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탄식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 예배에서
구약성경의 하박국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3장으로 이뤄진 하박국서는
1장과 2장에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방식으로,
마지막 3장은 질문과 응답을 통해서 만난 하나님을
하박국이 악기에 맞춰서 노래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절박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온몸과 삶으로 외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지적했듯이 세상에는
“죄악, 패역,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이 판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아무 일도 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언제까지 하나님의 간섭과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지” 탄식하며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2.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
하나님을 향한 한탄과 호소는
하박국뿐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의 응답, 구원을 기다리던
하나님 백성들의 탄식이었습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탄식시도
“언제까지입니까? 주님”으로 시작합니다.

 

탄식(lament)은
찬양과 감사와 함께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의 삶이 온전하지 않고, 늘 밝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도 즉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때로는 눈물로
외치면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고난 가운데 드리는 솔직한 기도입니다.

 

3.
우리의 삶도 녹록치 않습니다.
기도 응답이 더뎌지고 삶의 어둠이 깊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라는 탄식이 나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느냐는 한탄이요 항의입니다.
이것은 고난 가운데 있는 모든 주의 백성의 자연스러운 고백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꼭 붙들려서
그리스도인들은 탄식하거나 불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탄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우리 속을 숨김없이 꺼내서 하나님께 내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4.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가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민, 힘듦, 아픔, 불안, 염려, 두려움,
행여나 부끄러운 모습들, 안타까운 현실 등등 –
하나님께 갖고 와서 솔직하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행여나 하나님에 대해서 섭섭함이나 불신이 생겼다면
자기 선에서 판단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하박국 선지자처럼
끝까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기 원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시편13:3)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탄식에
주님의 귀를 기울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