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니고데모 (3)

거듭남 (1)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야 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황한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 대화의 주제는 “거듭남”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이 뜻하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즉,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체로 태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태어남 “신생(新生)”입니다. 여전히 니고데모는 거듭남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갖고 설명하십니다. 바람이 불어오지만, 바람을 볼 수 없고 단지 느끼고 경험할 뿐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바람의 위력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거듭남 자체는 실체이고 동시에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 진정한 선생은 예수님 뿐입니다. 땅의 생각을 갖고 하늘의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일을 알려주어도 믿지 못합니다. 니고데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정통한 니고데모에게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예로 드십니다(민21:4-9).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했습니다. 자기들 생각과 달리 광야 생활이 막연하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시니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구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구리로 뱀의 형상을 만들어서 기둥 위에 매달아 놓으면,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뱀에게 물린 사람이 기둥 위에 매달린 구리 뱀을 보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둥에 달린 광야의 구리 뱀을 장차 십자가에 달리실 자신과 연결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는(쳐다보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거듭남의 신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누구나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河-