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뼈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은

양병모 목사님께서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설교없이 한 주 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신

창세기 32장 얍복강의 야곱 본문은 언제 들어도 은혜가 넘칩니다.

 

장자가 되려는 야망 만을 위해서 달려가던 야곱이

얍복강(“비움”)에서 자신을 비웠고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었다는 말씀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생길은 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입니다.

 

씨름의 목적은

내 안에 있는 “다툼, 경쟁, 욕심”등을 비우고

대신에 하나님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인 인생에서 (I am everything)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I am nothing)

하나님을 모든 것으로 삼는 여정입니다.

 

얍복강의 싸움의 끝에는

“평안”과 “화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햇볕이 야곱의 얼굴을 비추는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2.

얍복강의 싸움에서

야곱은 환도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다쳐서 평생 다리를 절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짝 건드리셨는데

야곱에는 치명상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곱에게 매우 거룩한 상처였을 것입니다.

다리를 절 때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임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밤새워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신을 비웠고

하나님의 힘으로 형 에서를 만나야 함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거룩한 상처를

어딘가 지니고 있기를 바랍니다.

 

몸에나 마음, 삶의 어떤 순간에

하나님을 만났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항복했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던 표시입니다.

 

삶이 힘들 때는

그 상처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높이 올라가면

얍복강가의 상처를 되새기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겸손해 집니다.

 

사순절을 마무리하고

고난 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상처들을 되새겨보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거룩한 상처가

한 가지씩 늘어가는 신앙의 여정이길 원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32:31)

The sun rose upon him as he passed Penuel, limping because of his hip (Gen 32:31)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상처를 갖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6 이-메일 목회 서신)

씀씀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3월 중순 트럼프 정부는

내년도 미국 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의회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지만

발표한 예산을 보면 트럼프 정부가

장차 국가의 재정을 어디에 쓸 것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국방, 안보, 재향군인회를 제외한 모든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 대학생 보조,

노인 복지와 같은 정책을 축소시켰습니다.

 

무엇보다, 환경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서 시행하던 연구는 물론

의학 발전과 관련된 연구비도 삭감했습니다.

 

국방비는 10%(증가분이 미국 전체 교육비에 육박하는 523억 달러)가 늘어서

여전히 정부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1년 예산은 4조 달러 정도이고  그 중에 3조는 사회복지, 메디케어, 국가 부채 이자상환 등

필수적으로 지출되는 예산이고, 나머지 1조 정도를 정부가 임의로 조절할 수 있음)

 

또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기 위한 초기비용으로

26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환경청 예산 삭감과 정확히 일치하네요.

후손들을 위해서 환경정책이 매우 중요한데 말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예산을 보면서

어머 어마한 국방예산 수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은 5,740억 달러(574조원)의 국방예산을 잡아 놓았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중국의 세 배에 해당합니다.

 

지구촌에 전쟁과 테러가 사라진다면,

강대국들이 평화협정을 맺고

무기감축 협정이라도 서명할 수 있다면,

엄청난 국방 예산을 더 의미 있는 일에 배정할 수 있을 텐데요.

꿈같은 일이겠지요!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저소득층과 노인층 의료와

사회보장을 위해서 지출하는 예산 비율이 높고

이 예산은 우선 집행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국가의 씀씀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씀씀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주신 물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주어진 재능과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과 마음 씀씀이는 어떤지요?

행여나 힘을 과시하고, 욕심을 채우고, 남을 미워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순절을 보내면서

잠깐 멈춰서 우리의 씀씀이를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세상에 평화가 임해서

싸우고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파괴하는데

큰돈을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미가 4:3-4) He shall judge between many peoples, and shall decide for strong nations afar off; and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but they shall sit every man under his vine and under his fig tree, and no one shall make them afraid, for the mouth of the Lord of hosts has spoken. (Micah 4:3-4)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씀씀이가 주님 앞에서 떳떳하게 하시고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30 이-메일 목회 서신)

 

법궤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주 오래전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지난 번 설교 시간에 나눴던

법궤/언약궤(the ark of covenant)가 등장합니다.

