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요즘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아직도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조소 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하나님 믿는 것 아니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고 과연 실익이 있는지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과 악,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구분없이

뒤죽박죽 섞여서 복과 화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임하는 복과

반대의 경우 임한다는 저주가 작동하지 않으니

우리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기 마련입니다.

 

2.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시끄럽습니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소행으로 확인된

총격 사건이 수일이 멀지 않게 발생합니다.

숭고한 희생자들의 숫자가 점점 쌓여가는데

정치권은 손을 놓고, 투표에서 이길 궁리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제각각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상대방을 향해서 “가짜(Fake)”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지구 온난화, 핵무기를 비롯한 전쟁의 위협,

여전히 계속되는 빈곤과 식량, 차별 등

힘을 합쳐도 풀기 힘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서로의 잇속을 챙기고 있으니 우리 같은 민초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입니다.

 

지난주 목요 서신에 이어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곱씹으며 묵상합니다.

 

3.

미국에 올 때 아이들이 갖고 온  <돈 키호테>를 읽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긴 소설을 어린이용으로 아주 짧게 요약한 책인데

그래도 흥미롭습니다.

 

돈 키호테는 <양반/Sir 키호테>라는 뜻입니다.

스페인 시골에 기사 소설을 워낙 많이 읽고

스스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정의의 기사로 나선

돈 키호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로시난테라는 말,

정의와 평화의 세상이 오면 한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선 시골 농부 산초판사,

그리고 돈 키호테가 맞이하는 부조리한 세상.

 

풍차와 싸우고, 목동들에게 얻어맞아 이빨이 부러지고,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임할 자유와 평등, 정의의 세상을 꿈꾸는

돈 키호테의 행적이 때로는 불쌍해 보이고, 위대해 보이고,

지나칠 만큼 엉뚱해 보입니다.

 

돈 키호테가 인기를 끌던 스페인에서는

길가에 앉아서 울고 웃으며 돈 키호테를 읽었다고 했듯이

왠지 모를 시원함과 작은 희망도 발견합니다.

 

4.

때로는 돈 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일 정도의 신앙을 갖고 싶습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피를 흘리며 매를 맞고 내쳐지면서도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 돈 키호테>말입니다.

 

복잡하고, 잇속에 빠르고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말하는 요즘,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무모할 정도의 용기!

 

2천 년 전,

예수님도 그 길을 가셨기에 우리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이 신앙의 길,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9-10)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t 5:9-10)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려는 참빛식구들과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8.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