 “신앙이 좋고 순수한”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 봅니다.

 

3.

성경은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하나님 말씀도 분명한 의도가 있을 텐데

읽는 사람이 각기 다르게 성경을 이해하고

심지어 성경을 이용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기 위해서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혼란스럽고,

아전인수격 성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4.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읽고 잘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내 마음대로 읽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음성과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분과 성경에 관해서 얘기하고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잘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왕 백악관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니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your law.(Psalms 119:18)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서 주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안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4이-메일 목회 서신)

느긋함

좋은 아침입니다.

 

야구나 골프든지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선수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응원하게 됩니다.

 

엊그제 화요일에는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오랜만에 경기에 나와서

서너 개의 실투로 점수를 주었지만

부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고려하면 그런대로 잘 던졌습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였는데

“바톨로 콜론”이라는 선수가 상대편 투수였습니다.

 

올해 44세인 바톨로 콜론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노장입니다.

일본인 타자 이치로와 동갑이지만 생일이 앞섭니다.

여러 해 전에 은퇴한 박찬호 선수와 동갑이랍니다.

1997년에 데뷔해서 아직도 투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동안 10개의 팀을 옮겨 다녔으니

“저니맨”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그래도 싸이영 상도 받고,

지난해에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홈런타자가 되면서 올스타에도 뽑혔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바톨로 콜론은

운동선수답지 않은 체격을 가진

말 그대로 매우 느긋한 선수입니다.

류현진 선수도 만만치 않게 느긋한 성격이지만

콜론에 비하면 조급증에 시달리는 젊은 투수일 뿐이었습니다.

 

유연한 몸동작으로

공을 쉽게 던지는데

요즘 잘 나가는 다저스 타자들이 잘도 속아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여유를 느꼈습니다.

야구 자체를 즐기는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말 그대로 노장이었습니다.

 

2.

주일 말씀에서 배우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저니맨”입니다.

 

물론, 나그네로 사는 것이 좋을 때도 많습니다.

 

불안한 만큼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합니다.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마음껏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봅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설령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여유 있게 웃어넘기면서

선한 길을 걸어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저니맨, 하나님 백성이 갖는 여유입니다.

 

메이저 리그의 노장 투수가 갖는 여유와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느긋함입니다.

 

성경통독에서 전도서를 지나고 있기에

더욱 하나님 백성의 느긋함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고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전도서7:29, 새번역)

See, this alone I found, that God made man upright,

but they have sought out many schemes. (Ecclesiastes 7:2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서

믿음 안에서 여유를 갖고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27이-메일 목회 서신)

사는 동안에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통독이 전도서에 와 있습니다.

앞으로 예언서를 지나면 신약성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통독할 때 마다 느끼는데

전체 성경 가운데 구약의 분량이 꽤 많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가 그만큼 길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시계추를 맨 끝에 갖다 놓고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말씀입니다.

 

너의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

– 전도서 말씀의 주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청년의 때”를

누구에게나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2.

전도서 3장 12절은 짧지만

마음에 깊은 울림과 실제적인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주일에 살펴보는 베드로전서 말씀도

“우리가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그 가운데 한 가지 비결로

“기쁨”과 “선행”을 제시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얻은

신앙의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선행일 것입니다.

역시 신앙과 삶의 통합이자 연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주님 주신 은혜 속에서 기쁘게 살기 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기쁘고 선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20이-메일 목회 서신)

레갑 족속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예레미야서를 읽는 중에

“레갑 족속(the Rechabites)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레갑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가득 든 항아리를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조상 요나답의 말을 전합니다(렘35:6-7).

 

– 너희는 물론 자손들도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삶의 표시)

– 집도 짓지 말고 곡식의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나무도 심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에서 살아라.

– 그러면 나그네로 사는 땅에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가르쳐준 전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레갑 족속의 구별된 삶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전통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비교됩니다.

 

2.

레갑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레갑사람들은 양을 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그곳에서 겐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을 아내로 맞게 되는데,

레겝 사람들이 겐 족속(the Kenites)에서 왔다고 봅니다 (역대상 2;55).

 

레갑 사람들이 최고의 조상으로 여기는 요나답에 대한 말씀이

열왕기하 10:15-17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세운 예후가 잔악했던 아합왕의 가문을 치러갈 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에게 함께 가서 의로운 일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여호나답이 기꺼이 예후를 도왔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통 가문이 아니었지만

의로운 일에는 힘을 합쳤습니다.

 

무엇보다 3백여년 동안

조상 요나답이 전한 말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습니다.

정착민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구름처럼 떠다니는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면서 거룩함을 실천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3.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왜 후손들에게 나그네 삶을 살라고 했을까요?

 

자신들의 본업인 유목민의 삶을 지속하라는 뜻일 겁니다.

조상 대대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귀감이 됩니다.