영화 제목 자체가 “잃어버린 법궤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나치가 숨겨진 법궤를 찾아서 난공불락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존스 교수가 나치의 계획을 막아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모셔온 법궤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있다가

언제부터인지 성경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모세가 죽었던 느보산의 동굴에 숨겼다고 합니다.

 

로마 성당의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

이집트 또는 에티오피아 심지어 아프리카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까지

실제로 법궤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설(說)이 난무합니다.

 

법궤가 없길 망정이지

실제로 법궤가 남아 있었으면

영화 속의 나치처럼 하나님 능력의 법궤를 손에 쥐려는 세력들부터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법궤를 섬기려는 종교인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2.

영어 성경에는

법궤에 해당하는 Ark라는 표현이 크게 세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만든 법궤 외에도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지었던 “방주”가 Ark입니다.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모세가 들어있던 “상자”도 Ark입니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상자는

<테이바>라는 히브리어가 쓰였고

다윗이 예루살렘에 가져온 법궤는 <아-론>이라고 부르는데

방주, 상자, 법궤의 공통적인 모양인 “상자”를 뜻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모세의 갈대 상자 역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능력, 영광을 뜻합니다.

 

3.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우리 모두는 하늘 성전에서 법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요한계시록 11:19)

The ark of his covenant was seen within his temple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하나님의 법궤를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런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법궤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왔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마음과 삶 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보호와 인도,

능력과 임재의 법궤를

마음과 삶 속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오늘 새벽에 읽은 이사야 말씀입니다.

그가[주께서]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이사야 57:14)

And it shall be said, “Build up, build up, prepare the way,

remove every obstruction from my people’s way.” (Isaiah 57:14)

 

하나님 아버지

마음과 삶 속에 주님을 모시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능력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3 이-메일 목회 서신)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2주 전 수요 예배를 마치고

권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안내 데스크에 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머리숱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가운데 머리가 훤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한 권사님께서

희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한국의 부분 가발이 아주 좋으니 그거 사용하시면 돼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아- 부분 가발이 있었구나”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버님을 닮은 것 같으니 머리가 많이 빠질 텐데

그냥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권사님께서 알려주신 부분 가발을 사용해서

외모를 치장할 것인가?

 

이 모습 그대로 가는 것

즉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래 제 생각이었는데

“부분 가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외모에 변화를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래도 젊어 보이면,

생동감 있게 미래를 맞이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제 머리 상태가 괜찮습니다.^^

거기에 부분 가발이라는 든든함까지 있으니

머리숱이 없어져도 안심이 됩니다.

 

2.

지난주에는 시편 132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은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나서는 것,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을 현재에 모심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것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미래로 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앞을 향하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중요합니다.

 

미래는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가능성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며 기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다시 발견하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꿈을 꾸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께

주님의 꿈을 보여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끝없이 이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139편 9-10절)

If I take the wings of the morning and dwell in the uttermost parts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sha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shall hold me.(Psalms 139:9-10)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16 이-메일 목회 서신)

샐러드 보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이 많이 뒤숭숭합니다.

중서부를 비롯한 백인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는

“미국을 떠나라(get out of America)”는 구호와 함께

백인우월주의가 예상보다 강하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인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캔사스에서도, 오하이오에서도

미국을 떠나라는 식의 혐오 범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달에는

LA에서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백인 여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

이미 4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학창시절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미국을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라는 그릇에 녹아 들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1900년 초부터 소개된 개념이니

백인 중심의 유럽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가리켰을 것입니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멜팅팟”보다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완전히 녹아 내려서 하나가 된 미국이 아니라

샐러드 내용물처럼

각각의 문화, 인종, 관습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미국이라는 그릇 속에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우리 말 만화경을 뜻하는

영어 표현 kaleidoscope(칼레이도스코프)도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 “아름답다(beautiful)”에 “모양(form)”을 합친 말입니다.

