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난주 설교 시간에 스치듯 말씀드린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미카일이라는 천사가
세 가지 질문을 갖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아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성당을 지나던 구두 수선공이
성당 앞에서 맨몸으로 누워있던 미카엘 천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구두 수선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것을 본 미카엘 천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구두 수선집을 방문해서
아주 까다로운 모양의 장화를 주문하면서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미카일 천사는 장화가 아니라 죽는 사람이 신는 슬리퍼를 만듭니다.
그것을 본 주인이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때 부자의 하인이 들어와서 자기 주인이 죽었다면서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주문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까지 죽은 이웃집 쌍둥이를
그 부인이 맡아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미카엘은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2.
세상에 사랑이라는 언어가 흘러넘칩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도 많이 사용해서
진부한 표현으로 취급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랑 앞에 “진실한”이란 형용사를 붙이고 읽으면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 숙연해집니다.
진실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사모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조건 없이 맞아 주시는 아가페 사랑,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맞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나눈
골로새 교회의 영적 지도자 에바브라와 빌레몬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고
그 진실함에 감격해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 처소로 자기 가정을 개방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맛보니 그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 속의 천사 미카엘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해답을 찾아내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사랑으로 살아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0)
하나님,
우리 안에 임한 주의 사랑을
꼭 세상에 전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11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