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은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어제는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그냥 잠자리에 들어서 이제 목요서신을 보냅니다.

제 30년 지기 친구인 국민일보 이태형 기자가

엊그제 강영우 박사님에 대한 글을 썼기에

오늘은 그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강영우 박사님이야 뭐- 말이 필요 없으신 대단하신 분이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이 더욱 아름답고 존경스러워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런 신앙의 선배가 계시기에

구원의 기쁨과 하늘의 소망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고

이 아침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또 다시 새 달을 맞이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신앙과 삶이

더욱 깊어 지고 높아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목사 올림

강영우 박사 이야기

강영우 박사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말, 익명의 한 분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왔다. “저, 강 박사님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아니, 왜 그러시죠?” “강 박사님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족하지만 강 박사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요.” “어떤 방법이지요? 임상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한번도 써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차피 시한부라면 이 방법이라도 해 보면 좋을듯 해서요….”

그 분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지 않았다. 아무리 강 박사가 힘겨운 상태지만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방법을시도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났다. 지난 23일 그 분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자신이 교장이라고 밝히면서 강 박사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청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음날 연락드리겠다고약속했다. 24일 오전, 강 박사 소천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 나왔다.

나는 강 박사가 췌장암 진단 받기 한 달여 전 그와 부인 석은옥 여사를 서울 모 호텔에서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나로서는 강 박사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였다. 강 박사는 키는 작았지만 맑고깨끗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병색은 하나도 없었다. 속으로 ‘어떻게 하면 저렇게 곱게 늙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강 박사의 췌장암 발병과 연이은 소천 소식은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유고집을 준비 중인 두란노 관계자에 따르면 강 박사 발병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강 박사를 살리기위해서 여러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 박사는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서 마지막 인생 마무리를했다. 강 박사는 절대 긍정의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도 긍정으로 만든 긍정의 연금술사 였다. 그는 내게말했다. “실패의 순간이 인생 최대 행운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장미꽃 이었습니다. 기적이지요. 인생에는 분명 무수한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 긍정의 사람, 강 박사가 어찌 췌장암의 공격은 그대로 순응하면서 받았을까? 그것이 나로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불사조처럼 일어나서 다시 “우리에게 분명 기적이 있습니다. 저를 보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강 박사의 지난 인생과 걸맞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내 강 박사가 저항하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을 충만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 안에서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에 췌장암이 다가 왔을 때, “그래, 여기까지”라면서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 너머의 더 좋은 일’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태도리라.

그와 만났을 때,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을 맺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와 은혜의 사람 강영우 박사. 68년, 잠시 살았던 이 땅의 옷을 벗고 지금 주님과 함께 거하리라.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