다른 배경을 가진 각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같다는 것이지요.

 

3.

미국 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어울리려는 노력보다

자기 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멸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혐오 범죄”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냥 미워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폭언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총격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과 염소와 어린 아이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 더욱 경계하고,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멜팅팟처럼 모두가 하나로 녹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샐러드 보울처럼 각자 제 맛을 내면서

한 공간에 어울려 사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각자의 색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다 함께 어울려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됨과 조화로움을 이루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고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 11:6-11 중에서)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Isa 11:9)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주님 원하시는 평화의 동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9 이-메일 목회 서신)

네 오른손을 잡고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종종 성경을

눈에 보이듯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읽기를 부탁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고 움직이는 동작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옛것을 고집하면서

멈춰있는 그것도 흑백 영상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 읽기가 점점 지루해집니다.

 

어떤 경우는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나 성경 스토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입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의 모습,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띄게 하는 사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와 창자국을 보여주시는 장면은

읽기만 해도 우리 역시 현장에 있는 듯합니다.

 

2.

이번 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장 이하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은

바벨론 포로기에 있거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40장 이하로 넘어가면

익숙하고 은혜로운 말씀이 펼쳐집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서 포로로 살고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 무력함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 땅의 우상을 섬깁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파트는

포로기에

끝까지 남아서 신앙을 지킨 하나님 백성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중에 엊그제 읽은 이사야 42장 13절이

계속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뜬금없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 영감없이 주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꼭 붙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

 

3.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동시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심을

삶 속에서 눈에 보이듯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붙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듣는 것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이사야 41:13)

For I, the Lord your God, hold your right hand; it is I who say to you,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Isa 41;13)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의 손을 잡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 이-메일 목회 서신)

                   

맞받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1.

한때는

권투가 국민 스포츠일 때가 있었습니다.

타이틀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오픈 경기들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챔피언을 꿈꾸는 무명 선수들이 4회전 경기를 하는데

처음부터 난타전을 벌입니다.

성격이 급한 선수들은

무모하게 밀고 들어가다가

카운터 블로라는

맞받아치기 주먹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집니다.

 

맞받아치기의 위력은

앞으로 밀고 오는 상대방의 힘까지 주먹에 실리면서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2.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 36-39장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 중에서 다윗과 요시아처럼

하나님을 잘 믿은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넘어뜨린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말을 할 줄 아는 랍사게라는 신하를 시켜서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너뜨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히스기야왕과

유다 입장에서는 큰일입니다.

독 안에 든 쥐입니다. 항복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앗시리아라는 당시의 제국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에 올라갑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앗시리아를 물리쳐 주실 것이니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국 앗시리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앗시리아에게 무릎 꿇지 않고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민족의 위기를

믿음과 기도로 맞받아친 것입니다.

 

3.

우리 역시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를 맞받아칠 필요가 있습니다.

 

골리앗과 마주 대하며 싸웠던 다윗처럼

앗시리아의 회유와 위협 앞에서

기도함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했던 히스기야 왕처럼

상황을 맞닥뜨리는 믿음과 용기를 장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멋지고 힘있게 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맞받아치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참빛식구들께서

맞부딪쳐야 할 일들이 여느 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 어지러운 세상 –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담대히 맞닥뜨리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KO승을 거두길 기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사야 37장 20절)

So now, O Lord our God, save us from his hand,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are the Lord.” (Isaiah 37:2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인생길을 담대하게 마주치고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3이-메일 목회 서신)

네가 어디를 가든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부터 수요예배에서는

구약성경 예레미야서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52장이나 되어서 두 번 또는 세 번에 나눠서 공부할 계획입니다.