 

장막에서 지내는 유목 생활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착하지 않으니 세상에 마음을 둘 수 없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기에

나그네 삶을 살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35:19)

 

자신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적응해 나가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한결같기 원합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렘 35:18)

you have obeyed the command of Jonadab your father

and kept all his precepts and done all that he commanded you (Jer 35:18)

 

하나님 아버지,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면서

레갑 사람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13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속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읽기 시작한

예레미야 30-33장을 일주일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하루에 3장씩

꾸준히 달려가면서 읽는 방식입니다.

성경공부는

본문 말씀을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짚어 가면서 읽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만나면

그 말씀을 붙잡고 한참을 멈춰 서 있는 것입니다.

 

2.

수요 예배와 새벽기도회에서

권사님들과 예레미야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말씀이 거칠고,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될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러다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예레미야 30-33장을 만나서

사막 길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일주일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묘미는

소망의 말씀이 52장 한 가운데인

30-33장에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30장에 오기까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눈물로 탄식하며 호소하는 선지자의 애원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33장이 지나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눈에 보듯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고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민족의 마지막 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3.

이처럼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전하는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씨-처럼 들어있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주시고, 회복하시고

돌이 아니라 마음에 새 언약을 새겨 주십니다.

 

예레미야서의 한 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제 길로 갈 때도 많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진심(속마음)을 이해하면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고 주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희망의 씨”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을 느끼고

우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기 원합니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예레미야 32:40-41)

And I will put the fear of me in their hearts, that they may not turn from me.  I will rejoice in doing them good,

and I will plant them in this land in faithfulness, with all my heart and all my soul. (Jer 32:40-41)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대로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6 이-메일 목회 서신)

주의 은혜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 기도회에서는

오늘부터 예레미야 30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남유다가 멸망하기 20여 년 전부터

하나님을 떠난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인30-33장에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벽에 권사님들과

예레미야서의 심판 메시지를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오늘 새벽부터 30장을 읽기 시작하니 말씀의 은혜가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2.

예레미야서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돌아오라(return)”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 백성으로 언약 가운데 살 수 있지만,

교만한 마음에 하나님을 버리고 끝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인과응보>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30장에 이르면

돌아오라는 조건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은혜는 선물입니다.

선물에 조건이 붙으면 거래가 됩니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은혜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마음을 열면

은혜가 큰 물결처럼 우리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가져야 은혜라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문을 열면,

문 앞에까지 이른 은혜가 우리에게 밀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주님의 선물, 주님의 은혜입니다.

 

새벽에 이 은혜를 묵상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주님의 선물인 것이 실감 나던지요!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로 살기 원합니다.

 

은혜로 숨을 쉬고,

우리 마음과 삶에 물결처럼,

샌프란의 밀려오는 안개처럼,

맑은 공기처럼 임하는 주의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0:19)

Out of them shall come songs of thanksgiving, and the voices of those who celebrate. I will multiply them,

and they shall not be few; I will make them honored, and they shall not be small. (Jer 30:19)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참빛 식구들의 마음과 삶을

주의 은혜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29 이-메일 목회 서신)

서서평

좋은 아침입니다.

 

1.

LA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내일 마무리하고 저녁에 올라갑니다.

 

무척 더워서 샌프란 생각이 많이 나고

하루 종일 강의하다 보면 조금 지치기도 합니다.

아내가 중간 중간에 카톡으로 교회소식 알려주는 것이 무척 반갑니다.

 

오늘은 저녁에

이곳에 있는 지인들과 <서서평>이라는  한국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서서평은 독일 출생입니다.

미혼모 어머님에게 낳아서

세 살 때 어머니가 서서평을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아홉 살이 되자 할머니마저 돌아가십니다.

서서평은 어머니를 찾아서 주소 하나 들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됩니다.

 

태평양 건너 조선이라는 곳에는

나병(한센병,문둥병)환자, 굶주리고 병을 앓는 아이들이 많은데

병원이나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광주에 자리잡은 서서평은

당시 가장 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됩니다.

제주도까지 다니면서,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합니다.

 

마지막 54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시신까지 조선사람들을 위해서 기증했습니다.

영화는 그 장면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됩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것은 동전 몇 개와

그나마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담요

입고 있던 한복 외에 재산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하지만, 서서평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삶이 변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무척 많이 남아있어서

그녀의 장례식에 수천명이 모였고, 당시 동아일보도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또 한 가지,

그녀의 침대 위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남겨 있습니다.

“No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

 

그렇게 서서평 선교사는

그녀의 한글 이름처럼

“서서히/천천히, 그리고 평안하게” 우리 조선사람들과 더불어

신앙과 인생의 길을 걷고 주님께 갔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식이어서 담담하게 만들어졌지만

서서평의 삶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새 날을 시작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천천히 그리고 평안하게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렘 33:3, 새번역)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 (Jer 33:3))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도

참빛 식구들이 가는 길에 동행해 주셔서

진리와 생명의 길, 섬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2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