 

예레미야는

40년 가까이 예언자로 활동하면서

좌충우돌 당시의 대세를 거스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바벨론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잔뜩 드리운 시대였습니다.

 

난세에 예언자로 부름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제국을 의지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루속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애타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조만간 민족이 멸망하게 될 것을 직감했기에

더욱 안타까웠고 다급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2.

요즘 우리에게도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어지러움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언제나 불확실성을 안고 삽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길이 불확실하니

더욱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결말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어려울 때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불확실함 때문에

이따금 밀려오는 염려와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3.

다음과 같은 가사의 찬양이 생각납니다.

 

“아침 안개 눈앞 가리듯 나의 약한 믿음 의심 쌓일 때

부드럽게 다가온 주의 음성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외로움과 방황 속에서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위로하시는 주님 나를 도우사

상한 나의 마음 감싸 주시네”

https://www.youtube.com/watch?v=n1sRT_XNzow

 

오늘은 참빛 식구들과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하루를 맞고 싶습니다.

 

우리 다같이 힘냅시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장 9절)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frightened, and do not be dismayed,

for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herever you go. (Joshua 1:9)

 

하나님 아버지

불확실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기 원하는

참빛 식구들과 늘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16 이-메일 목회 서신)

보배

좋은 아침입니다.

 

1.

성경에 나오는 표현 가운데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보배(treasure)” 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보배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1:19)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이신 예수께 나아가 (베드로전서 2:4)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베드로전서 2:6-7)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도 보배에 비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 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4)

 

이처럼 성경에서 보배라고 하면,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약속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보배로우면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과연 우리가 믿는 예수님 그리고 믿음을

성경대로 보배롭게 여기는지 돌아봅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에서도 “보배”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33:5-6)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히브리어의 보배라는 단어 속에는

“보물을 저장한 창고”라는 뜻도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보배요 보물창고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요!

 

3.

그 옛날 많은 사람이 금을 찾아서

캘리포니아로 왔듯이

요즘 사람들도 금과 비견되는 보물을 찾아다닙니다.

물질, 명예, 권력, 인맥, 쾌락, 정보 등등

각자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보배라고 깨우쳐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기 원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이 예수님을 닮고

참빛 식구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과 향기가 나기를 기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The fear of God, it is his treasure.

 

하나님 아버지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의 보배로 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9 이-메일 목회 서신)

                   

신뢰 2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만 해도 비를 무척 기다렸는데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립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비 소식입니다.

 

날씨가 습하고 쌀쌀하니

독감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감기로 인해서

예배에 못 오신 권사님들이계셨는데

참빛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2.

세상이 매우 뒤숭숭합니다.

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매일같이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다가

세계에서 따돌림은 물론 경제적으로 크게 후퇴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체류 신분을 놓고,

앞으로 미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모르니

많은 분들이 염려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뜻인데

자꾸 혼자만 잘살겠다고 고집부리고

차 떼고 포 떼고 독불장군식으로 정치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네 서민들에게 닥칠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파장이 크고

여기저기서 반-트럼프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도 꽤 뒤숭숭합니다.

 

이런 시절에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악한 동기들이 만연한

불완전한 세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3.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가능한 한 은혜롭게 읽고 묵상한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4-27장은

요한계시록의 예고편이라고 할 정도로

세상의 악과 선이 명확히 갈리는 “그 날”에 될 일을 알려줍니다.

 

악한 세력들이 무너집니다.

바다의 용들이 패하고

세상의 제국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주의 뜻을 행한 백성들이

눈물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어지럽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힘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4.

지난 주일에 함께 나눴듯이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서로 사랑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믿어주고 참아주고

서로에게 친절히 행하면서

손에 손을 붙잡고 과도기를 잘 지나가야 합니다.

 

힘들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향한 믿음이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You keep him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you,

because he trusts in you. (Isaiah 26:3)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소망이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어려울수록 서로 사랑하면서

견디고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